고령군 대가야읍 전통시장에 자리잡은 60여㎡ 규모의 '고령대장간'. 주인장 이준희(45) 씨가 벌겋게 달궈진 쇠를 모루에 올려놓고 망치질을 한다. 1천도가 넘는 화덕에서 꺼낸 시뻘건 쇠뭉치를 요리조리 뒤집어가며 연신 두들겨 댔다. 달궈진 쇠를 쳐대고 찬물에 식히길 여러 차례. 망치를 내려치는 이 대표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엿가락처럼 휘던 쇠는 어느새 밭매기에 딱 좋은 호미로 변신했다. 이 대표는 "고령대장간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손자인 제가 대를 이은 100년이 넘은 전통있는 대장간"이라고 했다.

◆"땅! 땅! 땅"…3대째 이은 대장간
고령대장간은 이준희 대표의 할아버지 이오옥(1971년 작고)이 만든 대장간이다. 이 대표는 "합천 출신인 할아버지는 당시 여느 사람처럼 먹고 살기 위해 전통시장이 있는 고령읍에서 대장간을 열었다"고 소개했다.
벌겋게 쇠를 달구는 화로는 2대 이상철(1944년생·2017년 작고)이 흙과 시멘트를 이겨 만들었다. 달궈진 쇠를 두들길 때 받침대로 사용하는 모루와 쇠집게 등은 할아버지가 사용하던 것이다. 모루는 하도 두들겨 가운데가 움푹 패였다. 작업대 뒤에서 힘없이 돌아가는 선풍기도 수십 년이 넘은 고물딱지다. "낡았지만 모두 할아버지와 아버지 손때가 묻어 있고 저 역시 손에 익어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기구를 보고 만지면 가끔 아버지가 생각날때도 있다"고 했다.
이오옥이 작고하자 2대 이상철씨가 이어받았다. 이상철은 어릴 때부터 대장장이를 시작한 건 아니었다. 군 제대 후 한때 고령에서 개인 택시를 운전하다 가업을 이어 받았다. 이 대표는 "처음엔 가업을 이을 생각을 안 했지만 아버지의 남다른 대장간 사랑 때문에 맘을 바꿨다"고 했다.
이상철은 형제들과 함께 대장간을 운영했다. 이 대표는 "당시 대장간은 풀무질과 망치질, 담금질 등 할 일이 많아 여럿 사람이 필요했다"고 했다.
이상철 형제는 합천군과 고령군의 5일장을 돌아다니며 농기구를 만들어 팔았다.
3대 이준희(45) 대표는 대학 졸업 후 대구에서 직장을 다녔다. "아버지는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만 해도 대장간 옆에 얼씬도 하지 못하게 했어요. 힘들게 일하시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으셨나 봐요."
그가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 것도 아버지 때문이었다. 어느날, 50년 동안 망치를 두드렸던 아버지의 인대가 끊어져 어깨를 쓰지 못할 지경이 됐던 것이다. 임시로 고용했던 인부도 너무 힘들어 며칠이 지나지 않아 도망가버렸다. 이 씨는 가업을 잇기로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며느리(이 대표의 아내)의 승낙을 받아오라고 했다. 아내는 "힘드는 대장간을 일을 할 수 있겠냐? 중간이 그만 둘 것이라면 시작하지 말라"고 했다.
이 대표는 2003년 11월 퇴직하고 대장간 일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대장장이는 중노동이다. 처음에는 자고 나면 손이 퉁퉁 부어 제대로 굽힐 수조차 없었다. 망치질에 낫이 날아가거나 손을 베는 일도 다반사였다. 화로는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쇠가 녹아버릴 정도로 뜨거웠다. 낫 한 개를 생산하려면 최소한 다섯 번 이상 공정을 거쳐야 했다. "예전에는 3명이 붙어서 망치질을 해야 했지만 요즘은 두드리는 기계가 나와 한결 수월하다"고 했다. 달궈진 쇠를 두들겨 날을 넓힌 뒤 갈아서 열처리를 하고, 다시 두드려 얇게 만든다. 쇠를 다루는 데 가장 중요한 건 담금질이다. 팔 때도 다시 담금질을 하고 날을 갈아서 판다.
고령대장간은 숙련된 대장장이의 솜씨로 빚어낸 농기구를 사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그가 만든 농기구에는 땀과 정성이 배었다는 입소문을 타고 성주, 현풍 등 인근 지역뿐 아니라 대구나 창원, 사천 등 경남지역 사람까지 찾아올 정도다. "요즘은 도시농업이나 텃밭을 가꾸는 이들과 약초꾼이 주 손님이고, 농기구도 예전에 비해 가볍고 세련되게 제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지역 유일한 대장간인 고령대장간은 일요일은 휴무다. 하지만 고령장날인 4, 9일은 문을 연다. "일을 시작한 지 16년 됐다. 가끔 직장 다닐때가 그리울 때도 있지만 대를 잇는다는 자부심이 있다"며 "단골 손님이 '이제 아버지보다 잘한다'는 말을 들어면 기분이 좋다"고 했다.
◆전통방식 고집
고령대장간은 전통방식 그대로 쇠를 다듬어 호미, 낫, 쇠스랑, 칼, 도끼날을 제작하고 있다. 풀무질(쇠를 달구거나 녹이기 위해 화덕에 뜨거운 공기를 불어넣는 작업)과 매질(쇠를 두드려 단단하게 만드는 작업), 담금질(쇠를 높은 열에서 굽고 식히는 작업) 등을 통해 농기구를 생산한다.
이곳의 대표적인 연장은 바로 낫이다. 낫은 작물과 지역마다 모양도 다르다. 벼 베는 낫과 부추 베는 낫, 나무 베는 낫이 다른 모양을 하고 있다. "강원도는 낫이 약간 긴 모양, 경상도는 'ㄱ'형, 전라도는 구부러진 'S'형이어서 손님들이 요구하는대로 만들어 준다"고 했다.
이 대표는 "화로에서 달궈 낸 쇠를 담금질하는 기술이 가장 중요하다"며 "쇠는 담금질 정도에 따라 강도가 달라진다"고 강조했다. 쇠 모양을 만드는 망치질도 어렵지만 쇠의 강도를 내는 담금질은 고난도의 기술이다. 쇠의 재질에 따라 담금질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부엌칼의 경우 벌겋게 달아 있는 쇠의 칼날 부분을 물에 살짝살짝 담그면서 담금질을 하는데 웬만한 기술로는 제대로 하기 어렵다고 했다. 아버지의 대를 이어 대장장이가 된 이 대표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넘어야 할 큰 산"이라고 했다.

◆"전통대장간 계승에 혼신 다할 터"
이 대표는 아들이 있다. "아들에게 가업을 물려 줄 생각은 있지만 강권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하고 싶은 일 맛껏 해본 뒤 이 일을 하고 싶으면 가르쳐줄 것"이라고 했다.
이 대표는 사라져 가는 대장간의 전통을 살려 옛 대가야의 장인의 맥을 이어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전통을 현대적으로 되살려 기성제품과는 차별화된 제품을 보급시키고 사라져가는 장인의 맥을 이어나갈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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