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숭깊은 희열을 느끼다
한때 어린아이였을 어른들을 위하여 축배를 든다. 저자는 어린 시절 '성냥팔이 소녀', '인어공주', '미운오리새끼'등의 많은 동화로 우리에게 상상을 품게 해준 인자한 할아버지이기도 하다. 1805년 덴마크 코펜하겐 근처 오덴세에서 태어난 저자는 1875년 70세의 일기로 사망하기까지 동화와 희곡, 기행서 등 많은 작품을 남겼다.
코펜하겐에서 동방까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이 책은 9개월간의 긴 여정을 적고 있다. 제1부 위대한 어머니 덴마크, 제2부 슬프도록 아름다운 그리스, 제3부 신비의 땅 동방에 가다, 제4부 다뉴브 강을 거슬러 오르다, 제5부 다시 덴마크로 구성되어 있다. 자신을 물과 같다고 표현했던 저자의 말대로 새로운 여정이 새로운 인생의 시작임을 암시한다.
"그 모든 것을, 그 신성하고 깊은 적막감을 내 어찌 다 기억하랴!"P108 옛날 옛적부터 신성시 되었던 델포이(델포)에서 사슴의 눈은 눈물로 무거워지고 금지된 노랫가락 속에는 어머니가 있음을 떠올린다. 부재의 이미지를 찾아가듯, 여행의 서곡을 따라가다 보면 나는 결국 나 자신으로 끝나는 나그네이다. 일상의 탈출로 인한 정신의 재충전과 여행담을 통해서 버무리는 사유의 짜릿함이 책속에는 있다.
저자는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는 비평가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이 여행길에 나섰다고 한다. "사람들은 내 결점만 보려고 한다. 이제 고국에 가서 헤쳐가야 할 길은 험한 폭풍우 속의 바닷길이다. 항구에 닿기까지, 수많은 거센 파도들이 머리 위에서 부서질 것임을 나는 안다. 하지만 또 하나 분명한 것은 내 미래가 결코 지금보다는 더 나쁘진 않을 것이란 사실이다……." -p274 지중해 기행을 통해서 재현된 저자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시대적 상황과 맞물린 불운의 이야기는 자전적인 요소가 많다.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는 고통을 겪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삶에 대한 열정은 남다르다. 차가운 소나기를 맞아야만 부글부글 끓다가 꽃으로 터진다고 한다. 저자의 발자국에 채색된 그림자는 감동적인 운치와 낭만이 묻어있다.
"덴마크에 산이 없다고 말하지 말라. 덴마크 문학이야말로 산이다. 숲이 우거진 높은 산이다. 이웃 나라들이 볼 때는 지평선 위 푸르스름한 것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언제든 환영하니 와서 우리의 정신으로 이루어진 산야를 거닐어 보시라." -p282 저자가 고국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귀환의 첫 순간이야말로 그간의 여행으로부터 받는 환영의 꽃다발이라 한다.
올해로 한국과 덴마크의 수교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오덴세 시립박물관과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안데르센 코펜하겐 1819로 작가의 200년을 기념하는 국제교류전시회를 갖기도 했다. 평생 독신으로 살며 불행하고 소외된 계층을 다룬 휴머니즘 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그는 이렇게 말했다. "성숙한 어른이 되어서야 내 작품을 이해할 것이고"…….
이제 추석도 지나고 훌쩍 가을의 문턱을 넘어섰다. 저자가 집세를 내지 못해 거듭 이사를 했던 그 옛날 뉘하운을 떠올리며 이 책을 펼쳐도 좋으리라. 동화보다 아름다운 지중해기행은 더욱 풍성한 계절을 안겨 줄 것이기 때문이다.
정화섭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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