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아름다운 여행

입력 2019-07-31 13:08:15 수정 2019-07-31 16:25:04

동진스님 망월사 백련차문화원장

팔월의 뜨거운 빛이 온 누리에 가득하다. 햇볕은 기염을 토하며 온 산천을 태운다.

그 열기에 맞춰 백일홍도 붉게 탄다. 마당에는 매미 소리 높고 고추잠자리가 유영을 한다.

계절은 하는 일과 맡은 역할이 각각 있나 보다. 누각 처마 밑 풍경에 바람이 서성인다.

날이 덥다 보니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진다.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8월이면 괜스레 바람이 든다. 소음이 없는 곳에서 솔바람과 파도 소리를 벗 삼아 나만의 시간을 갖고 사색하며 마음을 비우고 싶다.

"여행은 우리가 사는 장소를 바꾸어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편견을 바꾸어주는 것이다"라고 프랑스의 문인 아나톨은 말한다. 여행은 세상을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는 것이다. 자연의 위대함에 겸손해지고 감사하게 된다.

젊은 시절, 고흥 나로도에 우주센터가 들어서기 전 내나로도 어촌 바닷가에 방을 하나 얻어 민박을 했다. 저녁을 해결하고 양철 지붕에 돌담장이 나지막한 조그만 방에서 밤새 파도 소리를 들었다. 일정한 리듬으로 밀려왔다가 밀려가는 그 힐링사운드는 마음을 한없이 안정되고 평화롭게 해 주었다. 아직 그 감동은 잊히지 않는다.

돌아오는 길에 보길도에 들렀다. 조선 중기 문신이며 시인인 고산 윤선도가 1637년 2월 병자호란 때 인조가 청나라에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울분을 참지 못해 제주도로 가다가 보길도의 절경에 매료되어 머물렀다.

예송리 해수욕장에 들렀다. 천연기념물 제40호인 상록수림과 작은 조약돌이 펼쳐진 해변은 장관이었다. 파도가 서로 몸을 부대끼며 일렁일 때마다 조약돌끼리 내는 소리가 실내악처럼 감미로웠다. 동글동글하니 모나지 않고 햇빛이 비치면 바닷물에 젖은 채 반짝거리는 돌들의 어울림은 가보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만드는 아름다움 그 자체다.

다음에 들른 곳이 세연정이다. 보길도에는 윤선도의 흔적이 유독 많다. 그중 하나인 세연정은 윤선도가 삶을 마지막까지 경쾌하게 보낸 곳이다. 뒷산에서 흘러내린 작은 계곡물이 웅덩이를 이루고 반원을 그리는 곳을 막아 정원을 꾸미고 그 위에 세연정을 지었다. 여기에 높은 학식과 연륜의 눈높이로 쌓은 정원은 아름다움을 극대화했다. 부용동과 이곳을 오가며 40수의 장편시조 '어부사시사'를 지었다.

그는 아마도 달 밝은 밤이면 이곳에서 해남 금쇄동에서 지었다는 수석송죽월(水石松竹月)을 노래한 '오우가'로 자신을 달래며 자연을 노래했을 것이다. 이 밖에 곡수당과 사당, 낙서재와 동천석실 등이 반긴다.

그는 늘 허욕과 불의로 가득한 세상에 곧은 뜻을 꺾지 않고 직신(直臣)의 정신으로 숱한 상소를 올렸다. 그 때문에 16년이 넘는 귀양살이로 고초를 겪어야 했다. 보길도에는 사람은 가고 문화만 남았다. 행복의 비밀 하나는 그 어느 누구도 영원히 사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예부터 나라가 흥하느냐 망하느냐 갈림길에 선 시기에는 하늘이 반드시 한 인물을 내려보내 목숨을 걸고 예의를 지키게 하여 한 세상에 경종을 울려주고 후세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주었는데 바로 윤선도 같은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라고 그 시대 선비 용주 조경은 말했다.

대한민국의 총체적으로 어려운 이 시기에 우리는 누굴 기다려야 하나?

망월사 백련차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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