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산 자락 인현왕후길에 보는 청암사와 용추폭포
김천과 어울려 가장 많이 언급되는 황악산 직지사
최근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부항댐
한여름의 축제 포도, 자두 먹으며 연극 한 편
각 고장의 자기소개 구호에는 정체성이 나타난다. 상대가 우리를 부를 때마다 자동 연결해 이미지화해달라는 주문이다. 연상 작용을 노린다. 좋은 구호는 양보가 어렵다. 단양과 제천은 '청풍명월의 고장'을 서로 앞세우고, 영주와 안동은 '정신의 수도' 선점 경쟁을 벌였다.
김천은 지형을 이용한 구호다. 삼산이수의 고장이다. 세 개의 산과 두 개의 물줄기다. 숲이 무성하고 물이 많은 동네란 걸 강조한다. 여름에 강하다는 간접적 표현이다. 근거가 있다. 김천의 대표 관광지는 필연적이게도 물이 채우고 있다. 산에 있다고 예외가 아니다. 황악산 자락 직지사, 수도산 자락 청암사도 물이 특급도우미로 경관을 돕는다.

◆수도산 자락 인현왕후길
경남 거창과 경계를 물고 있는 수도산에 청암사가 있다. 비구니 사찰이다. 청암사 경내에 들어서자마자 '禁亂榜(금란방)'이란 경고문을 본다. 문란하고 시끄러운 행위를 금한다는 뜻이다. 조용하다. 염불하는 소리만 경내에 울린다.

통일신라 때 세웠으나 불이 잦았다. 1912년 중창됐다. 청암사에는 인현왕후가 늘 따라온다. 조선조 숙종의 두 번째 왕비였다. 장희빈의 계략으로 폐서인된 이다. 복위를 도모하며 그는 청암사에서 3년간 머물렀다. 궁중 상궁들이 폐위된 인현왕후를 만나러 몰래 드나들었다고 한다. 시주도 많이 했다. 극락전 중창 과정에서 나온 시주록에 궁중 상궁 26명의 이름이 나왔다 한다.
인현왕후 못지않게 따라오는 인물이 최송설당이다. '송설'이라는 구호로 통하는 김천중고교의 설립자다. 고종과 귀인 엄씨 사이에서 태어난 영친왕 이은의 보모였다. 일제에 순응한 영친왕 이은의 삶과 달리 그녀는 민족 동량 키우기에 투신했다. 1931년 전 재산을 털어 김천고등보통학교를 설립했는데 현재의 김천중고교다.
청암사는 최근 들어 사진작가들이 탐을 내는 곳이 됐다. '노산교'라 잘못 읽기 쉬운 '여산교(廬山橋)' 아래 낙차가 있는 물길 때문이다. 물길 좌우 바위에 이끼가 잔뜩 붙어 있다. 그래서 이끼계곡이라고도, 여산계곡이라고도 부른다. 실제 보면 계곡이라 부르기 민망하다. 작아서다. 사진도 몰래 찍기 힘들다. 사진 찍겠노라 다리 아래로 내려가 있으면 눈에 띈다. 많이들 내려가 찍었나보다. 오죽하면 사찰에서 출입을 금하는 띠를 둘러쳤을까.
계곡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대웅전이, 왼쪽에 극락전이 있다. 극락전이 특이하다. 절집으로 보이지 않는다. 사람이 사는 반가의 집이다. 인현왕후가 3년간 기거했던 곳이다. 솟을대문이 보인 게 우연은 아니었다.

이런 스토리를 김천시가 포기할 수 없었다. 최근 '인현왕후길'을 만들어 홍보에 매진하고 있다. 청암사를 비롯해 영남 유학의 거두 한강 정구도 엮었다. 그가 노래한 무흘구곡 일부도 인현왕후길에 넣었다.
무흘구곡 중 마지막 계곡인 용추폭포가 그 중 하나다. 후텁지근한 여름 날씨라지만 이곳에선 선선하다. 용추폭포 소리는 도로에서도 들을 수 있다. 갈수기임을 모를 만큼 풍부한 유량이다. 폭포에 가까워질수록 청량감은 높아진다. '무흘구곡전시관'이라 내비게이션에 입력하고 청암사와 용추폭포를 찾아야 덜 헤맨다.

◆황악산 자락 직지사
직지사를 빼고는 김천을 이야기하기 어렵다. 황악산으로 들어가는 길에 있다. 누구에게나 낮은 사찰이다. 산중턱에 있지 않아 자비로운 곳이다.
'해동제일가람황악산문(海東第一伽藍黃嶽山門)'이란 현판을 지나 매표소를 넘으면 숲길이 시작된다. 직지사의 시작이다. 숲길을 만끽하며 들어갈수록 연륜이 느껴지는 풍광이다. 내공 가득한 사람을 만난 기분이다. 이내 들어선 경내를 이리저리 걷는다. 어딜 가든 차분하다. 경내를 흐르는 물소리가 청아하게 들릴 만큼이다.
비로전을 들여다본다. 작은 불상이 가득하다. 너무 많아 셀 엄두가 나지 않는다. 천불상이라 하니 천 개인가보다 한다. 벌거숭이 동자상을 찾아내면 아들을 낳는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독특한 게임처럼 인식된다. 딸을 낳고 싶다, 시대정신에 맞지 않다면서도 동자상을 찾아보는 재미는 놓치지 않는다. 안구 운동과 태아 성별의 상관관계를 따질 일은 없다.
황악산 자락의 직지사는 이름에 창건 뒷얘기가 있다. 아도화상이 구미 도리사를 창건하고 김천 쪽으로 손가락을 가리켜 큰 절이 들어설 자리라고 했다는 설, 절을 세울 때 손가락으로 직접 측정해서 세웠다는 게 또 하나의 설이다.

직지사는 직지문화공원, 그리고 식당가와 연계된다. 직지사에 가기 전, 공식 매뉴얼같은 순서다. 식당가에 주차를 한다. 산채비빔밥을 먹는다. 직지문화공원에서 산책을 하며 소화를 시킨다. 마지막으로 직지사에 가서 명상에 잠긴다. 공식적일 리 없는 순서지만 대체로 이렇게 한다.
직지문화공원은 조각 작품과 폭포, 분수, 잔디밭이 어울려 있어 걷기 좋은 산책로다. 군데군데 조각 작품이 자리잡고 있다. 유명 조각가의 작품 50여 점이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시비도 20개 남짓 설치돼 있다. 걷는 내내 심심하지 않다.
한여름에도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매력은 2단 폭포에 있다. 폭포 위 '황악정'이란 정자와 폭포의 배치가 뛰어나 포토존으로 손색없다. 정자 옆으로 숲길이 있다. 들어가 피톤치드 샤워를 한다. 올라가는 길에 다양한 수종의 나무가 울창하다.

◆떠오르는 핫플레이스, 부항댐
유량 조절과 에너지 생산이라는 기본적인 책무 외에 수변공원 역할을 맡았다. 유원지 기능을 더했다. '스릴 3종 세트'라 불리는 짚와이어, 스카이워크, 출렁다리가 설치됐다. 짚와이어, 스카이워크는 유료다. 출렁다리는 구색 맞추기다. 256m 길이라지만 막상 걸으니 출렁임이 강하지 않다.
스카이워크는 절로 오금이 저린다. 하늘 위를 걷는다는 유리구조물을 떠올리기 쉬우나 이곳 스카이워크는 개방형이다. 안전장치를 몸에 착용한 뒤 90m가 넘는 높이에서 몸을 허공에 기울인다. 미인상이든 귀인상이든 가리지 않고 곧 울상이 된다. 38m 코스를 두 바퀴 돌며 허공에서 여러 동작을 반복한다.

몸이 10cm 더 나가는 데 눈을 몇 번이고 질끈 감는다. 50cm 나가려면 11m 고공낙하를 앞둔 훈련병처럼 애인 이름을 불러야 한다. 돈 내고 뭐하는 짓이냐는 한탄이 절로 나온다. 날 것 그대로의 공포가 통성으로 쏟아진다. 생돈 들여 뭐하는 건가 자괴감이 든다면 전망대로만 이용할 수도 있다.
부항댐 아래 산내들오토캠핑장도 캠핑마니아라면 취향 저격이다. 총 52면의 캠핑사이트와 실내외 취사장, 샤워장, 풋살장 등 다목적 체육공간을 갖추고 있다.

◆별미, 김밥
김천국밥이 아니고 김밥천국이다. 사실이다. 김밥은 김천에서 알아주는 별미다. '김밥천국'이라는 상호에서 파는 김밥이 아니다. 두 가지를 추천한다. 오뎅, 단무지, 오이로만 구성된 김밥과 명태채를 넣은 김밥이다.
오뎅, 단무지, 오이를 재료로 한 김밥 가게는 홀이 없다. 무조건 테이크아웃이다. 김밥을 사러 가보면 답이 나온다. 할머니 4명이 열심히 김밥을 말고 있다. 출입문이 없다. 고개만 들이밀고 김밥을 받아 나오는 구조다. 3천원이다. 성인 엄지손가락 굵기의 김밥이다. 길이는 중지손가락 길이다.
한 팩에 8개다. 심심한 맛인데 이상하게 또 먹고 싶다. 뭐가 들었나 김을 벗겨본다. 세 가지 재료 외엔 없다. 김천시내 간선도로인 김천로에서 김천의 진산, 고성산으로 들어가는 길에 있다. 김천서부초교로 진입하는 길이다.
명태채를 넣은 김밥은 중앙시장 인근 양서류 이름의 분식집에서 판다. 테이블마다 면볶이나 떡볶이, 김밥을 세트메뉴처럼 주문해놓고 있다. 떡볶이나 면볶이 국물에 찍어먹는 게 정석이다. 주방 안에서는 명태채를 산더미처럼 대야에 담아 버무리고 있다.
30년째 장사를 하고 있다는 주인에게 왜 명태채를 넣었냐고 물었다. 김밥에 오징어채를 넣어 먹던 옛 기억을 떠올렸다고 한다. 초등학생 입맛이라면 소리 지를 곳이다. 앞서 언급한 김밥과는 라이벌 관계가 아니라고 했다. 테이크아웃한 김밥을 이곳에서 함께 먹어도 괜찮다.
◆한여름의 축제
7월 중순부터 김천은 축제 시즌에 돌입한다. 우선 '2019 김천자두포도축제'가 18일부터 21일까지 직지문화공원과 자두·포도 수확 체험농장에서 열린다. 축제장에는 80m 대형슬라이드와 물놀이장, 자두포도 이글루가 더위를 식혀줄 무대가 돼준다. 오후 9시까지는 야간 프로그램도 연다. 전문 DJ의 축하공연이 예정돼 있다. 폭포를 배경으로 물대포를 쏴 더위를 한층 더 식혀준다.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체험프로그램도 준비돼 있다. 쫓고 쫓기는 물총싸움 이벤트 경기 '특명! 자두포도를 지켜라!'가 폭포광장 앞에서 열린다. 주중에는 하루 2차례, 주말에는 하루 4차례 열린다. 매일 운영되는 게임부스 '너두나도! 자두포도 놀이터!'에 참가해 스템프 3개를 받으면 포도와 자두를 선물로 준다.
축제장 곳곳에서 자두와 포도를 활용한 체험프로그램과 지역우수농산물 직거래장터, 자두포도 수확체험 등이 가능하다. 자두포도 수확체험은 12일까지 김천자두포도축제 홈페이지(www.gcjadu.com)를 통해 신청할 수 있다.
국내 최대의 가족극 축제인 '김천국제가족연극제'는 19~28일까지 김천시 일원에서 열린다. 올해로 17회째를 맞은 김천국제가족연극제는 19일 김천문화예술회관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중국기예단의 개막공연을 시작으로 그리스의 'Giraffe', 스페인의 'Error404', 중국의 '행복을 나르는 버스' 등 경연대회 14개 작품과 국내외 초청공연 8개 작품을 무대에 올린다. 안산공원에서는 워터퍼포먼스를 비롯한 다양한 시민참여형 공연을 연다. 운곡초교 학생들이 꾸미는 '이性한 동화나라 속 아리솔' 학생극 등이 야외공연장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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