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년 동안 1천500여점 수집…엄선한 100여점 전시
흙을 빚은 뒤 구워서 만든 벼루가 있는지 처음 알았다. 가마솥을 연상시키는 형태에 발이 여렷 달린 통일신라시대 원형 벼루다. 어른 손바닥보다 훨씬 작은 성냥갑만한 벼루도 있다. 나무로 만들어지거나 수정으로 만든 것도 있다. 옛 여인들이 화장용 재료를 갈기 위해 휴대하던 화장벼루도 있다. 얼마나 사용했기에 먹을 가는 부분인 연당(硯堂)에 구멍이 난 것도 전시돼 있다.
지난 4월 경주시 화랑로 경주읍성 서쪽에 문을 연 취연벼루박물관이다. 그동안 국립박물관·대학박물관 등이 전시실 한켠에서 더러 벼루를 전시하긴 했지만, 벼루만 전문적으로 전시하는 박물관은 전국에서 유일하다. 관장은 40여 년 지역 언론에 몸담았고 경주문화원장을 지낸 손원조(77) 씨다.
"경주 강동면 오금리 경주손씨 집성촌에서 태어나 제사를 자주 접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예닐곱 살 무렵부터 집안 어른들이 축문과 지방을 쓸 때 자주 먹을 갈았던 경험이 자연스레 벼루 수집으로 이어지게 된 거죠. 선조들의 체취가 서린 대상이란 점도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그가 처음으로 벼루를 수집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초반. 수집한 벼루가 하나 둘 늘면서 벼루의 다양한 재질과 형태, 새겨진 여러가지 문양에 매료돼 벼루전문 수집가가 됐다. 박물관 이름의 '취연'(醉硯)은 '벼루에 취하다'란 의미로 손 관장의 아호다.
벼루를 수집한지 49년째인 올해까지 그가 모은 벼루는 모두 1천500여점. 내친김에 건물을 짓고 벼루전문박물관을 개관하기에 이르렀다.
2층에 마련한 주 전시실엔 삼국시대 흙벼루를 시작으로 고려시대 풍자벼루, 조선시대 오석벼루, 자석벼루, 옥벼루, 수정벼루는 물론 나무벼루, 쇠벼루 등 벼루 100여점이 전시돼 있다. 나머지 1천400여점은 수장고에 보관하고 있는데 앞으로 서로 번갈아가며 전시할 계획이다.
이곳에선 벼루 외에도 중국에서 왕실에 공납하던 120년된 종이와 105년된 먹, 먹을 갈때 쓸 물을 담는 그릇인 연적, 벼루나 먹을 보관하도록 만든 연갑과 연상 등 문방사우를 비롯한 다양한 문방구류도 만나볼 수 있다. 어린이 관람객을 위해 벼루에 먹을 갈며 붓글씨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도 만들어놨다.
"이곳에 있는 벼루는 제 삶의 흔적과도 같은 것들이죠. 벼루박물관이 젊은 세대들에게 민족유산의 숨결을 전할 수 있는 사랑방 같은 열린 공간이 됐으면 합니다."
손 원장이 박물관 1층을 관람객들이 무료로 제공되는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으로 꾸민 이유다. 입장료는 2천~3천원, 매주 월요일은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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