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일상화된' 불안]…〈중〉힐링 위해 떠난 여행조차도 불안의 연속…숙소 불안, 모텔 문화 불편

입력 2019-06-10 18:18:02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여성 혼행족에도 편히 쉴수 있는 숙소는 턱없이 부족
국·내외 구분않고 노출된 여성 여행객 범죄

예전에는 여행이 특별한 '이벤트'였지만 요즘은 하루 이틀의 짧은 국내여행은 일상이 됐다. 워낙 바쁜 일상에 치여 사는 현대인들에게 쉼표가 절실한데다, 삶을 즐기는 문화가 확산한 탓이다.

하지만 이렇게 일상화된 '여행'이 젊은 여성들에게는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힐링을 위해 여행을 떠나지만 당장 안전하게, 편안하게 숙박할 곳을 찾기도 쉽지 않다. 또한 몰카 범죄가 잦다 보니 숙소에서조차 불안감에 떨어야 한다. 여성이라서 겪을 수밖에 없는 공포다.

◆늘어나는 여성 혼행족, 증폭되는 숙소 불안

A(30) 씨는 최근 전라도로 여행을 떠나기 위해 한 공유숙박업소에 예약했다가 취소했다. 최근 숙박공유업체에서 몰래카메라가 자주 발견돼 각종 몰카, 성범죄로 이어진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A씨는 "혼자 잠을 자야 하는데 무서운 생각이 들어서 예약을 취소하고 누구나 알 만한 호텔을 예약했다"며 "비용이 비싼 호텔이라고 완전히 안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 더 안전한 여행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털어놨다.

최근 나홀로 여행을 떠나는 여성 '혼행족'이 급증하면서 숙소불안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유독 모텔을 이상한 시선으로 쳐다보는 우리나라만의 숙박문화 탓에 편안하게 머물만한 숙소를 찾기가 쉽지 않다.

여대생 B(22) 씨는 "혼자 혹은 여성 둘이 여행을 가서는 도저히 모텔에 머물 엄두가 나지 않다 보니 게스트하우스를 이용하거나, 에어비앤비를 찾게 된다"며 "위치나 숫자, 가격 면에서는 모텔이 전국 어딜 가든 가장 보편적인 숙소이지만 모텔에 대한 편견과 시선이 불편하다"고 했다.

대구의 경우 모텔·여관 등 숙박업소 858곳, 게스트하우스 55곳, 관광호텔 21곳, 호스텔 2곳 등 모텔의 숫자가 압도적이다.

인터파크 투어에 따르면 2018년 혼행족은 30%로 2017년(25%)에 비해 증가했다. 이중 여성이 55%를 차지했다. 남성에 비해 혼자 여행을 떠나는 여성이 더 많은 셈이다.

인터파크 투어 관계자는 "혼행족이 늘어난 이유는 사회구조의 변화 때문으로 풀이된다"며 "1인 가구 증가, 개인 소비력 향상 등을 원인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외 구분 않고 노출된 여성 여행객 범죄

회사원 C(29) 씨는 "홀로 타지역을 여행할 때 불법촬영이 없다는 확인된 숙박업소만을 이용하는데 최근에는 이러한 숙박업소에서도 믿을 수 없다는 소식에 두려움을 느낀다"며 "화장실 갈 때도 못 자국이나 구멍이 있으면 휴지로 막는 등 챙길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고 했다.

그는 "숙소에 물이 나오지 않거나 불이 들어오지 않는 등 문제가 생기더라도 남성 직원이나 남성 주인을 부르기가 무서워 그냥 참고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며 "때문에 남자 주인이 운영하는 곳은 최대한 가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홀로 여행을 하는 여성들은 성범죄와 각종 강력범죄는 물론, 숙박업소와 관광지의 공중화장실 등에서의 불법 촬영 위험에 노출돼 있다.

지난해 경찰청이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몰카 범죄로 검거된 피의자는 전국에서 2014년 2천905명, 2015년 3천961명, 2016년 4천499명, 2017년 5천437명 등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대구에서는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 발생한 몰카 범죄는 모두 613건, 성폭력 범죄는 3천597건으로 집계됐다.

최근에는 대구 등 10개 도시 숙박업소 30곳의 42개 객실에 소형 몰래 카메라 모듈을 설치한 일당이 경찰에 검거되는 사건이 발생해 여성들의 불안감을 부추기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대부분 여성을 상대로 한 불법 촬영으로 숙박업소에 묵을 시 휴대전화 조명으로 방을 점검하는 등 몰래 카메라가 있는지 확인을 하는 것이 피해를 막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했다.

여성 혼행족은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성범죄 등에 노출돼 있다. 외교부에 따르면 해외 여행객 성범죄 피해는 2016년 57건, 2017년에 118건, 2018년 110건으로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문제점들에 대해선 대부분 개인 스스로 안전을 책임져야 한다. 조성제 한국치안행정학회장(대구한의대 경찰행정학과 교수)은 "온라인에는 관광지에 대한 정보는 넘쳐나지만 안전에 대한 정보나 위급한 상황의 대처 매뉴얼은 찾기 어렵다"며 "지방자치단체가 관광정보만 알릴 일이 아니라 안전 정보도 적극적으로 홍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대구시 관계자는 "지난해 7월부터 시뿐만 아니라 8개 구군, 민간, 경찰 등으로 구성된 단속반이 숙박업소 단속은 물론 장비 대여, 화장실 점검실시, 업주 교육을 하고 있다"며 "특별점검 구역과 점검 횟수, 인력 등을 확대해 범죄 피해를 줄여가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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