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도시농업은 대부분 채소재배에 한정되는 경향이 있다. 이에 비해 미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 도시텃밭 선진국들은 농작물은 물론이고, 수목 및 화초재배, 양봉, 곤충사육 등 다채로운 도시농업을 자랑한다. 대구 달성토성마을은 골목에 화분을 내놓으면서 마을이, 사람이 달라졌다.
◇ 쓰레기 뒹굴고 악취 나던 골목
대구시 비산2‧3동에 자리한 '달성토성마을'은 2015년 6월 초까지만 해도 마을 골목은 물론이고 공터에 쓰레기가 넘치고 악취가 진동했다. 하지만 몇몇 주민들이 집안에 있던 꽃 화분을 집 앞 골목으로 내놓기 시작하면서 이 동네골목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이 마을 남자에게 시집와 40여년을 이 마을에서 살아온 서경숙씨는 화초 가꾸기를 좋아했다. 그녀의 집 옥상에서 예쁘게 피어난 화초를 발견한 엄석만 당시 비산2‧3동 동장이 집안의 화분을 골목으로 내놓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서경숙씨 부부를 비롯해 골목을 가운데 두고 마주보는 4집이 집안의 화분을 골목으로 내놓았다.
뒤이어 서너 집이 꽃 화분을 내놓았지만, 예쁜 화분들이 사라지는 일이 발생하자 주민들은 꽃 화분 내놓기를 꺼렸다.
◇ 집 앞에 꽃 화분 내놓기 시작
위기가 닥치자 서경숙씨 부부를 비롯한 주민들과 엄석만 동장이 나서서 주민들에게 '꽃 화분을 내놓아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며, 주민들을 설득했다.
"하기야 담배꽁초보다야 꽃 화분이 낫겠지…."
그렇게 주민들은 다시 꽃 화분을 내놓기 시작했다. 이후로도 꽃이 예쁜 화분이 사라지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지만, 그 빈도는 줄어들었다. 이와는 상대적으로 골목으로 나오는 꽃 화분 숫자는 빠르게 늘어났다. 골목에 꽃 화분이 빠르게 늘어나기 시작하자 더 이상 예쁜 꽃 화분이 밤사이 사라지는 일은 없어졌다. 그렇게 달성토성마을 골목길은 꽃 천지가 되었다.
백합, 동백, 꽃사과, 튤립, 파, 보리, 팬지, 채송화, 아로니아, 재스민, 부켄빌레아 등 이 동네 골목정원에서 자라는 식물 종류는 다양하다. 2019년 3월 현재 대구시 서구 비산2‧3동 달성토성마을에 실처럼 이어진 골목 곳곳에 40여개 꽃 정원이 조성돼 있다. 어디로 이어진 골목으로 들어가든 꽃 천지다.
◇ 깨끗하고 아름답고 안전한 골목
서구 비산동은 대구의 다른 동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한 동네다. 하지만 이 동네 골목은 대구시내 어느 골목보다 깨끗해 보인다. 종이 쪼가리 하나, 낙엽 하나 찾기도 어렵다. 어느 한 골목이 아니라 꽃 화분이 있는 골목들이 한결 같이 깨끗했다. 깔끔하기로 유명한 일본의 골목길을 보는 것 같다.
골목에서 만난 주민들은 "어쩌다 담배꽁초나 쓰레기가 눈에 띄면 주민들이 줍기 바쁘다"고 했다. 화초와 나무가 자라는 화분을 내놓았을 뿐인데, 동네는 말끔해졌고, 사람들 마음에는 여유와 배려가 싹 튼 것이다.
골목길 곳곳에서 마주친 사람들은 낯선 기자를 경계하는 대신 미소로 반겼다. 직접 이야기를 나눈 사람들은 물론이고, 그저 눈이 마주친 사람들도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목례를 건넸다. 자신들의 마을에 대한 자긍심이 묻어나는 미소였다.
◇ 골목에 꽃이 피니 이야기꽃도 피어
초창기만 해도 골목에 있던 예쁜 화분이 종종 사라졌지만, 지금은 예쁜 화분이 앞 다투어 골목으로 나온다. 칙칙한 골목이 화사해지자 좀처럼 집밖으로 나오지 않던 사람들은 골목으로 나와 수시로 자기 집 앞 골목에 내놓은 화초를 가꾼다.
주민들은 동네 밖에서 예쁜 꽃을 구해오면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어 번식하게 한다. 그렇게 이 동네 사람들은 어여쁜 화초를 나누고, 이야기를 나누고, 밥을 나눈다. 낯선 행인들도 꽃이 예쁘다며, 골목 곳곳에 내놓은 벤치에 앉아 한참 수다를 떨다가 떠난다.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꽃 골목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대구에서 제사 음식 나누는 동네는 우리 동네 말고는 드물 겁니다." 주민들의 동네 자랑이다. 화초와 나무를 집에서 골목으로 내놓으니, 골목은 '마당'이 되고, 칙칙하고 삭막했던 도심은 '마을'이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