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농업이 경쟁력이다]8. 꽃이 핀 골목, 달성토성마을

입력 2019-04-12 03:30:00

우리나라 도시농업은 대부분 채소재배에 한정되는 경향이 있다. 이에 비해 미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 도시텃밭 선진국들은 농작물은 물론이고, 수목 및 화초재배, 양봉, 곤충사육 등 다채로운 도시농업을 자랑한다. 대구 달성토성마을은 골목에 화분을 내놓으면서 마을이, 사람이 달라졌다.

◇ 쓰레기 뒹굴고 악취 나던 골목

대구시 비산2‧3동에 자리한 '달성토성마을'은 2015년 6월 초까지만 해도 마을 골목은 물론이고 공터에 쓰레기가 넘치고 악취가 진동했다. 하지만 몇몇 주민들이 집안에 있던 꽃 화분을 집 앞 골목으로 내놓기 시작하면서 이 동네골목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달성토성마을 골목에는 화초 종류 만큼이나 화분 모양도 다양하다. 사진은 항아리 화분.
달성토성마을 골목에는 화초 종류 만큼이나 화분 모양도 다양하다. 사진은 항아리 화분.

이 마을 남자에게 시집와 40여년을 이 마을에서 살아온 서경숙씨는 화초 가꾸기를 좋아했다. 그녀의 집 옥상에서 예쁘게 피어난 화초를 발견한 엄석만 당시 비산2‧3동 동장이 집안의 화분을 골목으로 내놓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서경숙씨 부부를 비롯해 골목을 가운데 두고 마주보는 4집이 집안의 화분을 골목으로 내놓았다.

뒤이어 서너 집이 꽃 화분을 내놓았지만, 예쁜 화분들이 사라지는 일이 발생하자 주민들은 꽃 화분 내놓기를 꺼렸다.

◇ 집 앞에 꽃 화분 내놓기 시작

위기가 닥치자 서경숙씨 부부를 비롯한 주민들과 엄석만 동장이 나서서 주민들에게 '꽃 화분을 내놓아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며, 주민들을 설득했다.

"하기야 담배꽁초보다야 꽃 화분이 낫겠지…."

그렇게 주민들은 다시 꽃 화분을 내놓기 시작했다. 이후로도 꽃이 예쁜 화분이 사라지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지만, 그 빈도는 줄어들었다. 이와는 상대적으로 골목으로 나오는 꽃 화분 숫자는 빠르게 늘어났다. 골목에 꽃 화분이 빠르게 늘어나기 시작하자 더 이상 예쁜 꽃 화분이 밤사이 사라지는 일은 없어졌다. 그렇게 달성토성마을 골목길은 꽃 천지가 되었다.

백합, 동백, 꽃사과, 튤립, 파, 보리, 팬지, 채송화, 아로니아, 재스민, 부켄빌레아 등 이 동네 골목정원에서 자라는 식물 종류는 다양하다. 2019년 3월 현재 대구시 서구 비산2‧3동 달성토성마을에 실처럼 이어진 골목 곳곳에 40여개 꽃 정원이 조성돼 있다. 어디로 이어진 골목으로 들어가든 꽃 천지다.

◇ 깨끗하고 아름답고 안전한 골목

서구 비산동은 대구의 다른 동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한 동네다. 하지만 이 동네 골목은 대구시내 어느 골목보다 깨끗해 보인다. 종이 쪼가리 하나, 낙엽 하나 찾기도 어렵다. 어느 한 골목이 아니라 꽃 화분이 있는 골목들이 한결 같이 깨끗했다. 깔끔하기로 유명한 일본의 골목길을 보는 것 같다.

골목에서 만난 주민들은 "어쩌다 담배꽁초나 쓰레기가 눈에 띄면 주민들이 줍기 바쁘다"고 했다. 화초와 나무가 자라는 화분을 내놓았을 뿐인데, 동네는 말끔해졌고, 사람들 마음에는 여유와 배려가 싹 튼 것이다.

골목길 곳곳에서 마주친 사람들은 낯선 기자를 경계하는 대신 미소로 반겼다. 직접 이야기를 나눈 사람들은 물론이고, 그저 눈이 마주친 사람들도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목례를 건넸다. 자신들의 마을에 대한 자긍심이 묻어나는 미소였다.

대구시 서구 비산2,3동
대구시 서구 비산2,3동 '달성토성마을' 골목은 티끌하나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깨끗하다. 골목에 꽃화분을 내놓기 시작한 이래, 마을 주민들은 너나할 것없이 마을 청결에 앞장서고 있다. 조두진 기자

◇ 골목에 꽃이 피니 이야기꽃도 피어

초창기만 해도 골목에 있던 예쁜 화분이 종종 사라졌지만, 지금은 예쁜 화분이 앞 다투어 골목으로 나온다. 칙칙한 골목이 화사해지자 좀처럼 집밖으로 나오지 않던 사람들은 골목으로 나와 수시로 자기 집 앞 골목에 내놓은 화초를 가꾼다.

주민들은 동네 밖에서 예쁜 꽃을 구해오면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어 번식하게 한다. 그렇게 이 동네 사람들은 어여쁜 화초를 나누고, 이야기를 나누고, 밥을 나눈다. 낯선 행인들도 꽃이 예쁘다며, 골목 곳곳에 내놓은 벤치에 앉아 한참 수다를 떨다가 떠난다.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꽃 골목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대구에서 제사 음식 나누는 동네는 우리 동네 말고는 드물 겁니다." 주민들의 동네 자랑이다. 화초와 나무를 집에서 골목으로 내놓으니, 골목은 '마당'이 되고, 칙칙하고 삭막했던 도심은 '마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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