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먹방

입력 2019-03-20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서종철 논설위원

거센 조세 저항 때문에 벽난로세(Hearth Tax)를 폐지한 영국 의회는 세금 징수에 큰 타격을 입자 1696년 '창문세'를 신설했다. 건물의 창문 수에 따라 세금을 매겼는데 당시만 해도 유리 가격이 매우 비싸 창문 있는 집에 사는 서민이 드물었다고 한다.

그런데 부자들도 세금을 내지 않으려고 창문을 아예 없애거나 창문 수를 줄이면서 박쥐 소굴처럼 어두컴컴한 건물이 크게 늘었다. 불합리한 조세 정책이 실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다. 창문세는 1851년 주택세 도입과 함께 150여 년 만에 폐지됐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도 '먹방'이 사회·경제적 현상의 한 축으로 등장했다. 먹방은 창문이 없어 컴컴한 방이나 실내 공간을 지칭하는 속어다. 신호가 끊긴 전화기를 두고 먹통이라고 하듯 햇빛이 들지 않아 깜깜한 공간을 이르는 말이다.

먹방의 대표적인 사례가 고시원이다. 빈민가 쪽방이나 PC방·만화방·찜질방 등 비주택 거주민 숙소들의 형편도 별반 다를 바 없지만 고시원은 주머니 사정이 어려운 독신 저소득층 주거시설의 대명사다. 벌집처럼 수십 개의 방을 촘촘하게 잇댄 탓에 최소한의 주거 요건도 갖추지 못한 곳이 더 많다. 보안이나 건축비 절감을 이유로 창문을 따로 내지 않기 때문이다. 고시원은 현대 한국 사회의 어두운 이면이자 기형적인 주거 공간 현상의 하나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서울시가 고시원 주거환경 개선을 위해 '고시원 주거기준'을 전국에서 처음으로 만들어 그제 발표했다. 고시원 화재로 인명 피해가 계속 이어진 때문이다. 방 면적은 7㎡(2.12평) 이상 되어야 하고, 창문 설치도 의무화했다. 노후 고시원에 간이 스프링클러 설치 비용도 지원한다. 현재 전국 1만2천 곳 고시원의 절반이 서울에 몰려 있는데 74%가 먹방이다.

먹방은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를 넘어선 우리나라 복지정책의 둔한 방향 감각을 잘 보여준다. 국민 주거 복지를 위해 세금을 아끼지 않는 게 바로 선진국이다. 고시원 등 다중생활시설의 구조 개선은 인간다운 주거 공간에 대한 사회적 성찰이라는 점에서 건축법 개정도 서둘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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