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강의 LIKE A MOVIE] 일일시호일

입력 2019-01-30 10:33:20

*관련영화: #앙:단팥인생이야기 #녹차의맛 #인생후르츠

*명대사: "매일매일좋은 날"

*줄거리: 스무살의 노리코는 아직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찾지 못했다. 우연히 시작하게 된 다도가 그녀의 일상에 스며들면서 취업의 문턱에서 좌절할 때에도 소중한 사람을 잃고 마음의 방황기를 거칠 때에도 따스한 찻물이 그녀의 매일매일을 채우기 시작한다.

영화
영화 '일일시호일'

차 마시는 것을 유난히 좋아했던 나는 중학교 때 부터 차 마시는 습관을 이어왔다. 다도에 대한 격식을 그대로 따르지는 않았지만 조금씩 찾잔을 채우기를 반복하며 오롯이 엄마와 만담을 펼칠 수 있는 그 시간을 좋아했던 것 같다. 그 시간만큼은 엄마도 설겆이를 하거나 다른 가사를 보지 않고 차 만들기에만 집중했고, 나도 쫓김 없이 차만 마실 수 있었다.

<일일시호일>은 한 여인의 24년간의 다도 수업을 통해 매일 매일 행복하게 사는 법을 이야기하는 영화다. 20살 여대생 노리코(쿠로키 하루)는 대부분의 청년들이 그렇듯 앞으로의 인생에서 무엇을 해야 할 지 모른다. 타고난 재능이 있지도 않거니와 특별히 눈에 튀지도 않거니와 사회생활을 잘 할만한 성격도 아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알아서 각자 일 찾으며 잘 사는 것 같고 노리코만 뒤처진 것 같다. 노리코에게 세상은 너무 빠른 것일까. 그녀는 아직도 무엇을 해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 자신이 아둔한 존재같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한 기회에 사촌 미치코(타베 미카코)를 따라 이웃의 다케타(키키 키린)선생에게 다도를 배운다. 무역회사에 들어가겠다며 꿈이 확실했던 미치코와 달리 꿈이 없었던 노리코에게 다도는 큰 가르침이 된다. 다케타 선생은 노리코에게 말한다. 다도는 머리로 외우는 게 아니라 손이 기억하게 하는 것이라 말한다. 그리고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는 노리코에게 세상에는 바로 알 수 있는 일도 있지만 오래 보다 보면 깨닫는 일도 있다고 말이다. 이렇듯 자연스럽게 스미는 다도를 배우며 노리코는 흔들리던 자신을 찾아간다.

영화
영화 '일일시호일'

일일시호일은 일본 내에서 초판 이후 17년 동안 40만부 판매수를 기록한 스테디셀러 에세이 '매일매일 좋은 날'을 원작으로 영화화되었다. '매일매일 좋은 날'은 저자 모리시타 노리코가 25년 동안 다도를 배우며 알게 된 인생을 담은 에세이로 일본에서는 인생 바이블로 통한다. 저자 모리시타 노리코는 출판 후에도 멈추지 않고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다도를 배우며 오모티센케의 교수 자격을 얻기도 했다.

실제로 영화 '일일시호일'은 원작 에세이 '매일매일 좋은 날'에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제작진은 원작이 지닌 메세지를 담기 위해 주인공 노리코의 이름부터 저자의 이름을 그대로 살렸고, 촬영도 저자가 태어나고 자란 요코하마를 배경으로 했다. 저자 모리시타 노리코는 영화 촬영 동안 직접 다도 어드바이서로 참여하여 다도의 디테일을 책임졌다.

영화
영화 '일일시호일'

이 영화에서 다도처럼 깊이 있게 스며드는 여운을 주는 건 다케타의 캐릭터에 있다. 일일시호일은 작년 9월, 생을 마감한 명배우 키키 키린의 유작이다. 키키 키린이 보여주는 다케타 선생은 엄한 선생님이지만 자신을 낮출 줄 알고, 때로는 따뜻한 위로를 전하기도 하는 멘토이다. '인생은 배우는 것이 아닌 알아가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전하며 세상에는 느리게 살아야만 알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걸 가르쳐 준다. 감독은 "연기를 한다는 느낌보다 생활을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라며 그가 자신을 캐릭터에 녹여 고스란히 영화로 베어든 모습을 회고했다.

영화
영화 '일일시호일'

어떻게 보면 다도의 과정은 느리고 지루하며 격식으로만 가득차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도는 차를 통해 몸과 마음을 수련하여 덕을 쌓는 행위로 예법이 꼭 필요하다. 예법은 머리로 외워서 행하는 것이 아니고 오랜 시간 몸으로 마음으로 쌓아서 체득하는 것이다. 예법을 갖춰 차 한 잔을 대접하며 자신을 존중하고 높이는 마음을 가진다. 그리고 정성스레 건넨 차 한 잔이 위로가 되고 서로에 대한 이해로 이어진다. 요컨대 다도란 단지 남을 위한 예절이 아닌 나를 존중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이다.

'매일매일이 좋은 날'이라는 뜻의 일일시호일은 왜 매일매일이 좋다고 말하는 걸까. 영화 일일시호일을 보며 그 해답을 찾아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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