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노동조합의 타락

입력 2018-11-23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정경훈 논설위원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권리 보호와 인간다운 삶을 위해 필요한 사회적 장치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노조와 조합원에 좋은 것이 반드시 노조원이 아닌 사람들과 사회 전체에 좋은 것은 아니다. 노조가 이렇게 노조와 조합원에게만 좋은 것에 매몰될 때 노조는 반사회적 기득권 집단으로 전락하게 된다.

1980년대 중반까지 영국 국가 경쟁력의 총체적 저하를 가져온 영국 노조의 행태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그중에서도 인쇄공 조합의 '반사회성'은 특히 두드러졌다. 당시 인쇄공 조합은 식자공(植字工)으로 이뤄진 전국인쇄협회(NGA)와 인쇄 업계의 육체 노동자들로 구성된 '인쇄 및 동업협회 ʼ82' (SOGAT ʼ82)가 있었다.

이들 조직은 런던지역에서 까다로운 가입 조건의 클로즈드숍(사용자가 노조 가입자만 고용하는 제도)을 운용하고 있었다. 이는 조합원에 대해서는 엄청난 지배력을, 사용자에 대해서는 막강한 협상력을 인쇄공 노조에 부여했다.

이런 힘을 바탕으로 한 인쇄공 노조의 오만은 하늘을 찔렀다. 식자공들이 뉴스 기사와 논평까지 검열했던 것이다. 그들은 동의할 수 없는 문구를 찾으면 바로 삭제해버렸다. 또 툭하면 파업으로 신문 발행을 중단시켰다. 경제전문지 파이낸셜타임스는 1983년 6월 1일부터 8월 8일까지, '더 타임스'를 비롯한 전국의 모든 신문도 같은 해 11월 25일부터 27일까지 발행되지 못했다. 세상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더 타임스와 파이낸셜타임스지만 그들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인쇄공 노조라는 말이 나온 이유다.

인쇄공 노조는 더 나아가 새로운 일간지 '투데이'의 발간을 저지하려 했고, 인쇄공 노조원을 쓰지 않는 루퍼트 머독의 최신식 인쇄공장의 가동을 막기 위해 공장이 들어선 지역을 폐쇄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비노조원에 대한 폭행은 물론 발행자에 대한 살해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민주노총 소속 노조의 고용 세습 사실이 잇따라 드러나고 있다. 민주노총이 이기적이고 반사회적인 노동귀족 집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고용 세습은 나만 잘 먹고 잘 살겠다는 도덕적 타락이다. 그 끝이 무엇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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