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파구리 아시죠? 식품업계 유행된 모디슈머

입력 2018-11-22 14:40:52 수정 2018-11-23 10:06:36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소개되며 꿀조합으로 인기를 얻은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소개되며 꿀조합으로 인기를 얻은 '골빔면'. 골뱅이와 비빔면을 함께 즐기는 일종의 모디슈머 아이템이다.

이제는 하나의 대명사처럼 굳어져 버린 '짜파구리'. 짜장 라면에 일반 너구리 라면을 함께 섞은 것을 말한다. 상상하기 어려운 희한한 조합이지만 두 라면의 하모니는 절묘할 만큼 환상적이다. 달달한 짜장 라면에 매콤한 해산물 맛의 라면 소스가 더해지면서 한층 풍성한 맛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짜파구리'는 2013년 MBC '아빠 어디가'라는 예능프로그램에서 윤민수의 아들 윤후가 복스럽게 짜파구리를 먹는 장면이 방송을 탄 이후 이를 직접 따라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전국민에게 사랑받는 메뉴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심지어 '짜파구리'의 인기에 힘입어 한때 너구리는 최고의 국민 라면으로 출시 이후 29년간 아성을 지켜온 신라면을 잠시 추월하기도 했고, 짜파게티는 2013년 상반기 약 725억 원의 누적 매출을 기록해 출시 이후 처음으로 안성탕면을 제치고 넘버 2 브랜드로 발돋움했다.

사람들은 왜 기존 판매되는 상품에 만족하지 않고 이렇게 이상하고 놀라운, 가끔은 황당하기까지한 새로운 조합을 시도하는걸까?

◆기존 제품 활용해 새롭게 창조한다
과거 백세주가 출시되고 한창 인기를 끌던 시절, 주머니 가벼운 젊은층에서는 백세주를 소주와 1대 1 비율로 섞어 만든 오십세주를 즐겨먹었다. 이것이 '모디슈머'의 시작이었을까?

모디슈머는 '수정하다(Modify)'와 '소비자(Consumer)'의 합성어다. 제조업체가 제공한 조리법을 따르지 않고 자신이 재창조한 방법으로 제품을 즐기는 소비자를 모디슈머를 일컫는다. 기존 제품을 새로운 방식으로 체험하면서 즐기는 소비자라는 뜻에서 '크리슈머(Creative+Consumer)'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모디슈머에게 제조업체이 제시하는 조리법은 참고용에 불과할 뿐이다. 모디슈머의 활약상이 가장 두드러지는 음식은 바로 라면이다. 조리법이 간단하고 건조식이라 언제 어느때든 쉽게 활용가능한 재료이지만 그 변신은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특히 2012년 무렵부터는 서로 다른 라면 2개를 활용해 완전히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내는 이른바 '트랜스포머 레시피'도 인기를 얻고 있다. 짜파구리(짜파게티+너구리), 너볶이(너구리+떡볶이), 오파게티(오징어짬뽕+짜파게티), 왕구리(왕뚜껑+너구리), 신파게티(신라면+짜파게티) 등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혼밥 트렌드와 결합한 SNS 영향 커
모디슈머의 출현에는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혼밥을 즐기는 이들이 급증한 사회 변화와 연관이 있다. 사실 우리나라의 식문화는 밥과 찌게를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준비하는 번거로움이 커 혼자 즐기수 있는 식문화가 제한적이다. 당연히 즉석식품 등으로 간단히 떼울 수 밖에 없는 상황. 하지만 개성과 소확행을 중시하는 요즘 젊은이들은 즉석식품마저도 조금 더 재치있고 맛있게 나만의 독특한 레시피를 만드는 즐거움을 느껴보자며 다양한 창의성을 뽐내고 있다. 이들은 더 이상 기존에 만들어진 레디메이드(Ready Made)에 만족하지 않고 무한한 변신을 통해 새로운 소비 방법을 제안한다.

여기에다 나홀로 문화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결합은 모디슈머가 크게 확산되는 통로가 됐다. TV를 통해 연예인들이 자신만의 독특한 모디슈머 레시피를 예능 프로그램 등에서 소개했다면, SNS는 유명인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자신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장(場)'이 됐기 때문이다. 특히 SNS를 통해 레시피나 맛집을 검색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SNS는 아예 우리나라의 식문화를 주도하는 흐름으로 대두했고, 그 과정에서 모디슈머의 역할도 더욱 부각됐다. 전문가들은 "1인 가구가 늘고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소비자가 직접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재창조하는 소비를 통해 소소한 즐거움을 얻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기업에 역으로 제품 아이디어 제공
모디슈머의 영향력이 SNS에만 머무르는 것은 아니다. 아예 식품업계에서 '모디슈머'가 직접 재창조한 요리나 아이디어는 실제로 신제품 출시에도 그대로 적용되기도 한다. 업계에서도 생각지 못한 다양한 상상력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이미 맛과 영향력이 검증된 모디슈머의 아이디어를 조금 보완해 제품으로 개발함으로써 시장경쟁력을 높이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고 있는 것이다.

농심은 짜파구리의 인기에 힘입어 '볶음 너구리'를 내놨고, 이탈리아 음식인 까르보나라 소스와 결함한 '너구보나라'도 출시됐다. 불닭볶음면 역시 모디슈머의 아이디어에 힘입어 '짜장불닭볶음면', '치즈불닭볶음면'으로 변신했고, 참치와 라면을 함께 즐기는 이들을 위해 동원에서는 컵라면 형태의 '동원참치라면'을 선보였다.

음료에서도 이런 경향은 이어져 GS25는 '유어스 구르미만든 크림 소다'를 출시해 인기몰이를 했다. SNS에서 '꿀조합 음료'로 불리며 밀키스와 유어스 블루레몬에이드를 1대2의 비율로 섞어먹는 유행을 그대로 차용해 제품화 한 것이다. 또 초코파이를 시원한 음료로 탄생시킨 '초코파이 셰이크', 알록달록한 색과 귀여운 모양의 젤리밥에 탄산수를 부어 얼린 '젤리밥바', 까메오를 토핑으로 곁들인 '까메오 빙수' 등도 인기다. 잇따라 PB제품을 쏟아내고 있는 편의점 업계는 모디슈머들의 '성지'로 불리며 다양한 아이디어 생산을 자극하고, 업체들은 이를 상품화하며 함께 발맞추고 있는 것이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소비자 반응에 민감한 식품업계에서 모디슈머가 SNS를 통해 기업과 소비자 사이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며 신제품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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