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달해의 엔터인사이트] '신서유기'가 판 깔고 '와썹맨'이 키우고, 웹 예능 영역 확장

입력 2018-11-14 11:51:50

인터넷을 통해 서비스되는 방식으로 시작된
인터넷을 통해 서비스되는 방식으로 시작된 '신서유기'. tvN 제공

TV용 예능 콘텐트의 활동영역이 대폭 확장됐다. 더 이상 TV에 국한되지 않고 인터넷망을 통해 전파되는 OTT(Over The Top) 방식으로 서비스돼 업계에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단순히 각 방송사 채널을 플랫폼 삼아 방송돼 시청률 경쟁을 벌이던 과거에 비해 디지털 웹 예능은 세계 각국에 어필하며 팬들을 모은다. 지금은 TV용 콘텐트로 방송되고 있는 tvN 나영석 PD의 '신서유기'가 이와 같은 방식으로 시작된 케이스. 그리고 JTBC 디지털스튜디오 룰루랄라의 '와썹맨'이 디지털에 최적화된 포맷을 개발해 유튜브에서만 150만 명에 육박하는 구독자를 불러모으며 웹 예능 전성시절의 포문을 열어젖혔다. 유재석이 출연한 '범인은 바로 너' 역시 미국의 OTT 서비스 기업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콘텐트로 개발돼 주목받았다. 그중 '와썹맨'은 TV 방송보다 디지털에 딱 들어맞는 내용으로 새로움을 찾는 젊은 층에 크게 어필하고 있는 중이다. 1인 방송 등 디지털 영상 콘텐트에 익숙한 현 세대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정규방송 콘텐트로도 무난했던 OTT 콘텐트
정규방송 콘텐트로도 무난했던 OTT 콘텐트 '범인은 바로 너'. 넷플렉스 제공

#디지털 플랫폼 개발과 함께 다양한 콘텐트 등장

과거 예능 콘텐트와 시청자를 이어주는 접점은 '채널'이 유일했다. 각 방송사는 자사 채널의 성격에 어울리는 예능 콘텐트를 개발해 경쟁사와 광고 선점 경쟁을 벌였다. 예능 제작진은 온갖 규제 속에서 '착하고 욕먹지 않으면서도 즐겁고 웃기는' 예능 콘텐트를 만들어내느라 진땀을 흘렸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누구나 TV만 틀면 볼 수 있다는 방송 플랫폼의 특성 때문에 예능 콘텐트는 유쾌하게 상대를 웃겨주면서 나름의 주제의식을 가져야 했고 폭소를 유발할 수 있는 소재라고 해도 사회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신중하게 접근해야만 했다.

'국민MC' 반열에 오른 유재석이야말로 이런 환경에 최적화된 예능인이었다. 착하고 선한 이미지에 성실한 면모가 돋보이고, 웃음을 끌어낼 때도 동반 출연자의 기분을 생각하며, 무엇보다 시청자로 하여금 거부감 없이 자신의 액션에 공감하게 만드는 매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지상파 예능 콘텐트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인물이다. 반면 장동민 등 '옹달샘' 트리오는 팟캐스트 등 온라인 환경에서 거리낌 없이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며 팬 층을 확보하고 승승장구했지만 방송 채널에서는 역량의 반도 드러내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심지어 디지털 포맷에서 규제 걱정없이 내뱉은 말들이 화살이 돼 본인에게 돌아왔다. 어찌보면 카메라 없는 공연장 무대나 디지털 환경에 최적화된 예능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위 예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착하면서도 재미있는' 방송용 콘텐트와 '세고 독하면서 재미있는' 디지털 콘텐트는 결국 섞이지 못하고 각자의 세상에서만 생존할 수 있었다. 보이지 않는 담벼락이 있었다고 봐도 좋겠다. 그런데, 그 보이지 않는 담벼락 사이에 큰 구멍이 뚫리면서 교류가 시작됐고 이제 두 세상이 서로 섞여 문화를 공유하는 상황이 도래했다. 디지털 콘텐트가 TV용으로 재편집돼 방송되고, 혹은 디지털 환경 하에서 이뤄진 실험을 토대로 TV용 콘텐트를 제작하는 등의 시도다. 또 특정 콘텐트의 경우 순전히 디지털 플랫폼에서만 놀라운 파급력과 화제성을 과시하며 승승장구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디지털 플랫폼에서 얻은 인기를 토대로 방송용 광고를 찍고 또는 방송용 콘텐트를 통해 언급되기도 한다. 성공을 위한 필수요소는 정확한 타깃 설정, 그리고 특정 플랫폼의 특성을 잘 고려한 전략적 콘텐트 제작일 뿐. TV 메인 채널 진입이 쉽지 않아 울며 겨자먹기로 웹예능이란 이름을 달고 시작하던 방식은 이제 옛말일 뿐이다.

OTT 콘텐트로 큰 성공을 거둔
OTT 콘텐트로 큰 성공을 거둔 '와썹맨'. JTBC 제공

#'와썹맨'이 열어젖힌 웹예능 전성시대

2015년 디지털 플랫폼에서 공개된 '신서유기'는 당시 4천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웹 예능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남았다. 강호동, 은지원, 이수근 등 나영석 PD가 '1박2일'에서 함께 했던 멤버들을 불러모았고, '1박2일'의 또 다른 스타 이승기까지 합류해 화제가 됐다. 디지털 환경의 특성에 걸맞게 이혼과 도박 등 출연자들의 어두운 과거사를 거침없이 들춰내는 등 방송 메인 채널 콘텐트에서는 볼 수 없던 재미로 시청자들에 어필했다. 지상파 방식의 예능에 익숙했던 출연자들이 카메라 앞에서 대화하면서 대화 소재 때문에 움찔하던 모습이 드러났을 정도로 나름 파격적인 재미였다. 이후 '신서유기'는 거친 유머를 줄이고 포맷을 정교하게 다듬어 방송 채널에 적합한 콘텐트로 변신했다. 현재 시즌6가 tvN에서 방송되고 있다.

유재석의 '범인은 바로 너'는 사실 시작 당시의 '신서유기'와는 성격이 다른 콘텐트다. 바로 정규방송용 콘텐트로 편성됐어도 무난할 정도의 일반적인 예능프로그램이었다. 다만, 세계적으로 입지를 넓히고 있는 OTT기업 넷플릭스가 한국과 작업한 첫 오리지널 예능콘텐트였다는 사실 만으로도 충분히 화제가 될 만했다. 웹 말고도 해외 OTT 플랫폼까지 확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입증됐기 때문이다.

JTBC 디지털스튜디오 룰루랄라의
JTBC 디지털스튜디오 룰루랄라의 '와썹맨'

이에 반해 '와썹맨'은 오롯이 디지털 플랫폼을 기반으로 승부해 성공한 콘텐트다. 한편으로 디지털 공간이기 때문에 이 정도의 성과가 가능했던 콘텐트이기도 하다.

'와썹맨'은 JTBC의 디지털 스튜디오 룰루랄라에서 내놓은 프로그램이다. 이곳저곳을 다니며 물건을 파는 컨셉트였으며 당시 god의 리더 박준형이 여러 출연진 중 한명이었다. '사서고생' 이후 제작진이 박준형을 내세운 일종의 스핀오프 버전을 기획했는데 이 콘텐트가 바로 '와썹맨'이다. 포맷이라고는 박준형이 요즘 '핫'하다고 소문난 장소를 직접 찾아가 현장을 살펴보고 그 곳에 있는 사람들도 만나본다는 정도가 전부다. 전개가 어찌될지 모를 정도로 '열린 포맷'이고 사실상 박준형의 개인기에 의존한다는 인상까지 준다. 하지만 막상 뚜껑이 열린 뒤 나온 반응은 기대 이상으로 뜨거웠다. 시청자들은 '와썹맨'의 재기 넘치는 편집방식에 열광했다. 특정 장소를 찾아가 현장 리뷰를 하고 만나는 사람들과의 돌발 인터뷰를 진행하는 과정이 지루할 틈 없을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며, 랩을 하듯 시끌벅적하게 떠들어대는 박준형의 진행방식도 BGM을 섞어 리듬감 있게 보여준다. 편당 10분 남짓한 러닝타임 동안 찾아간 장소에 대해 은근히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무엇보다 쉴 틈 없이 웃게 만들어 예능 콘텐트로서 '할 일'을 다해내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박준형이 현장에 있는 일반인들과 함께 만들어내는 시너지 효과도 최상급이다. 화면 속 일반인들은 갑자기 눈앞에 나타나 정신을 쏙 빼놓는 박준형을 바라보며 어색한 리액션으로 화답한다. 깊이 있는 대화는 아니지만 현장성이 부각돼 보는 재미가 상당하다. 그저 이 어색한 조합 만으로도 상당한 양의 웃음이 터져나온다.

지금까지 업데이트된 콘텐트 수가 45편 정도인데 유튜브에서만 구독자 150만명 돌파를 바라보고 있으며 전체 영상 재생 횟수 역시 6천 718만 회에 육박한다. 웹 예능 단일 콘텐트가 이 정도의 반향을 불러일으킨 건 '와썹맨'이 처음이다. 뜨거운 인기와 함께 '와썹맨' 촬영 유치 경쟁도 치열해졌다. 핫플레이스를 소개하는 '와썹맨'의 컨셉트에 맞춰 '우리 플레이스에도 찾아와달라'는 협찬 제안이 넘쳐난다. 단순히 즐거움만 주는 것이 아니라 수익구조를 만들어내면서 웹 예능 콘텐트의 항로를 확보한 셈이다.

'와썹맨'의 경우 '신서유기'와 달리 아예 TV방영을 염두에 두지 않고 오직 디지털 플랫폼에서만 승부를 걸고 있다. 상대적으로 규제가 약한 디지털 플랫폼의 특성에 딱 들어맞는 콘텐트라 TV 방영용으로 제작됐을 때 오히려 보는 재미가 떨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정달해(대중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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