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면서 즐기는 답사여행] 김수로왕·허왕옥 왕비 유적, 가야문화 속으로…경남 김해

입력 2018-11-14 20:00:00


거북아 거북아(龜何 龜何귀하귀하)
머리를 내놓아라(首其 現也수기현야)
만일 내놓지 않는다면(若不 現也약불현야)
구워서 먹으리(燔灼而 喫也번작이끽야)


가락국 시조 수로왕의 강림신화인 '구지가'가 전해지는
김해는 낙동강이 북동쪽을 감싸고 남쪽에는 조만강이, 시내 중심에는 해반천이 북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물의 고장 즉 수향(水鄕)이다.

오랜 세월 여러개의 물줄기가 만들어 놓은 기름지고 넓은 김해평야는 2천년 전 금관가야의 터전으로 500년 동안 가야문화의 꽃을 피운 천년의 고도(古都)이다. 그런 연유로 김해는 김수로왕과 허황옥왕비와 관련된 유적이나 지명이 많다. 신어산의 은하사, 장유암, 망산도, 명월사터, 초선대 등과 클레이아크미술관, 분청도자관, 가야역사테마파크, 국립김해박물관, 김해시민천문대 등 많은 볼거리와 진영단감이 유명하다.
오늘은 가족이 함께하면 유익한 분산성, 봉황대, 가락국 유적지로 만추의 가을여행을 떠난다.

하늘가는 길처럼 보이는 퇴뫼식 산성인 분산성
하늘가는 길처럼 보이는 퇴뫼식 산성인 분산성

◆분산성(盆山城)
김해 시내에 우뚝 솟은 분산(분성산)에 위치한 분산성은 어방동 해발330m에 있다. 둘레 약900m 산 정상에 쌓은 퇴뫼식 산성으로 남북으로 긴 타원형을 이룬 성벽으로 시내방향은 수직에 가까운 석축으로 높이가 약3~5m이다. 이곳에 있는 '정국군박공위축성사 사적비'에는 조선 초기에 박위가 옛 산성 축조방법에 의거하여 수축한 뒤 임진왜란 때 무너진 것을 1871년(고종 8)에 현재의 성벽으로 고쳤다고한다. 사적 제66호로이며 축성 방법은 삼국시대 산성의 주류를 이루던, 산 정상부에 쌓은 퇴뫼식산성으로 삼국시대에 처음 쌓았을 것으로추정할 수 있다.

분산성에서 바라본 갬해시가지와 김해평야
분산성에서 바라본 갬해시가지와 김해평야

산성 서쪽 삼진리에 있는 고분군의 유적으로 보아 가야시대에도 군사적으로 중요한 산성이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산성 안에는 허황옥 왕비가 바닷길을 무사히 항해하여 김해에 도착하도록 도와준 바다에 감사하다는 뜻으로 지었다는 해은사, 고려말기와 조선말기에 이 성을 보수한 내력과 그들의 업적을 기리는 비석 4기가 있는 충의각, 거대한 자연 암벽에 '만장대(萬丈臺)라는 흥선대원군의 친필휘호가 새겨진 만장대, 고인돌로 이어진 '가야 하늘길' 끝이 산성 정상이다. 서늘하리 만큼 아찔한 수직절벽위에 서면, 천하를 얻은 듯, 보이는 모든 산하가 내 발 아래 있는 있음에 통쾌하고 황홀하다.

입장료는 없으며 가야테마파크에 주차 후 도보로 '가야 하늘 길'을 따라가면 된다. 시민천문대 별자리 관측과 가야테마파크 체험도 함께할 수 있는 곳이다.

봉황동 유적지에는 당시의 가옥을 재현한 고상가옥
봉황동 유적지에는 당시의 가옥을 재현한 고상가옥

◆봉황동 유적지
봉황동 유적지는 수로왕릉에서 도보로 약10분 거리에 있다.
가야시대 전반기 가장 융성했던 금관가야(가락국)은 서기42년 수로왕의 즉위로부터 시작해 530년 구형왕이 신라에 투항함으로 역사속으로 사라진 왕성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나지막한 산 정상에는 큼직한 바위에 가락국 천제단(駕洛國 天祭壇)이라는 쓰여 있다.
천제단 옆에는 황세바위와 여의각이 있다. 여기에는 가락국 말기 출정승의 딸 '여의'와 황정승의 아들 '세'의 애뜻하고 슬픈 전설이 전해온다.
황세는 가락국의 9대 임금 겸지왕(숙왕) 때 인물이다.
황정승과 친구 사이인 출정승은 서로 아들을 낳으면 의형제를 아들과 딸을 낳으면 결혼 시키기로 언약했다. 그러나 황정승의 집안이 몰락하자 출정승은 딸인 여의를 아들이라고 하였다. 의형제를 맺은 황세와 여의는 어릴 때 부터 같이 자랐는데 의심이 든 황세는 어느 날 오줌 멀리누기시합을 제의하자 여의는 삼대줄기를 사용하여 위기를 넘겼다고 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여의가 자라면서 점점 성숙한 여인의 모습을 띠게 되자 이를 더욱 수상히 여긴 황세가 해반천에서 멱을 감자고 하였는데 여의는 할 수 없이 여자임을 밝히고 둘은 결혼을 약속하였다. 그후 신라와 전쟁에서 공을 세운 황세가 왕명을 받아 유민공주와 결혼하게되자 여의는 황세장군을 그리워하다 죽었다. 황세 또한 여의낭자를 그리워하며 그해 상사병으로 죽었다고 하는 전설이다.
봉황동유적지는 사적 제2호이며 입장료는 없으며 주차공간은 넉넉하다.

가락국 시조인 김수로왕릉 전경
가락국 시조인 김수로왕릉 전경

◆금관가야(가락국) 유적
김해를 대표하는 가락국유적인 김수로왕릉은 시내 한복판 서상동에 있다. 6개의 알에서 머리를 제일 먼저 내밀었다 하여 '수로(首露)'라는 이름을 얻은 김수로왕은 우리나라에서 인원이 가장 많은 김해 김씨, 허씨, 인천 이씨의 시조이며 가락국을 창건한 왕이다. 능호는 납능이며 봉분은 5m 높이다. 1만5천 평의 넓은 능역에는 숭선전을 비롯한 여러 건물들이 단정하게 자리하고 있어 엄숙함과 안온함을 느끼는 곳이다.
숭선전 제례는 춘추제례(음력 3월 15일, 9월 15일)로 행한다.

허황옥 왕비릉 앞에 있는 파사석탑
허황옥 왕비릉 앞에 있는 파사석탑

납릉 정문에 마주보고 있는 물고기 문양을 확인하시기 바란다. 이 문양은 인도 아요디아에서 오래도록 사용된 고유의 장식문양이라고 한다. 얼마 전 인도 아요디아에는 '허황옥 공원' 착공식이 있었다.이를 계기로 양국이 두터운 우정으로 상호 교류와 교역이 활발하길 기원해본다.
허황옥왕비릉 앞의 비문은 '보주태후허씨릉(普州太后許氏陵)이라고 적혀있다.
허왕비는 16세의 나이에 머나먼 이국인 아유타국에서 배를 타고 와서 수로왕의 부인이 되었다. 능 앞에는 파사석탑이 있다.
이 돌은 우리나라에서 나는 돌이 아니라 한다. 약간 붉은 빛이 난다. 수로왕이 탄강했다는 구지봉은 능 왼편쪽에 있다.
왕비릉에서 약20여분 거리에는 김해를 상징하는 신어산이 있다. 이 산에는 아름다운 여인의 이름이 연상되는 은하사가 있다. 이 절은 허왕비 오빠인 장유화상이 인도로 부터 불교를 전래하기 위해지었다고 한다.

tip:
*가는 길: 대구→대구부산간고속도→남해안고속도→동김해IC→분산성
(소요시간 약1시간40분)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진례면 송정리에는 도자와 건축의 만남을 지향하는 세계최초 건축도자 전문미술관이 있다.
미술관숍, 카페테리아, 도자점 등 부대시설과 건물 외벽은 손으로 직접그림을 그려서 구워 제작한 대형타일이 이색적이다. 입장료는 성인 2천원이다. 예약 055) 340-7000
*대성동고분박물관: 시내를 가로 지르는 해반천변 '가야의 거리'에는가야무사의 투구모양을 형상화한 박물관이 있다. 대성동고분에서 발굴된 기마무사상, 철기 제작 및 순장풍습 등 유물과 유구를 전시하고 있다. 월요일이 휴무이고 입장료는 없다.

*석정숯불갈비(055 327-8840):
수로왕릉 앞에 있어 찾아가기 쉬운 이 식당은 깨끗하고 넓은 실내에
정갈한 밑반찬이 일품이다. 갈비탕 1인분 8천원.


글 사진 이승호 답사마당 원장
leesh06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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