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은 '돈'과 관련된 요구로 귀결…기관, 금융회사에서 돈 얘기하면 경계해야
'눈 뜨고 코 베이는' 보이스피싱이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다. 보이스피싱이 등장한 지 10여년이 됐지만 대구에서만 수백명이 넘는 피해자가 발생한다.
보이스피싱 조직원은 피해자의 직업 등 인적사항은 물론 주변 인물, 계좌 개설일까지 꿰고 있고 어려운 법률 용어와 처벌 가능성을 들이대거나 돈이 급한 저신용자에게 저금리 대환대출을 권유하는 등 연령대별로 공략법을 달리하며 접근하고 있다.
특히 어눌한 중국동포의 말투 대신 정확하고 빠른 표준어를 사용하고, 당당하게 어려운 법률 용어를 적절히 섞는 등의 수법을 동원해 알고도 속는 경우가 태반이다.
◆"내 말대로 하지 않으면 당신도 처벌받을 수 있다"
"사건 담당하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1팀 양인철 검사입니다. 김은주씨, 1990년생 본인 맞으십니까. 지금부터 말씀하시는 내용 모두 녹취되니 사실만을 말씀하셔야합니다."
김은주(가명) 씨는 얼마 전 서울중앙지검에게서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광주에서 박경수라는 남성이 대포통장 관련 사건으로 검거됐는데, 조사과정에서 김씨 명의의 통장 2개가 발견됐다는 이유였다.
검사라는 남성은 김 씨에게 "통화내용이 녹음되고 있으니 사람이 없는 조용한 곳에 가서 전화를 받으라"고 요구했다. 이어 "최근 5년 간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 여권 등을 분실한 적이 있냐"면서 "본인 부주의로 개인정보가 유출된 것으로 확인되면 피해금액의 15%를 법적으로 책임져야한다"고 경고했다.
당황한 김 씨가 우물쭈물하자, 남성은 단호하고 빠른 목소리로 "상황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은데, 당신은 지금 금전적인 댓가를 받고 명의를 제공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잘못된 판단으로 범죄에 연루될 수 있다는 뜻"이라고 다그쳤다.
겁에 질린 김 씨에게 이 남성은 "일부 계좌를 지급 정지시키겠다. 경찰서까지 갈 시간이 없으니 해결해주겠다"고 SNS 메신저로 사이트 주소를 보냈다.
김씨가 서둘러 개인 정보를 입력하자 순식간에 계좌에 있던 수천만원이 빠져나갔다. 전화를 받은 지 30분도 채 안된 시간이었다. 사건 내용과 처리 현황 등을 안내받을 수 있다며 남성이 알려준 사건번호와 사무실 전화번호는 모두 가짜였다.
◆정중하고 단호한 '그 놈 목소리', 각종 신상정보 꿰고 있어
9일 대구경찰청에 따르면 올 들어 8월까지 발생한 보이스피싱 범죄건수는 637건, 피해액은 69억원에 이른다. 이는 지난해 발생 건수(668건)와 피해액(62억원)에 맞먹는 수준이다. 유형별로 살펴보면 대출사기형이 528건(82.9%)으로 가장 많았고, 나머지 109건은 기관사칭형이었다. 피해자는 40대 이상이 많지만 20, 30대 청년들도 적지 않게 속는다.
지난 10여년간 수많은 피해사례를 남긴 보이스피싱이 숙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은 온라인 등을 통해 유출된 정보로 먹잇감을 특정한다. 이후 피해자의 이름과 생년월일, 직업, 가족관계는 물론, 계좌를 개설한 은행, 개설일까지 들먹이는 등 개인정보를 알고 접근한다.
특히 어눌한 중국동포의 말투가 아닌, 정확하고 빠른 말투와 중저음의 목소리로 신뢰감을 높인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어려운 법률 용어를 적절히 섞고, 통화 내용을 녹취하고 있다거나 피해자가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를 당당하게 하니 누구든 알고도 속게 된다는 것이다.
안재운 대구 수성경찰서 지능팀장은 "사회로 발을 내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데다 재테크 등을 시작하는 2, 3년차 사회초년생, 특히 교사 등 전문직 여성을 노리는 경우가 많다"며 "검사 등 수사기관을 사칭해 돈이나 범죄에 연루됐다고 하면 겁을 먹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한 2시간 넘게 통화를 이어가며 다른 사람과 접촉을 차단하고, 정신을 혼란하게 해 자신들의 제안을 따르도록 하는 수법도 활용한다.
오승철 대구 수성경찰서 형사과장은 "보이스피싱 조직원은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권위적이고 단호하게 말한다"며 "젊은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 피해자들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경찰은 수사기관이나 금융회사를 사칭한 이들이 개인정보를 확인하며 접근하더라도, 요구 내용이 돈과 관련이 있다면 경계해야한다고 조언한다.
김현국 대구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장은 "어떤 기관·업체든 전화로 돈을 요구하거나 송금하라고 하지 않는다. 그들이 최종적으로 요구하는 것이 돈이라는 것을 알게되는 즉시 전화를 끊거나 피해야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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