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시단(詩壇), 안녕하십니까?

입력 2018-10-22 11:18:28 수정 2018-10-22 18:22:11

서정호(2017매일시니어문학상 시부문 최우수상 수상작가)

서정호 시인
서정호 시인

어느 문학 계간지에 신인상 당선작을 보고 몇 마디 말씀을 드리고 싶어 이 글을 쓴다. 예전에 내가 문예지 신인상 공모에 응모하려고 했더니 친구가 "왜 응모하냐? 돈 주고 (신인상 당선 타이틀) 사면 되는데" 하고 빈정거렸다. 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시인이라는 것을 조선시대 돈 주고 양반을 사듯 돈 주고 사는 것이란 말인가?

그때는 몰랐다. 그런데 시단에 발을 담그고 보니 그게 사실이었고 시인이 부끄럽다는 생각이 마음 한편에서 일어났다.

시 전문지 또는 시 전문 계간지 중 일부가 등단을 빌미로 장사를 하고 있다고 올봄 '문학계의 등단장사 민낯을 보다'란 뉴스도 있었다. 그 기사를 읽는 순간 내 시작(詩作) 노트에 '등단장사'라는 제목으로 산문시를 한 편 썼다.

「엄마가 시인으로 등단하여 도원 역 앞 영주 추어탕 집으로 가을바람 쐬며 갔다. 큰 현수막에 KBS, MBC, SBS 맛집이라 써 놓았다.

심심소일로 동네 문화강좌에 시를 배우러 다니던 엄마, 엄마 친구 김말례 씨가 시인으로 등단하자 갑자기 다른 도서관 문화강좌로 옮겼다. 큰 결심이라도 한 듯 올해는 기어이 시인이 되고 말겠다고 했다. 강사가 등단 잘 시키는 소문난 시인이라 특강 6개월만 들으면 시인 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인데 6개월 특강비가 월 50만원이라 했다.

컴퓨터 다룰 줄 모르는 엄마, 삐뚤빼뚤 철자법 맞지 않는 볼펜으로 쓴 원고 6개월간 꼬박 보내와 타이핑해 주었다. 지난 3월 엄마는 신간 문학계간지 봄호에 정말 식은 죽 먹듯 신인상을 받았다. '수산시장에는 고래가 없다' 외 3편이었는데 그동안 쳐 주었던 습작은 하나도 없었고 3편 모두 엄마가 배운다는 시인의 시를 읽는 것 같았다. 엄마는 책 사지 않으면 상을 안 준다고 하여 책 300권을 샀으니 친구들에게 나눠주라고 하였다. 숟가락 놓으며 방송에 소개되는 맛집 돈 주고 내는 집이 많다더니 맛이 없다며 입맛을 쩝쩝 다셨다. 메뉴판 깨알 글씨 고등어 50% 민물 잡어 50%였다. 미꾸라지 한 마리도 안 든 추어탕 먹고 나온 식당 앞 가을바람이 여름바람처럼 후텁지근하였다. 엄마는 책 300권 우짜노 하며 걱정이었다.」

문예지를 사고파는 일을 넘어 문하생에게 대신 써 준 작품으로 신인상을 받게 하는 일도 있다고 했다.

시인이 되고 싶은 욕망과 시인을 많이 등단시켜 유명 시인으로 군림하고 싶은 욕망들이 얽혀 고치는 정도를 넘어 대작(代作)을 주는 검은 커넥션은 시라는 아름다운 호수를 시궁창으로 만들 것이다.

기성 시인이 대신 써 준 작품으로 신인상을 받는 시인이 늘어나고 그런 문예지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시단은 병들고 시는 사라지고 독자도 사라질 것이다. 시는 시인이 읽는 것이 아니고 시를 사랑하는 독자가 읽는 것이다. 등단한 시인이 되기를 바랄 일이 아니라, 시를 사랑하는 진짜 시인이 되는 일이 우선일 것이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