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대 교수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고전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봤습니다. 어머, 저게 저런 영화였어! 마치 새로운 영화를 본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영화가 달라진 것이 아니라 내가 달라진 거지요? 청춘이 지나간 겁니다. 열정을 사랑했지만 열정에 시달리기도 했던 청춘이. 오랫동안 젊었던 우리는 종종 청춘이 지나갔음을 잊습니다. 지나간 청춘이 허무할 때도 있고, 그리울 때도 있고, 다행일 때도 있습니다. 청춘을 지나오면서 잃어버린 것도 많지만 잃어버렸다고 생각되는 그것이 영원히 쥘 수 있는 것이 없음을 알려주는 스승 같기도 합니다.
나이 들어 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는 젊은 날 홀린 듯 몰입했던 스카렛 오하라가 그리 끌리지 않네요. 물론 그녀는 분명히 매력적입니다. 아버지가 사랑했던 아버지의 딸로서, 아버지의 후계자로서 목숨 걸고 타라를 지켜가는 그녀에게는 생존이 법입니다. 그 아버지는 전쟁 중에 미쳤고, 세금 낼 돈은 없고, 그들의 삶의 터전인 붉은 땅 타라는 끈덕지게 넘보는 이들의 손에 넘어갈지도 모릅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녀의 생존력은 타라를 지킨 독보적인 힘입니다. 오히려 여신급인 그녀의 미모가 그녀 인생을 평가 절하하는 걸림돌이었겠다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생존이 법인 사람들은 극성맞지요? 언제 어디서나 극성맞게 존재증명을 하고 있는 그녀의 강한 성격이 이제는 부담스럽습니다. 그리고 나니 여신급 미녀 비비안 리가 분했던 스카렛 오하라보다 덕스럽게 생긴 멜라니가 훨씬 아름답게 느껴지네요.

궁금했던 것이 있었습니다. 왜 모든 남자가 빠지는 스카렛이 자기 좋다는 사람들은 거들떠보지 않고 그녀가 아니라 멜라니와 결혼을 하겠다는, 언뜻 평범해 보이는 남자, 에슐리만 좋다고 하는 걸까, 하는 것어었습니다. 누구보다도 딸을 잘 아는 아버지가 에슐리의 결혼을 방해하려는 스카렛에게, 심술부리지 말라고, 너는 그와 행복할 수 없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잘 봤습니다. 도덕과 관습의 경계를 넘어설 수 없는 모범생인 에슐리는 절대로 자기중심적인 스칼렛을 이해할 수 없을 테니까요.
그런데 왜 스카렛은 모난 곳 없는 멜라니를 선택해서 잘 살고 남부 신사 에슐리에게 그리도 집착하는 걸까요? 왜 에슐리 주변에서 얼쩡대다가 진정 사랑해야 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채 감정을 낭비하며, 삶을 낭비하며 살아가고 있는 거지요? 젊은 날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부분이었는데, 이제는 이해가 되네요.
그런 유형이 있습니다. 누구든 자기만을 좋아하고 사랑해야 한다고 믿는 나르시스트! 자기 아닌 누군가에서 눈을 주고 마음을 주는 꼴을 보지 못하는! 바로 아프로디테 원형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들입니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늘 거울을 가지고 다닙니다. 혹 벨라스케스가 그린 '거울을 보는 아프로디테'라는 그림을 아십니까? 그림 속 아프로디테는 에로스가 들고 있는 거울을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거울은 자기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보는 사람을 보고 있습니다. 원초적 욕망을 상징하는 아프로디테를 잘 표현하고 있는 그림입니다.
아프로디테의 원형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자기를 보고 감탄하고 사랑에 빠져 허우적대는 이성에 익숙하고 또 그런 상황을 즐깁니다. 그런데 이상하지요? 그런 사람일수록 쉽게 자기에게 넘어오는 이성에겐 흥미가 없으니. 그들의 흥미는 자기에게 넘어오지 않는 사람입니다. 단지 그 이유로 그 사람에게 묶여있는 그들은 그래서 진정 사랑하고 있는 것을 깨닫지 못해 생이 꼬이기 쉽습니다. 자기를 바라보고 이해하고 감싸 안으려는 버트를 사랑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과의 삶을 꾸리고 있는 에슐리에 집착하는 스카렛처럼!
멜라니가 죽자 멜라니 없이 어떻게 살지 모르겠다고 눈물 흘리는 에슐리를 보고 각성하며 스카렛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멜라니가 죽고 나서야 (에술리에게) 내가 아무 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다니, 나는 존재하지도 않은 것을 사랑했구나."
미국의 남북 전쟁이 배경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스카렛 오하라만큼이나 비중 있는 인물이 바로 그 멜라니입니다. 젊은 날 쟤는 왜 저리 착해빠졌나, 했던 멜라니가 눈이 가고 마음이 갑니다. 멜라니의 발견에 나도 놀랐습니다.
전장으로 나간 남편을 기다리는 그녀의 공간은 늘 상처 입은 자들로 가득합니다. 전장에서 다친 사람은 싸매주고, 배고픈 사람에게는 먹을 것을 주고, 길을 잃은 사람에게는 쉼터가 되어주는 그녀를 보고 스카렛이 쏘아붙입니다. 자기는 먹고살기 위해 노예처럼 일하는데, 그렇게 굶주린 허수아비들에게 동냥이나 하니 그들이 메뚜기처럼 모여 들잖냐고. 멜라니는 싫은 내색 없이 온화하게 이렇게 이야기하며 스카렛의 이해를 구합니다. 어느 북부 여인이 포로가 된 에슐리를 대접할 수 있고, 그 힘으로 그가 돌아올 수도 있는 거 아니겠냐고. 그녀의 눈에는 어쩔 수 없이 전쟁에 참여한 사람들이 모두 에슐리 보였던 거지요? 사랑은 그렇게 행위입니다.
멜라니에게는 사랑이 모든 고정관념을, 편견을 녹이고 있습니다. 에슐리가 모든 이들이 손가락질하는 유곽 여인의 도움을 받아 체포되지 않을 수 있게 되자 그녀는 진심으로 그 여인에게 감사의 표현을 합니다. 여인들의 왕따와 경계에 익숙해있는 여인이 멜라니를 위해 "길거리에서 마주쳐도 아는 척 하지 마세요, 이해할 테니."라고 말하자 멜라니는 여인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합니다. "남편을 구해준 분에게 감사의 표현도 못하나요? 당신에게 신세진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요. 또 만나요."
그녀가 있는 곳엔 늘 평화가 있습니다. 그녀가 있는 곳이 천국인 거지요? 그런데 그 천국은? 파울로 코엘료가 말했습니다. "나는 신께서는 그의 지혜로움으로 천국의 한 가운데에 지옥을 숨겨두셨음을 믿어, 우리가 언제나 깨어있도록 하기 위해서야, 우리가 자비의 기쁨 속에 사는 동안에도 혹독함을 잊지 않도록 하시려고." '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에서
남편은 전장에 나가 있고, 그녀의 곁에는 그녀를 무시하고 싫어하고 질투하면서도 그녀를 떠나지 않는 스카렛 오하라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몸이 약해 늘 아픕니다. 그녀를 보면 그녀의 천국이 그녀의 지옥에서 꽃이 피고 있음을 느낍니다. 마침내 죽어가는 그녀가 스카렛 오하라에게 했던 유언은 그녀 천국에 절정입니다. "그(에슐리)를 위해 나를 돌봐주었듯이 나를 위해 그를 돌봐줘요. 그가 눈치 채지 못하게."
그녀를 보면 '신심명'의 그 유명한 명제가 떠오릅니다. 일즉일체(一卽一切) 일체즉일(一切一卽) 단능여시(但能如是) 하려불필 (何廬不畢) 하나가 곧 전체요, 전체가 곧 하나이니 다만 이와 같다면 어찌 미치지 않을 수 있을까.
하나를 보면 전체가 보이지요? 하나 속에는 전체가 있습니다. 언제나 그녀가 사랑으로 내미는 작은 손길은 전체를 소통하는 힘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기적인 스카렛을 경계하지만 그녀가 편견을 넘어서 스카렛을 감싸는 것은 그것이야말로 큰 사랑입니다. 집착이 아닌 사랑만이, 사랑이 있는 영혼만이 편견과 질책과 판단을 넘어서 일즉일체라는 세상의 비밀에 다가서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수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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