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용어 뜻 총정리] 미스터 션샤인 등장 을사오적·정미칠적·이완용·도쿄권업박람회 조선인 전시·안창호

입력 2018-09-18 15:16:00 수정 2018-09-18 17:46:39

tvN 드라마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조우한 안창호(오른쪽, 박정민 분)와 유진 초이(이병헌 분). 두 사람은 '의병'이라는 키워드로 교감한다. TV 화면 캡처

18일 오후 3시 16분부터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21부 및 22부가 재방송되는 가운데, 역사 속 사건과 인물에 대한 네티즌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을사오적 이완용. 매일신문DB
을사오적 이완용. 매일신문DB

◆을사오적(乙巳五賊)

드라마에서는 '을사오적'이 누구인지 일일이 자막을 붙여가며 설명했다. 이완용(학부대신), 박제순(외부대신), 이지용(내부대신), 이근택(군부대신), 권중현(농상부대신) 등 조정 대신들이다.

을사오적은 조선 말기 일제의 조선 침략과정에서 일제가 1905년 을사늑약을 강제 체결할 당시, 한국측 대신들 가운데 조약에 찬성하여 서명한 5인을 가리킨다.

'을사늑약'도 함께 회자되고 있다. 이 표현이 을사조약보다 좀 더 정확한 표현이라는 주장이 제기된다.

늑약은 '억지로 맺은 조약'이라는 뜻이다. 굴레 늑(勒)을 쓴 '勒約'(늑약)이라는 한자어가 당시 현실을 보다 정확히 얘기해주고, 이는 역사를 제대로 바라보는 시점과도 연관돼 있다는 것이다.

을사조약은 당시 일본의 입장에서 조약을 정당화한 표현이라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이는 한일합방이라는 표현이 역시 일본의 시각이라며 한일병합이라는 바꿔 쓰자는 주장이 나온 것과 비슷한 맥락에 있다.

◆정미칠적(丁未七賊)

이완용(내각총리대신), 송병준(농상공부대신), 이병무(군부대신), 고영희(탁지부대신), 조중응(법부대신), 이재곤(학부대신), 임선준(내부대신) 등 조정 대신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1907년 7월 이완용과 조선통감부 통감 이토 히로부미 명의로 체결된 정미7조약 조인에 찬성했고, 당시 대한제국 황제 순종의 재가를 얻도록 협조했다.

이완용은 을사오적과 정미칠적에 함께 포함된 유일한 인물이다. 즉, 을사오적과 정미칠적에 이어 한일강제병합까지 일련의 과정에 쐐기를 하나씩 박은 매국노 중의 매국노가 바로 이완용이라고 할 수 있다.

tvN 드라마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속 이완용. tv 화면 캡처

◆이완용과 후손, 그리고 막대한 재산 행방은?

이완용의 후손에 대한 관심도 이 드라마를 보고 분노한 시청자들에 의해 분출되고 있다.

이완용 가문은 해방 후 멸문에 가까운 타격을 입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여의도의 7배에 달하는 땅 등 막대한 재산을 거의 환수당하지 않았고, 이를 현금화하는 등 빼돌렸다는 점에서 반박하는 의견도 나온다.

이완용의 손자 이병길이 주목된다. 이병길은 해방 후 정부가 친일파들을 처단하고자 시행한 반민특위에 체포됐다가, 반민특위가 힘을 잃자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이병길의 아들 이윤형, 그러니까 이완용의 증손자는 1992년 정부를 상대로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땅(당시 시가 30억원 상당)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해 승소했고, 캐나다로 이민을 떠나 2002년쯤 숨진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후손들의 이야기는 구체적으로 전해지지 않고 있다. 다만, 이완용이 남긴 막대한 재산의 일부를 여전히 대물림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는 분석이다.

◆도쿄권업박람회 조선인 전시

드라마에서는 도쿄권업박람회에 조선인들이 마치 동물원 우리 속 동물처럼 전시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실화다. 1907년 열린 도쿄권업박람회에서 조선인 남녀 2인이 조선관 옆 수정관에 전시됐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당시 남자에게는 삿갓에 광수포를 입혔고, 여자에게는 긴치마를 입혀 의자에 걸터 앉도록 했다.

당시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을 자신들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한 데 따른 전시였고, 이는 조선 침탈을 진행하고 있던 일본 사회 전반에 깔려 있었다.

안창호. 매일신문DB
안창호. 매일신문DB

◆안창호

드라마에서는 미국으로 끌려가 3년간 복역한 유진 초이(이병헌 분)가 우연히 안창호(박정민 분)와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안창호는 1878년 11월 9일 평남 강서 지역에서 태어났다. 독립협회, 신민회, 흥사단 등에서 활발하게 독립운동을 펼치다 1938년 3월 10일 사망했다.

실제 역사 속 안창호는 1902년 미국으로 갔다. 이후 1906년 조선에 잠시 귀국해 신민회 등을 조직해 활동하다가, 1911년 미국으로 망명한다.

그런데 실제 역사와 드라마가 조금 어긋난다. 드라마에서는 1907년쯤 유진 초이와 안창호가 만나는 것으로 나온다. 실제로는 안창호가 조선에 있던 시기다.

아울러 유진 초이와 안창호는 뉴욕에서 만난다. 그러나 실제 역사에서 안창호가 주로 활동한 지역은 샌프란시스코이다. 뉴욕은 미국 동부에, 샌프란시스코는 서부에 있기 때문에 지리적으로 꽤 멀어 수시로 오가기 힘들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드라마 속 설정인만큼, 안창호가 미국에서 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라는 점에서 충분히 상상해볼 수 있는 픽션이라는 분석이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