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아침에 사라진 수령 300년 노거수…소나무재선충병 감염으로 벌목

입력 2018-09-13 16:47:38

대구 달서구청, “신속하게 제거해야 전염 막아”…주민들 대체목 식재와 공원 지정 요구

11일 대구 달서구 궁산에서 수령 300년이 넘은 보호수가 벌목돼 주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성일권 기자 sungig@msnet.co.kr
11일 대구 달서구 궁산에서 수령 300년이 넘은 보호수가 벌목돼 주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성일권 기자 sungig@msnet.co.kr

대구 달서구청이 수령 300년이 넘은 노거수를 소나무재선충병 감염을 이유로 하루아침에 베어내 주민들과 마찰을 빚고 있다.

마을을 지키는 당산나무로 오랫동안 당제를 지내온 주민들은 "구청이 보호수 관리에 소홀했던데다 벌목 전에 안내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반발하고 있다.

대구 달서구 호산동 한 아파트 뒷산에는 높이 10m, 둘레 2.4m 크기의 소나무가 있었다. 이 나무는 1982년 10월 수령 300년 이상으로 확인돼 대구시와 달서구가 보호수로 지정, 관리했다. 주민들은 정월대보름이면 나무 앞에서 안녕과 행복을 기원하는 당제를 지내기도 했다.

그러나 마을을 지키던 노거수는 이제 사라지고 없다. 달서구는 소나무재선충병에 감염됐다며 지난 3일 나무를 베어낸 뒤 뿌리째 뽑아내고 방제 처리했다. 지난달 30일 보호수 지정 해제 고시를 한 지 불과 나흘만이었다. 보호수로 지정된 대구의 노거수 304그루 가운데 한 그루가 순식간에 사라진 셈이다.

주민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제대로 된 안내도 없이, 지정해제 사실을 고시하자마자 나무를 베어 없앤 것은 행정편의적인 발상이라는 것이다. 달서구가 보호수에 예방 수액을 투여하지 않는 등 관리에 소홀했다는 목소리도 높다.

김대섭 호산동발전협의회장 등 주민 14명은 최근 달서구청을 항의 방문해 당산나무 대체목 식재와 해당 부지의 공원 지정, 베어낸 나무들의 재선충병 감염 확인 등을 요구했다.

일부 주민은 누군가 노거수가 있던 사유지를 활용하고자 벌목을 유도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토지 소유주가 경작지를 확장하려고 재선충병을 핑계로 합법적인 벌목을 유도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한 주민은 "인접한 계명대 소유 부지의 소나무는 한 그루도 감염되지 않고 사유지에 있는 소나무만 감염돼 벌목됐다"고 주장했다.

달서구는 지난달 24일 솔잎이 말라죽은 게 목격돼 대구수목원에 검진을 의뢰한 결과, 소나무재선충병에 감염됐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달서구청 관계자는 "재선충 감염목은 확인 즉시 처리해야 전염을 막을 수 있어 불가피한 조치였다"며 "사유지를 공원으로 지정하려면 공원일몰제가 시작되는 2020년까지 조성을 마쳐야 하고, 대체목이 있더라도 사유지에 나무를 심을 수는 없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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