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향의 이야기와 치유의 철학]라푼젤, 엄마의 초상

입력 2018-09-10 13:56:14 수정 2018-09-12 20:21:11

수원대 교수

살생 많이 하고, 하인들 학대 많이 한 이기적인 청제부인은 여러 지옥을 거칩니다. 그것이 어찌 나쁜 일 한 자는 지옥에 간다는 윽박이겠습니까? 그보다는 자기 업을 정화하는 시간, 그 시간의 길이일 겁니다. 아비지옥을 거쳐 겨우 흑암지옥으로 올라온 그녀는 그제서야 아들 목련을 볼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로 인해 지옥구제에 나선 목련은 밥 한 끼 제대로 먹지 못하는 어머니에게 밥 한 덩이를 올립니다. 그런데 그녀는 아들 목련이 건네주는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합니다. 한 손으로 다른 이들이 먹을까 경계하면서 다른 한 손으로 밥을 받는데 그 밥도 그녀가 내뿜는 불기 때문에 바로 새까맣게 타버리니까요.

그 그림이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것이 우리 사는 모습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내 사랑이 나 뿐 아니라 다른 이에게 잘 할까, 집착하고 경계해서 그 사랑을 충분히 누리지 못했던 경험, 없으셨나요? 가족 이기주의에 갇혀 내 자식만 주겠다고 모아놨다가 자기도 쓰지 못하고 자식들 유산 싸움만 하게 만드는 그림을 주변에서 종종 보고 있지 않으신지요?

부모로 인해, 자식으로 인해 삶이 지옥이 되는 경우, 많습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기대와 애착이 미움이 되고 애증이 되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지옥을 만들고 있는 경우, 종종 있지요? 부모에 지친 자식들이 적지 않고, 자식 때문에 후드득 후드득 눈물을 흘려야 하는 부모들이 적지 않습니다. 우리가 목련존자도 아닌데 그 지옥을 어찌 건너갈까요? 너무나 넓고 깊어서 도무지 지나갈 수 없을 것 같은 지옥들을.

애니메이션 '라푼젤' 보셨습니까? 원작인 그림형제의 동화하고는 분위기도, 주제도 달라졌지만 원작만큼이나 좋은 애니메이션 '라푼젤'은 과보호시대에 딸에게 어머니가 어떤 존재인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입니다. 나는 그 유명한 이야기를 집착으로 지옥을 만드는 엄마의 초상으로 읽습니다.

극성스러운 엄마들이 있지 않나요? 세상은 위험한 곳이라며 모든 것을 다해주면서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식을 만드는 엄마들 말입니다. '라푼젤'의 고델이 그렇습니다. 그녀는 라푼젤을 문도 없고, 계단도 없는 탑에 가둬 놓고 그녀 자신은 길고도 기름진 라푼젤의 황금빛 머리카락에 의지해 바깥세상으로 나다닙니다. 아시지요? 동화에서부터 유명한 문장, "라푼젤, 라푼젤! 네 머리카락을 늘어뜨리렴!"

라푼젤의 특징은 머리카락이지요? 윤기 나고 풍성한 황금빛 긴 머리카락입니다. 그것은 빛나는 여성성의 상징이겠습니다. 화폭을 가득 채우는 황금빛의 연인이 인상적인 클림트의 '키스'를 기억해보십시오. 세상도 없고 나도 없는 경지, 전 인생을 관통하는 한순간의 황홀이 있음을 그 그림만큼 관능적으로 보여주는 그림도 드뭅니다. 거기 교감의 황홀을 표현해낸 황금빛, 그것은 바로 황금빛의 풍성한 긴 머리를 연상시키는 거지요?

라푼젤은 바로 그 황금빛 머리카락의 주인공입니다. 그 머리카락을 밧줄 삼아 탑을 오르락내리락 했던 고델은 분명히 라푼젤의 젊음을 질투하고 학대하는 엄마입니다. 그녀는 자식에 기대 세상을 살고 자식의 젊음을 착취해 세상을 누비고 다니는, 자식 없이는 빈껍데기뿐인 성숙하지 못한 엄마의 초상이겠습니다. 고델은 가짜 엄마이고 실체는 마녀가 아니냐고요? 글쎄요, 엄마의 어두운 그림자를 보여주자니 차마 '엄마'라 할 수 없어 마녀로 등장시킨 것은 아닐까요? 꿈까지 대신 꿔주며 꿈까지 통제하려 하는 엄마로 인해 버겁고 숨이 막히는 자식들이 엄마를 마녀로 인지하는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동화에서는 그 머리카락으로 인해 왕자가 탑으로 들어오지요? 감출 수 없는 그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의 폭발하는 열정을 엄마의 탑 속에 가둘 수 없는 겁니다. 왕자와의 비밀스런 사랑을 나눈 라푼젤이 엄마보다 그이가 훨씬 가볍다고 해서 마녀를 노하게 한 것으로 보아 머리카락이 감싸안고 싶었던 것은 엄마가 아니라 남자였던 거지요. 그림동화는 우리가 이해하는 동화를 넘어서 있습니다. 원래 독일에서 전래되어 내려오는 이야기를 재구성한 거라고 하지요? 그래서 그런지 원작은 동화라는 말이 무색하게 잔인하고 관능적입니다.

동화 속 마녀는 임신을 한 라푼젤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싹둑싹둑 잘라버리고 황야로 내쫓습니다. 거기서 라푼젤은 쌍둥이 남매를 낳고 외롭고 고단하게 살아갑니다. 고독한 황야는 바로 다시 태어나 고유한 길을 가야하는 존재의 탄생지입니다. 눈을 잃은 왕자를 다시 만날 때까지 라푼젤은 긴긴 광야의 시간을 버티며 견디며 성장해야 했습니다.

삽화 권수정
삽화 권수정

라푼젤은 양상추란 뜻입니다. 원래 라푼젤은 요정의 정원에서 싱싱하게 자라는 상추의 정기를 받고 태어났습니다. 아마 독일에서 상추는 거침없는 생명력의 상징이었나 봅니다. 그런 생명력의 라푼젤이니 평생 엄마의 탑 속에 갇혀 있지는 않겠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동화에서 마녀는 라푼젤을 쫓아내는 악역일 뿐 어찌 보면 라푼젤의 성장을 도와주는 엄마입니다. 외롭게 살더라도, 고단하게 살더라도 엄마를 떠나야 자기 삶을 꾸리니까요. 엄마의 사랑은 자식을 독립하게 합니다. 그러나 엄마의 집착은 독립하려는 자식을 자꾸자꾸 끌어들입니다.

애니메이션 '라푼젤'은 그엄마의 집착을 강조했습니다. 고델이 탑 밖으로 나가고 싶어하는 라푼젤을 기죽이며 반복적으로 부르는 노래가 있지요? 세상은 위험해, 순진한 너는 어림도 없어, 엄마가 널 지켜줄게, 하는 대목 말입니다.

"나를 믿어라, 아가야, 엄마는 다 알아, 네가 둥지를 떠나겠다고 하다니,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 엄마는 다 알아. 세상은 너무나 무서운 곳이야, 도둑과 강도 들짐승과 독벌레, 험상궂은 사내들까지, 엄마 곁을 떠나지 말거라, 엄마는 다 알아. 엄마 말을 들어라, 너 혼자는 어림도 없어."

초등학교 때부터 시간관리 해주고, 공부 관리해주고, 몸 관리 해주는 엄마, 그 엄마 덕택에 대학에 들어간 자식들이 많습니다. 오죽하면 엄마 실력 없으면 명문대학에 가지 못한다는 얘기를 할까요. 대학에 들어간 자식을 위해 시간표까지 짜주는 엄마도 봤습니다. 그 엄마 없이는 매사가 서툴고 두려워 매사를 엄마에 기대는 자식은 '자기'가 없습니다. 당연하지 않나요? 자기의 길을 걸어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자기가 생기겠습니까? 그저 엄마가 원하는 인간, 혹은 엄마 기대에 미치지 못해 자기 비하에 익숙한 못난 어른이 되는 거지요. 몸은 컸어도 마음속엔 내면아이가 웅크리고 앉아 엄마 없는 세상을 두려워하는 한 세상은 위험한 곳입니다.

한때는 나의 탯줄이었고 조금 더 성장해서는 나의 울타리였던 엄마, 그 엄마가 갑갑하거나 답답한 탑으로 느껴지면 이제 자기만의 집을 지을 때가 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식에 대한 걱정 때문에 잔소리하고 질책하는 엄마의 집착과 두려움에 거리를 유지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탑 속의 라푼젤입니다. 당신을 믿고, 당신 속의 열정을 믿고 탑 밖으로 나올 준비를 해야 하는! 안전 속에 안주하면 안전하지도 못합니다. 이제는 안전이 아니라 자기의 길입니다.

수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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