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충진 독도 상주기자, 다시 독도에 서다(중)독도경비대 노래 소리를 듣다

입력 2018-09-09 18:08:00 수정 2018-09-10 14:32:23

독도 한국령 암각서 앞에서 6일 기술자들이 계단 난간 공사를 하고 있다. 전충진 기자
독도 한국령 암각서 앞에서 6일 기술자들이 계단 난간 공사를 하고 있다. 전충진 기자

간밤, 바다는 밤새 와글와글 들끓었다. 워낙 물결이 소란스러워 잠에서 깼다. 독도등대 창문에 엇비껴 걸린 하현달이 맑고 고왔다. 새벽 4시 20분, 밖을 나서자 10년 전 그때나 다름없이 9월의 별빛이 후두둑 쏟아졌다.

오전 10시. 쓸 만한 그림을 찾아 카메라를 들이대보지만 도통 그림이 잡히지 않는다. 파인더 속 허무한 풍경에 셔터 누를 기분이 사라져버린다. 초목이 귀한 탓이다. 그래도 제법 계절감을 느낄 수 있는 곳은 유류탱크 뒤편. 10년 전 그곳은 나팔꽃이 흐드러지게 핀 풀밭이었다. 지금은 섬괴불나무가 얼추 아이들 팔뚝만한 굵기로 자라 명색의 숲을 이뤘다. 경상북도와 울릉군이 나무가 있는 섬을 만들기 위해 식목한 결과이다. 10년 후면 독도도 제법 나무가 무성해질 것 같다.

오후 2시. 독도 주식(?) 라면 한 그릇을 점심으로 때우고 신문사로 원고 송고를 했다. 제법 시간이 걸릴 것으로 생각하고 느긋하게 자리 잡았다. 사진 4장과 원고를 보내는데 손가락이 떨어지자마자 송고 끝이다. 10년 전 상주할 때 서도는 인터넷 사용이 늘 골치였다. 당시 서도는 축전시설이 없어 밤 동안 발전기를 돌릴 때만 인터넷이 가능했다. 인터넷 검색도 손 끝과 화면 움직임이 완전 따로 놀았다. 사진 한 장 보내는데 30분 이상 걸렸다. 눅눅한 방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밤샘하던 그 시절이 먼 옛일로 떠오른다.

오후 5시. 기술자들이 망양정에서 공사한다기에 따라나섰다가 내친 김에 접안장까지 내려갔다. 동도 몽돌해변을 어슬렁거리자니 깨진 독도어민조난위령비가 눈에 들어온다. 이 비석은 1948년 독도 미군폭격으로 억울하게 희생된 어민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1950년에 건립한 것이 유실되고, 2005년에 다시 제작했던 것인데, 올해 들어 낙석 때문에 비석 지붕 한 쪽이 깨어지고 말았다. 경북도는 보수를 위해 내년 예산을 잡아두고 있다.

오후 8시. 어디서 돼지 멱따는 소리가 들렸다. 독도에 오고부터 저녁마다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공사하는 기술자들이 기분 내는 건가 했더니 그도 아닌 듯 했다. 곡목이 멜로망스의 '선물'인데, 늙수그레한 사람들이 부를 노래는 아니다.

스피커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 나섰다. 독도경비대 체력단련장에 놓인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대원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달리 놀이시설이 없는 독도에서 대원들이 일과시간 후 즐길 수 있도록 컴퓨터 노래방 시설을 해둔 것이다. 10년 전에 비하면 독도경비대원들 생활이 휴양소 수준이라고 했더니 대원들은 휴식시간에는 휴대전화도 할 수 있다고 했다. 독도는 이렇듯 변하듯 마듯 부단히 바뀌고 있었다.

등대 계단 난간에서 건너다보는 독도 앞바다는 풍향 없는 바람만 몰아친다. 고래의 아래턱을 키우고, 청어 갈비뼈를 여물게 하는 검푸른 저 바다, 과연 어떤 음모를 도모하는지 종잡을 수가 없다.

전충진(경북도 독도홍보팀장, 전 매일신문 독도상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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