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 바다는 밤새 와글와글 들끓었다. 워낙 물결이 소란스러워 잠에서 깼다. 독도등대 창문에 엇비껴 걸린 하현달이 맑고 고왔다. 새벽 4시 20분, 밖을 나서자 10년 전 그때나 다름없이 9월의 별빛이 후두둑 쏟아졌다.
오전 10시. 쓸 만한 그림을 찾아 카메라를 들이대보지만 도통 그림이 잡히지 않는다. 파인더 속 허무한 풍경에 셔터 누를 기분이 사라져버린다. 초목이 귀한 탓이다. 그래도 제법 계절감을 느낄 수 있는 곳은 유류탱크 뒤편. 10년 전 그곳은 나팔꽃이 흐드러지게 핀 풀밭이었다. 지금은 섬괴불나무가 얼추 아이들 팔뚝만한 굵기로 자라 명색의 숲을 이뤘다. 경상북도와 울릉군이 나무가 있는 섬을 만들기 위해 식목한 결과이다. 10년 후면 독도도 제법 나무가 무성해질 것 같다.
오후 2시. 독도 주식(?) 라면 한 그릇을 점심으로 때우고 신문사로 원고 송고를 했다. 제법 시간이 걸릴 것으로 생각하고 느긋하게 자리 잡았다. 사진 4장과 원고를 보내는데 손가락이 떨어지자마자 송고 끝이다. 10년 전 상주할 때 서도는 인터넷 사용이 늘 골치였다. 당시 서도는 축전시설이 없어 밤 동안 발전기를 돌릴 때만 인터넷이 가능했다. 인터넷 검색도 손 끝과 화면 움직임이 완전 따로 놀았다. 사진 한 장 보내는데 30분 이상 걸렸다. 눅눅한 방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밤샘하던 그 시절이 먼 옛일로 떠오른다.
오후 5시. 기술자들이 망양정에서 공사한다기에 따라나섰다가 내친 김에 접안장까지 내려갔다. 동도 몽돌해변을 어슬렁거리자니 깨진 독도어민조난위령비가 눈에 들어온다. 이 비석은 1948년 독도 미군폭격으로 억울하게 희생된 어민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1950년에 건립한 것이 유실되고, 2005년에 다시 제작했던 것인데, 올해 들어 낙석 때문에 비석 지붕 한 쪽이 깨어지고 말았다. 경북도는 보수를 위해 내년 예산을 잡아두고 있다.
오후 8시. 어디서 돼지 멱따는 소리가 들렸다. 독도에 오고부터 저녁마다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공사하는 기술자들이 기분 내는 건가 했더니 그도 아닌 듯 했다. 곡목이 멜로망스의 '선물'인데, 늙수그레한 사람들이 부를 노래는 아니다.
스피커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 나섰다. 독도경비대 체력단련장에 놓인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대원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달리 놀이시설이 없는 독도에서 대원들이 일과시간 후 즐길 수 있도록 컴퓨터 노래방 시설을 해둔 것이다. 10년 전에 비하면 독도경비대원들 생활이 휴양소 수준이라고 했더니 대원들은 휴식시간에는 휴대전화도 할 수 있다고 했다. 독도는 이렇듯 변하듯 마듯 부단히 바뀌고 있었다.
등대 계단 난간에서 건너다보는 독도 앞바다는 풍향 없는 바람만 몰아친다. 고래의 아래턱을 키우고, 청어 갈비뼈를 여물게 하는 검푸른 저 바다, 과연 어떤 음모를 도모하는지 종잡을 수가 없다.
전충진(경북도 독도홍보팀장, 전 매일신문 독도상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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