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으로 나들이를 떠났다.
몇 년 전부터 아내는 영양 현지에 가서 고춧가루를 구입하였다. 식품만큼은 믿을 수 있는 것을 구하려는 아내의 고집에서 비롯되었지만 나는 시골 풍광과 공기를 마시는 즐거움에 기꺼이 따라나섰다. 그곳 산채 정식도 맛있고, 외씨버선길이라는 산책로도 잘 정비되어 있어서 아내와 느긋하게 걷는 재미도 쏠쏠했다.
아내가 굳이 먼 길, 영양으로 향하는 이유가 따로 있는 듯했다. 깨끗하고, 믿을 수 있는 현지 상품을 구하기 위한 나들이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런데 정작 고춧가루를 산 뒤에 특판장 뜰에서 쉴 때 아내는 고춧가루보다 판매원의 친절을 입에 올리곤 했다.
지금까지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말았는데 올해는 아내의 그 말과 흐뭇해하는 표정이 떠올라서 넌지시 판매원과 아내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손님이 아니라 마치 친언니를 대하듯 조곤조곤 상품을 설명하는 모습이 내가 보기에도 남 같지 않았다. 지난해보다 가격이 올랐다며 안타까워하며 설명하는 모습은 오른 가격을 잊게 했다. 아내는 고춧가루보다 친절이라는 보너스에 더 큰 매력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물론 고춧가루의 품질도 믿을 수 있지만 아내의 발걸음을 수년째 영양으로 향하게 한 것은 바로 그 친절이었다.
외씨버선길을 쉬엄쉬엄, 느릿느릿 걸어보라는 말을 미련처럼 남겨 놓고 읍내로 들어갔다.시골 식당에서 느긋하게 점심을 먹고 싶었다. 약간 짭조름하지만 맛깔스러운 묵나물 반찬을 곁들인 시골 인심을 먹고 싶었다. 차를 몰면서 아내에게 맛집 검색을 재촉했다. 군청 옆에 좋은 집이 있단다. 일단 관공서 옆이면 깨끗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참 살기 좋은 세상이다. 맛집만 알려주는 게 아니라 가는 길까지 안내를 맡아주었다.
'휴대전화 없던 시대에는 어떻게 살았을까?'라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웃었다. 그때도 사람살이는 똑같았던 것 같다. 오히려 길을 모르면 내려서 물어보고, 손가락으로 일러주고, 조금만 가면 된다고 용기를 주며 살았다. 어떻게 보면 요즘은 사람보다 기계에 의지하는 일이 많아진 것 같아 조금은 씁쓸해졌다.
그래도 시골 밥상이 주는 인심은 살아 있었다. 밥맛도 좋았다. 일을 하는 분들이 모두 이주여성이었다. 그런데도 전혀 낯설지가 않았다. 그들의 손길에도 이미 우리네 시골 맛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아내에게 물었다. '당신 친절 한 자루 사러 다닌 거 맞지?' 아내는 대답대신 알 듯 말 듯한 웃음을 보였다. 그래, 사람살이란 게 바로 이 맛이 아닐까.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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