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당연한 오늘의 재발견

입력 2018-07-31 11:45:42 수정 2018-10-16 14:01:55

김지혜 영남대 성악과 외래교수

출출한 저녁엔 치킨 한마리를 주문, 불과 30분이면 문 앞까지 배달된다. 서울-대구도 KTX로 1시간 50분이면 도착하고, 연착되는 일은 거의 없다. 컨디션이 나빠지면 가까운 병원으로 달려가 진료를 받고, 보험 혜택도 누린다. 속도가 생명인 한국에서는 당연한 일인데, 해외에선 사치에 가까운 일이 될 수 있다.

김지혜 영남대 성악과 외래교수
김지혜 영남대 성악과 외래교수

10여년 전 독일에서의 유학생활 시절을 떠올려본다. 처음 홈스테이를 했던 곳은 할머니가 혼자 사시는 집이었다. 특이하게도 이 할머니는 커다란 부엉이를 키우고 있었다. 이 부엉이는 가끔 좁은 통로를 퍼덕이며 날개짓을 하기도 했지만, 주로 할머니 어깨 위에 앉아 무서운 눈을 부릅 뜨고 나를 쳐다보며 겁주는 것을 즐겼다.

사실 부엉이의 눈도 무서웠지만, 할머니의 절약정신이 날 더 힘들게 했다. 한 여름에도 세탁기는 일주일에 한번만 허락되고, 서로 말도 잘 통하지 않는데 "Nein! Nein!"(영어로 No! No!)만 연거푸 외쳐댔다. 세탁기는 할머니 옷과도 같이 돌려지는데, 그나마 원색에 가까운 옷들은 손빨래를 해야만 했다. 이 할머니와의 인연은 행운이었는지 불행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시작됐다. 한가지 확실한 건, 불편했지만 절약에 대해 배웠다.

기독교 안식일 때문일까. 일요일이면 열려있는 마트가 없다. 깜박이라도 해서 생수가 남아있지 않다면, 가장 가까운 주유소를 찾아가야 한다. 물과 간단한 과자 정도를 구할 수 있었다. 평일도 오후 8시가 넘으면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닫는다.

아픈 날에는 서럽기까지 하다. 유학생의 보험으로는 개인병원에서 바로 진료를 봐주지 않는다. 지독한 감기에 이비인후과를 찾아갔지만, 1주일 뒤에나 진료예약이 가능하다고 했다. 당일 진료를 보려면 하염없이 기다려야만 한다. 2~3시간의 웨이팅(기다리는 것)은 기본이고, 식중독 증상으로 정말 많이 아팠던 날은 차라리 저녁까지 기다려 응급실로 가는 게 바로 입원할 수 방법이라는 것을 터득할 수 있었다.

무더웠던 그 여름 어느 날, 힘겹게 기차역에 도착했다. 조용한 플랫폼엔 답답한 연착 화면만 계속된다. 수십분이 지나서야 도착한 기차에 올랐지만 에어컨은 고장이다. 이것도 모자라 다음은 기차가 고장났다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고장난 기차 대신 임시 버스가 수송을 담당했다. 그날 어떻게 귀가했는지는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대프리카의 찌는 더위에 모든 의욕이 상실이 되는 요즘, 좌충우돌 독일 유학시절의 웃지 못할 하루를 떠올리며 생각항본다. 대한민국의 편리함이 주는 사치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를.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