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매일시니어 문학상] 수필 – 최상근 '낮달'

입력 2018-07-25 14:39:53

낮달/최상근

낮달이 떠 있다. 간밤을 온통 환하게 비추던 달이다. 무슨 미련이 남아서인지, 아직도 저리 하얗게 떠 있다. 지워지지도 않는다. 태양이 점점 달아오르며 눈치를 주어도 미적거린다. 다 큰 자식들을 언제까지 품으려 했던 내 어머니 같다.

"내사 마 자식 손톱 밑에 흙 들어가게 하지는 않을란다."

어느 날 밤, 어머니는 벽에다 대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혼자 말했다. 마치 당신 자신으로부터 다짐이라도 받아내려는 것 같았다. 그때부터 어머니는 자식들의 앞길을 눈부시게 비추는 보름달이 되었다. 포도송이처럼 올망졸망 매달린 어린 자식들은 그저 어머니의 입만 바라보았다.

새록새록 숨 쉬던 자식들이 어느덧 커서 학비를 받으러 꼬박꼬박 집에 들렀다. 어머니는 동네의 이집 저집에서 어떻게든 돈을 마련해 왔다. 어미 새가 먹이를 물어다 주는 것처럼, 자식들은 어머니가 얻어온 빚을 야무지게 받아갔다. 그러나 누구도 어머니가 얻어온 빚의 자초지종을 묻지 않았다.

해마다 가을이면 어머니는 수확한 곡식을 팔아 빌려온 동네 빚을 갚았다. 다 갚지 못해 어떤 빚은 해를 넘겨야 했다. 그 위에 새로운 빚이 늘어갔다. 다른 빚을 얻어 묵은 빚을 갚기도 했다. 어머니의 수확은 남의 빚 가리는데 다 들어가 버렸다.

굵직한 글자로 된 농협 달력이 벽에 걸려 있었다. 어머니만 알 수 있는 상형문자로 그 달력에 얻어온 빚을 표시했다. 연필로 쓰인 상형문자는 길고 짧은 막대와 그 위에 다시 사선을 긋는 형태였다. 그래도 그 회계가 한 번도 틀린 적은 없었다.

보리타작하던 날에 빚을 얻었다면, 그 날자에 막대 표시와 함깨 우스꽝스러운 도리깨 모양을 그려 넣었다. 모내기를 한 날에는 못단을, 어느 집에 잔치가 있었다면 치알을 함깨 그려 기억하기 수월하게 했다. 막대기와 그림이 어울려 마치 원시인들의 암각화를 보는 듯 했다.

해가 바뀌면 새 농협 달력에는 지난해의 빚을 갚을 날에 똑같은 암각화가 등장했다. 그러다 보니 새 달력이 연필 칠로 온통 새카맣게 되었다. 자식들은 어머니의 빚 장부가 된 새까만 달력을 보며 웃음을 참지 못했으나, 가슴은 내려앉았다. 까맣게 된 달력은 고단한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날개가 돋아난 자식들이 하나씩 사방으로 날아갔다. 돈 많이 벌어 다시 오마고 하던 뒷말을 한결같이 남겼다. 그러나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소식은 언제나 흐릿하게 들려왔다. 어머니의 마음은 간절함으로 타들어 갔지만, 가뭄의 여우비처럼 설핏 다녀가기만 하는 자식들이었다. 어머니의 강단진 구심력은 오래된 거미줄처럼 느슨해지고 말았다.

내 걱정 마라며 손사래를 치는 팔순의 어머니는 시골집을 홀로 지켰다. 평생을 풀어내어 다지고 여민 집이라 구석구석에 애환이 서렸다. 여기서 자식들을 키웠는데 다시 어디를 간단 말고. 지난 일을 돋보기 너머로 내다보면서, 어머니는 자식들의 염려에서 스스로 멀어졌다.

고향 집에 들렀다. 동네에 빚 얻으러 갈 일이 더는 없을 텐데, 댓돌 위에는 익숙한 털신이 보이지 않았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없으면 책 보따리 내던지며 찾아 나섰다. 세월이 흘러도 버릇은 남는지, 나도 몰래 사립문 밖으로 나서는 것이었다.

그날 밤이었다. 뒷간을 다녀오는데, 마당에는 달빛이 내려와 온통 떡을 치고 있었다. 그 적막의 한가운데에 백발의 어머니가 말뚝처럼 서 있었다. 그사이를 못 참고 마중 나왔다. 자식들을 언제까지 품을 작정일까. 마지막 남은 한 가닥 기력마저 자식들에게 내어주고 있었다.

어머니의 품은 낡았다. 쭈그러들지 않은 것이 없었다. 젖무덤은 수세미처럼 축 늘어져 냉기가 돌았다. 손등에는 험난했던 가족사가 하얀 금으로 새겨졌다. 등골이 빠진 어머니의 몸은 매미 허물 같았다. 버석거리는 몸이 바람처럼 일렁거렸다.

시골집에 단단하게 들어앉은 어머니는 앉아서 천 리를 내다보는지 요지부동이었다. 여전히 자식들의 앞을 비추는 보름달이 되고 싶었지만, 달도 차면 기운다. 영원한 보름달이 어디 있으랴, 그러나 무슨 달인들 어떤가. 자식들을 지켜볼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당선소감

최상근 씨
최상근 씨

기억이라는 것. 세월이 흐를수록 희미해지는 추상. 오히려 뚜렷해지면서, 나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 이미지. 수많은 찰나가 엉겨 붙어 이룩된 억겁이 비바람에 씻겨 바랜 것. 그것이 낮달이다.

낮달을 올려다보면 처연하게 살다 간 어머니의 얼굴이 보인다. 하얀 머리카락 사이로 번지는 희미한 미소. 이미지의 반은 낡고 닳았다. 그것은 내가 어머니 속을 다 태우고 남은 흔적이다.

어릴 적, 특히 어머니를 별나게 애먹인 데는 이유가 있다. 형제 중 막내로 태어난 탓이다. 다른 형제에게 무엇을 빼앗긴다는 두려움이 내 마음속에 잠복했다. 속 깊은 곳에 그런 심리적 부담감이 웅크리고 있었다. 그것을 시도 때도 없이 우는 일로 풀었다. 너무 울어서 동네 울보였던 기억이 새롭다.

그러나 이제 울지 않는다. 나를 울보라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도 없다. 그러는 사이에 그 옛날 불안감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어머니가 없어도 제법 앞가림하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왠지 서운해서 자꾸만 되돌아보는 것은 왜일까.

나는 무의식적으로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찾고 있었다. 어머니를 의식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다. '어머니'라고 불러 놓고 나서야 제대로 된 고백을 할 수 있었다. 내가 오늘 하루를 버티는 것도 다 어머니를 의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니어 세대에게 기회를 주신 매일신문사 관계자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 주저앉지 말고 끝까지 완주하라고 주신 기회라 생각됩니다. 이것이 지금의 나에게는 소중합니다. 심사해주신 위원님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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