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향의 이야기와 치유의 철학]탑돌이와 호랑이 신부

입력 2018-07-26 05:00:00

장애이자 보물인 사람이 있지요? 그를 버리고는 삶이 빛나지 않는데 그와 함께하는 삶은 또 정돈되지 않는! 그런 사람을 만날 때 당신은 어떻게 하십니까?

신라 원성왕 때 낭도 김현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신실하고 정돈된 사내였나 봅니다. 그런 그가 장애이자 보물인 한 처자를 만납니다. 그녀는 누구일까요? 그와는 도무지 격에 맞지 않는 그녀를, 그는 어떻게 만났을까요?

탑돌이에서였습니다. 그녀를 만난 곳은. 흥륜사 달밤의 탑돌이가 그들을 이어주는 매파였습니다. 신라 풍속에 해마다 2월 초여드레부터 보름까지 경주 사람들은 흥륜사 전탑(殿塔)을 돌며 복을 빌었답니다. 낭도 김현도 그 탑돌이 무리 속에 있었습니다. 삼국유사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밤이 깊을수록 사람들은 빠져나가고 마침내 김현 홀로 남아 탑을 돌았다."

삽화 권수정
삽화 권수정

그는 무엇을 위해 두 손을 모으고 탑을 돈 것이었을까요? 아마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처럼 복을 빌었겠지요. 관직에 나가게 해달라는 것일 수도 있고, 아름다운 처자와 혼인하게 해달라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십자가 아래서든, 탑을 돌면서든 간곡히, 삶에서 필요한 무엇을 구해보셨습니까? 사랑을 구하고 학교를 구하고 재물을 구하고 권력을 구하면 구한 것들이 찾아오나요? 찾아올 수도 아닐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신앙을 단순히 기복신앙으로 무시할 수는 없겠습니다. 삶이 원하는 것을 간절히 구하고 구하다보면 그것이 마음 깊은 곳으로 인도하는 징검다리가 될 수 있으니까요.

김현도 그랬겠습니다. 시간이 지나는 것도 모른 채 천천히 탑돌이를 하다가 궁극엔 기원의 내용도 잊은 채 그저 마음을 모으고 세상도 없고 '나'도 없는 경지를 체험한 것 같습니다. 나는 '그가 홀로 남아 탑을 돌았다'는 삼국유사의 표현에 자꾸 눈이 갑니다. 홀로 남아 탑을 돌았다니요? 시간도 잊고, 소원도 잊고, 말도 잊은 거지요? 삶이 소유가 아니라 경험이라면 그런 경지를 경험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복이 아닐까요?

그 때 한 처자가 눈에 들어옵니다. 염불을 하면서 그를 따라 도는 처자가. 인연일까, 악연일까 생각할 틈도 없이 서로가 서로에 빠져듭니다. 일연스님은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서로 정이 움직여 눈을 주었다고. 정이 움직이면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거지요? 탑돌이를 마치고 김현은 처녀를 후미진 곳으로 이끌고 가 관계한 후에 처녀를 따라갔다고 합니다. 사랑은 그렇게 홀연히 오나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관계가 끝난 후 처자의 태도입니다. 따라오지 말라며 그녀는 그녀를 따라오는 김현을 자꾸 밀어냅니다. 사랑에 빠진 남자가 그것이, 냄새를 맡고 기다리고 있는 호랑이 이빨로부터 남자를 구하려는 여인의 배려라는 것을 어찌 알 수 있었겠습니까. 그는 꾸역꾸역 여인을 따라갑니다.

예상하신 대로 여인은 사람 비린내를 맡으면 무조건 잡아먹으려 드는 오빠들이 셋이나 있는 호랑이였습니다. 사랑한 여인이 호랑이라니요? 말도 안 되는 옛날이야기인가요? 실제로 동물 같은 사람이 있지 않나요? 사납고 거칠고 맹목적인 동물 같은 사람들도 있고, 그런 사람들 틈에서 아우성치며 살다가 함께 거칠어졌지만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저 깊은 마음속에 자유의 씨앗이 있어 마침내 탈을 벗고 자유로워질 수 있는 존재들도 있습니다. 후자인 그녀는 오빠들이 자기 사랑까지 잡아먹을까 두려웠던 거지요.

위험한 오빠들로부터 사랑하는 이를 보호하기 위해 그녀는 남자를 구석진 곳에 숨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가 좋은 오빠들은 냄새를 맡고 이렇게 말합니다. "집안에 비린내가 나는구나. 요깃거리가 생겼으니 어찌 다행이 아닐꼬."

그럴 때가 있지 않나요? 아름답고 향기로운 내 사랑이 위험한 모습으로 올 때! 나아갈 수도 없고 물러설 수도 없고, 선택할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을 때 그 때 당신은 어떻게 하십니까? 더는 어쩔 수 없다며 사랑을 버리고 안전한 길을 선택하십니까, 아니면 사랑과 함께 위험한 길로 나아가십니까?

김현은 이미 잘 지냈으니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라며 위험을 피해가지 않은 낭도였습니다. 사랑 앞에서 당당한, 드물기도 하고 괜찮기도 한 남자입니다. 당연히 호랑이 신부가 그를 해하게 둘 리 없지요? 여인은 자기를 던져 남자를 구하기로 합니다. 그녀는 알고 있었습니다. 집을 찾아온 손님도 아무런 죄책감 없이 성큼성큼 다가와 잡아먹을 수 있는 사납고 거친 오빠들은 그녀의 수치이자 난제라는 사실을. 그 때 하늘에서 소리가 들립니다.

"너희들이 사람의 생명을 너무 많이 해쳤으니 마땅히 한 놈을 죽여 악을 징계해야겠다."

남을 공격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 자들이 자기가 공격당하는 것은 겁내듯, 아무렇지도 않게 남의 생명을 해치는 자들은 자기 생명의 위기 앞에서 벌벌 떠는 법입니다. 누가 그 위기를 피해가지 않고 극복할 수 있을까요? 그 위기에서 새롭게 태어날 수는 있을까요? 철저히 이기적이고 철저히 공격적이었던 동물적 삶을 정화할 수 있는 힘은 있기나 한 걸까요?

그녀가 자기를 던집니다. 사랑의 힘을 배운 그녀는 이제 오빠들의 죄를 정화할 수 있는 힘이 자기에게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까요. 그녀는 누군가가 죽어야 한다면 자기가 죽을 테니 오빠들은 멀리 떠나 자숙하라고 합니다. 멋지지요? 그러나 철저히 이기적이고 공격적이기만 오빠들이 어떻게 동생의 깊이를 이해할 수 있었겠습니까? 얄팍한 오빠들은 모두 기뻐하며 꼬리를 치면서 도망가 버렸답니다.

죄 없는 동생의 희생에 목숨을 건진 오빠들은 언제 알게 될까요? 소중한 목숨을 담보로 그렇게 건진 목숨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평생 모른다면 그걸 어쩌지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죄는 자기 목숨 값을 모르는 것일 텐데.

오빠들이 도망가 버린 자리에서 호랑이 신부가 신랑에게 말합니다. "처음에 저는 당신이 따라오시는 것이 부끄러워 짐짓 사양하고 거절했지만 이제는 숨김없이 사실대로 말하겠습니다." 간단한 문장이지만 대단한 문장입니다. 수치와 두려움까지 진실이 되고 고백이 되는 것이니. 일반적으로 잘 보이고 싶은 사랑 앞에서는 장식이 넘치고, 표정이 넘치고, 말이 넘칩니다. 사랑 앞에서 숨김없이 정직해지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스스로 평화를 일굴 수 있는 성숙한 사람의 표징입니다.

살아온 날들을 정직하게 고백한 후에 기꺼이 죽어 가족의 악을 감당하는 그녀, 그녀가 그녀의 마지막을 그에게 맡깁니다. 김현은 그녀를 위해 호원사라는 절을 지었답니다.

복의 근원은 무엇일까요? 복의 근원은 돈도, 명예도, 사랑도 아닌 것 같습니다. 복의 근원은 수치와 두려움까지 감당할 수 있는 진실의 힘입니다. 진실하지 않으면 돈도, 명예도, 권력도, 사랑도 허무하기만 하니까요.

수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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