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집, 수렵, (물)고기잡이는 고대 인류의 3대 식량획득 방법이었다. 인류가 진화하면서 채집은 농경으로, 수렵은 목축으로 바뀌었으나 고기잡이(fishing)는 거의 초기 방식 그대로 200만년 넘게 이어졌다.

지은이는 "어부들은 거칠고 조정하기 힘든 세계에서 삶을 꾸려가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인류를 먹여 살리는 데 크게 기여했지만 어부와 어부사회는 제대로 주목받지 못했다. 어부들은 자신들이 쌓은 견문을 가슴에만 묻어두었고, 군주와 같은 강력한 지배자를 배출한 경우가 드물었다. 그들은 무명의 존재로 조용히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나는 인류가 삶을 일으키고 이어오는 데 어부들이 얼마나 이바지했는지 보여주고 싶다"고 이 책을 쓰게 된 배경을 밝힌다.
고고학자이자 인류학자인 지은이는 전 세계의 유적을 둘러보며 바다와 고기잡이가 도시와 국가를 어떻게 발전‧변모시켰는지, 인류를 어떻게 먹여 살렸는지, 궁극적으로는 현대세계를 어떤 식으로 발전시켰는지 추적한다.
◇ 고기잡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초기방식
최초의 고기잡이는 기다리며 기회를 노리는 방식이었다. 약200만 년 전, 인류는 유심히 지켜보다가 기회가 오면 움켜쥐는 방식으로 물고기를 잡았다. 아프리카의 얕은 저수지에서 적갈색 메기를 건져 올리려면 수면에 그림자가 드리우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다가갈 줄 알아야 했고, 날렵하게 잡아챌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했다. 그것이 물고기 잡이 기술의 전부였다.
당시 물고기 잡이의 성공여부는 감을 잘 잡는데 있었다. 마치 육식동물이 먹다 남긴 사냥감을 찾아내고, 조금만 쫓아가면 곧 쓰러질 작은 영양을 감으로 찾아내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차이가 있다면 그 장소가 땅이 아니라 얕은 물이라는 점이었다. 이런 식의 물고기 사냥이 수천 년 동안 지속되었다.
이 책은 '고기잡이는 누군가가 발명한 것이 아니다. 특정 시기에 특정 장소에 가면 물고기가 있었다. 대단한 기술혁신 없이도 물고기를 잡을 수 있었고, 심지어 아주 대량으로 포획하는 경우도 흔했다.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고기잡이에 이용한 도구는 변화가 없었고(놀라울 정도로), 어부의 관찰력이 가장 중요했다'고 말한다.
◇ 어부가 없었다면 인류 문명은 어떻게 됐을까

어부와 어부가 잡은 물고기가 없었다면 인류 문명은 지금과 어떻게 다를까? 이 책은 '파라오는 기자(Giza; 이집트 수도 카이로 교외에 있는 도시로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유적으로 유명하다.)에 피라미드를 세우지 못했을 것이다. 또 캄보디아의 웅장한 앙코르와트 사원도 현재와 같은 위용을 자랑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페루 북부 연안에 있는 모체(Moche)의 왕들은 연안의 안초비잡이 어부들에게 크게 의존했는데, 만약 그 어부들이 없었다면 황금으로 뒤덮인 장엄한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고 말한다.
인류 초기의 문명들은 대부분 강어귀, 호수, 연안 아니면 대양에 접근하기 쉬운 자리에서 꽃피었다. 작은 공동체가 마을을 형성하고 나아가 도시, 국가로 성장하려면 무엇보다 사람들을 먹여 살릴 식량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강어귀나 호수에서는 손쉽게 식량을 구할 수 있었다.
◇ 고기잡이, 인류의 이동‧교역‧항해 이끌어
이 책은 취미가 아닌 생업 고기잡이는 농경에 필적할 만큼 인류 문명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지은이는 세계의 주요 유적을 답사하고, 고고학, 인류학, 역사, 해양생물학, 고기후학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고기잡이 역사와 관련 있는 자료를 수집했다.
초기 어부는 물론이고 문명이 상당히 발달한 사회에서도 어부들 대부분은 문자를 몰랐고, 따라서 자신들의 일과 삶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피싱'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지은이는 "농경과 목축이 인류의 정착 생활을 부추겼다면 고기잡이는 탐험‧교역‧항해 등 인간의 이동 생활을 자극했다. 물가 근처에 사는 사람들은 물고기나 조개 등 바다 식량원이 고갈되거나 홍수나 가뭄 등 자연재해로 식량처가 훼손되면 풍요로운 어장을 찾아 이동했다."고 말한다.
새로운 어장을 찾아 이동하기 위해, 또 고기잡이를 더 수월하게 하기 위해 어부들은 배, 그리고 항해와 관련한 기술을 발달시켰다. 이는 자연스럽게 대륙을 탐험하고, 대양을 건너 먼 지역과 무역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북돋웠다.
◇ 물고기 저장기술 발달과 소비지역 확대
이 책은 고기잡이 역사를 3부로 나누어 살펴본다. 제1부에서는 인류가 연안과 강어귀, 호수, 강 등에서 뛰어난 적응력과 기회를 노리는 고기잡이로 살아간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선사시대 어부들이 사용한 도구, 즉 그물‧창‧낚싯바늘‧낚싯줄‧덫 등이 오늘날의 고기잡이 도구와 근본적으로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제2부에서는 세계 각 대륙을 이어준 어부와 고기잡이 이야기를 다룬다. 기원전 3100년경에 지중해 동쪽(이집트)에서 세계 최초의 도시가 출현했고, 얼마 후 아시아와 아메리카 대륙에서도 도시가 발전했다.
수메르든, 이집트든, 로마든, 은나라든, 마야든 모든 도시마다 권력층은 신전이나 무덤 등 공공건물을 짓는 노역자에게 줄 양식이 필요했고, 이를 어부들이 공급하는 물고기로 충당했다.
제3부에서는 로마 제국의 붕괴라는 사회적 변화와 중세 온난기라는 환경변화 속에서 어부들이 어떻게 적응했는지 살펴본다. 또 인류가 바다를 어떤 방식으로 이용해 왔는지도 들여다본다. 10세기 무렵에는 물고기를 인근 시장에 팔았고, 300년 후에는 생선을 운반하는 짐수레 수송망이 갖춰졌는가 하면, 노르망디에서 파리까지 생선을 운반하는 역마(驛馬) 방식의 수송 체계도 생겨났다.
19세기에 들어오면서 새로운 기술 출현과 함께 고기잡이는 산업활동으로 바뀌었다. 어획량이 감소하면서 긴 낚싯줄과 더 커진 자망이 동원되었고 해저까지 싹 훑어버리는 저인망 기술이 등장했다. 이어 강력한 엔진을 갖춘 배들이 등장하면서 어업은 점점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200만년 동안 물고기를 잡는 방식에 근본적인 변화가 없었기에 인류는 물고기를 지속적으로 잡을 수 있었으나, 물고기 잡는 방식에 근본적 변화가 생기면서(과학기술이 가미되면서) 어업이 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568쪽, 1만8천원.
▷지은이 브라이언 페이건은…
영국에서 태어나 케임브리지대학에서 고고학을 전공했다.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고고학과 명예교수다. 세계적인 고고학자이자 인류학자로 손꼽히며 1979년 '캘리포니아 중남부에서의 유람 항해 가이드'를 비롯해 '기후, 문명의 지도를 바꾸다' '뜨거운 지구, 역사를 뒤 흔들다' '크로마뇽' '위대한 공존' '인류의 대항해' '바다의 습격' 등 많은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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