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비난과 비판

입력 2018-06-25 05:00:00

대구 능인고 교사

"한국 축구 자존심도 끈기도 없어, 투지마저 실종", "한국 축구 테스트만 하다 날 샌다."

위의 기사 제목은 최근의 것이 아니라 4강의 기적을 이루었던 2002년 월드컵 대표팀에 대한 2002년 초의 기사 제목들이다. 그때 당시 감독을 맡았던 거스 히딩크에 대한 기사들은 조금 더 신랄하다. 축구 전문가의 말을 인용하여 '무지에서 비롯된 테스트를 즉각 중단하라.'고 말하기도 하고, 고종수나 이동국을 안 뽑고 황선홍과 같은 퇴물이나 박지성 같은 듣도 보도 못한 선수를 뽑은 것을 가지고도 문제 삼았다. 한 신문의 기사들을 보면 이런 구절들이 있다.

"전쟁터에 나간 장수가 여자 친구를 대동해 물의를 일으키는 모습 역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히딩크 감독은 '한국형 전술'을 개발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고 있는 반면, 필립 트루시에는 독특한 일본형 수비 전술을 개발해 성적으로 연결시키고 있다.", "더욱 황당한 것은 말을 교묘하게 바꿔가며 '6월을 목표로 세운 계획에 맞춰 모든 것이 잘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하는 히딩크의 태도다. (중략) 한국 축구가 필요로 하는 사람은 '언어의 마술사'가 아니라 능력 있는 축구 지도자다."

이 기사의 내용을 보면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히딩크와는 사뭇 다르다. 히딩크가 이러한 기사들을 보고 자신의 계획을 바꿔서 4강을 간 것은 아니다. 이러한 기사가 나간 뒤에도 그는 여자 친구를 데리고 다녔고, 더 현란한 '언어의 마술사'가 되었다. 그리고 그는 자기 계획과 전술을 밀어붙여 결국 국민적인 영웅이 되었다. 히딩크가 그 기사들에 휘둘렸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러한 기사들을 보면 '비판'과 '비난'을 구분할 필요가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비판'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잘못된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비판을 하는 목적은 옳은 방향으로 가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함께 책임을 지고자 하는 의식도 반영되어 있다. 이에 비해 '비난'은 남의 잘못을 책잡아서 나쁘게 말하는 것이다. 비난을 하는 이유는 누구를 하나 희생양으로 해서 감정을 해소하는 데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냥 싫다는 감정 외에 다른 근거는 필요 없으며, 책임 같은 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망해가는 집안에서는 원래 비판보다는 비난이 많아지기 마련이다. 비난이 난무하는 곳에서는 되는 일이 하나도 없게 마련이다. 일이 되게 하려면 칭찬은 앞당기고, 비난은 뒤로 미뤄야 한다. 그리고 건전한 비판을 통해 문제점들을 고쳐 가면 좋은 날이 올 수 있다.

민송기 대구 능인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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