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광의 에세이 산책] 참 아름답다

입력 2018-05-15 00:05:00

김일광 동화작가
김일광 동화작가

지난 주말, 조선의 마지막 유의(儒醫) '석곡 이규준' 선생의 묘소를 찾아갔다. 산을 오르며 많은 생각을 하였다. 그는 유언으로 '내 삶에는 참으로 다행스러운 세 가지가 있었다. 가난하였고, 스승이 없었고, 조선 말에 태어난 것이었다'는 말을 남겼다.

그 말에는 참으로 놀라운 역설이 담겨 있다. 가난하였기에 가난한 백성들의 마음을 읽고 그들과 함께할 수 있었으며, 스승이 없었기에 학통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공자의 가르침에 다가갈 수 있었다. 조선 말에 태어났기 때문에 사문난적으로 몰렸지만 무난히 천수를 누릴 수 있었다는 뜻이었다.

석곡 선생은 역사상 가장 혼란스러웠던 한말과 일제강점기를 살았다. 당시 선비라고 하면 누구나 그러했듯이 과거를 준비하던 그는 갑오경장으로 공부하는 목표가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그런 상황을 오히려 공자의 진정한 가르침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았다. 비로소 조선 500년이 사대부들만 있고 백성이 없는 나라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석곡은 자신이 닦은 공부를 백성을 위하여 내어놓았다. 일제강점기가 되면서 백성들을 지키는 게 나라를 지키는 것임을 알고 이를 실행에 옮겼다. 백성을 깨우치고 스스로 익힌 의술로 백성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데 정성을 다하였다. 주자학이 사대부들만을 위하여 어렵고 까다롭게 변화된 것을 알고는 과감하게 수정을 하였다. 새로운 해석을 한 게 아니라 백성 중심, 공자의 가르침으로 돌아가자는 뜻이었다. 이런 그의 생각은 서구에서 중세 암흑기를 벗어나 사람 중심, 그리스, 로마로 돌아가자던 르네상스 정신과 다름 아니었다.

그러나 석곡은 스스로 한 일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았다. '자신에 관한 글을 모아두지 않고 대부분 없애버렸다'고 할 만큼 개인사에 대한 것은 모두 없앴다.

이 정신을 따라 산 제자 무위당은 평생을 스승의 '의감중마'와 '황제내경 소문대요'만을 강의하였다. 스스로는 철저히 감추었다. 무위당 역시 자신에 대한 것은 아무것도 남기지 말라고 제자들에게 당부하였다. 그가 숨을 거두자 제자들은 그의 유언대로 화장하여 스승인 석곡의 무덤 아래에 산골하였다. 그는 무덤조차 남기지 않았다.

두 사람은 무엇을 남기는 데 급급하지 않았다. 그들은 다만 가난한 백성과 함께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삶이 아름답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그들은 일갈하고 있다. 참 가치 있는 것은 담담하게 이웃들 속으로 자신을 녹여가는 것이라고.

그들은 그렇게 살다 갔다. 그래서 참 아름답다.

김일광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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