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남북 외교전

입력 2018-05-10 00:05:00 수정 2018-05-26 22:30:57

'우리 역사에서 가장 성공적인 외교 협상 사례의 주인공은?' '우리 외교를 빛낸 인물 제1호는?'

답은 개방적인 정책을 편 고려 500년 전성기를 맞을 즈음인 성종 때(993년) 북방 이민족인 거란의 80만 대군 침공을 외교 담판으로 물리치고 압록강 동쪽 우리 땅 '강동 6주'를 되찾은 서희(徐熙)이다. 앞은 학계 평가이고, 뒤는 2009년 외교통상부가 처음으로 역사 속 인물을 대상으로 뽑은 결과다. 서희 덕분에 전쟁 참화에서 벗어나고 고토(古土)까지 회복했으니 고려를 폄하했던 조선 사대부조차 그를 떠받들었다.

역대 왕조 가운데 특히 고려는 주변국과 국가 존망이 걸린 외교전을 벌였다. 500년 왕업(918~1392년) 동안 중국 한족과 숱한 북방 이민족의 강국과 겨뤄야 했던 탓이다. 먼저 907년 한족의 당(唐) 패망 및 송(宋)의 통일(960년) 때까지 이어진 혼란 속의 5대(代) 10국(國)과 외교가 그랬다. 이어 거란(916년)의 요(遼), 1125년 여진족의 금(金), 1271년 몽골족의 원(元), 1368년 한족의 명(明)에 이르기까지 무려 중국 땅 10개 왕조와 외교에 나서야 했다.

고려와 같은 국가 존립을 건 외교는 유별나다. 오늘날까지 고려의 외교 정책 연구나 평가가 계속되는 까닭이다. 고려의 외교는 국가 존립을 지상 과제로 주변 강국과 주고받기 협상의 결과로 평가된다. 외교는 일방적일 수 없는 일이다. 서희가 거란군을 물러가게 하고 강동 6주까지 되돌려받을 수 있는 외교 수완을 발휘, 결실을 거둔 데는 그에 상응한 거란과의 외교 관계 회복과 또 다른 경제적인 혜택 제공과 같은 당근책 덕분이었을 것이다.

지금 북핵과 남북 강산을 둘러싸고 미래 운명을 건 외교전이 한창이다. 일부는 어수선한 분위기를 옛 조선 말기에 빗대기도 한다. 그러나 지난달 27일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을 축으로 한 각국 정상의 외교전은 분명 이전과는 다를 것이다. 북한·중국, 한국·일본·중국, 한국·미국, 북한·미국, 한국·러시아 회담 등의 결과는 우리 운명에 영향을 줄 것이다. 남북 국가 존립을 건 외교전의 결실이 궁금하다. 고려의 빛나는 외교전 결실이 정녕 역사에만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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