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시스템 문제 VS 모럴 해저드

입력 2018-04-26 00:05:00 수정 2018-10-16 16:34:31

1995년, 230년의 전통을 지닌 금융그룹이 한 개인의 실수로 인해 파산 위기에 몰리고 단돈 1달러에 매각된다. 이완 맥그리거가 주연한 영화 '겜블'의 모티브가 된 이 사건은 회사 내에서 승승가도를 달리던 파생상품 매니저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영화의 주인공이자 실제 모델인 닉 리슨은 영국의 빈민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학력이 그리 좋지 않은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는 뛰어난 금융거래 기술을 통해 금융기관에 취업하게 됐다. 베어링은행이 파생금융상품으로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을 즈음, 그는 위험이 높은 파생상품 거래를 통해 고수익을 올리며 회사 내에서 유명인사가 된다.

파생상품 거래를 통해 큰 재미를 봤던 주인공은 1995년 일본 니케이(Nikkei) 선물에 일생일대의 도박을 걸었다. 그러나, 그해 1월 고베 지진이 발생하면서 자신이 체결한 거래에서 14억달러라는 당시로서는 천문학적인 손실을 입었다. 이 사건을 통해 베어링은행은 한순간에 파산하게 됐고, 네덜란드계 은행인 ING에 단돈 1달러에 매각되는 최후를 맞이한다. 이 사건에서 닉 리슨은 자신의 거래에서 발생한 손실을 중간에 감춤으로써 손실액을 더욱 키우게 되는데, 이것은 위험관리 시스템의 부재에서 기인한다.

얼마 전, 우리나라 굴지의 증권사인 삼성증권에서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우리사주를 보유한 직원들에게 1주당 1천원씩 지급되어야 할 배당금이 1주당 1천 주씩 지급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회사의 총발행주식은 8천930만 주지만, 배당 착오로 인해 전체 발행주식 수의 30배가 넘는 28억3천 주가 시장에 풀렸다. 그리고, 그중 501만 주의 주식을 일부 직원이 시장에 매도하면서 이 회사의 주가는 장중 12% 가까이 하락했다. 그로 인한 공매도 시스템의 문제와 소액주주들의 피해, 더 나아가 우리나라 전체 금융 시스템에 대한 문제마저 제기되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했다.

여기서 생각해 봐야 할 점은 이번 삼성증권 사태가 우리나라 금융 시스템의 문제인지 아니면 배당 착오인지 알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증권사 직원들의 모럴 해저드에 의한 문제가 아닐까 하는 점이다. 배당 지급이 완료된 후 40분이 지나서야 직원들의 주식 계좌 거래를 중지했기 때문이다. 애당초 시스템에서 거래를 막았다면, 한순간 해프닝으로 끝날 수도 있는 사고였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발생하는 많은 문제들은 인간의 탐욕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우리는 법과 제도를 통해 이러한 무질서를 바로잡아야 한다. '사후약방문'이라는 말도 있다. 세상사 모든 문제들은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 좋다.

법과 제도에 입각해 잘못을 저지른 개인들은 처벌을 받아야 하겠지만, 이번 사태로 인한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과 추후 발생할 수 있는 관련 문제들에 대한 철저한 정비를 통해 미지한 시스템을 재정비하길 바란다. 그래야 선진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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