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현의 새論새評] 개헌의 진정성

입력 2018-03-29 00:05:00 수정 2018-05-26 23:31:22

서울대 대학원 법학박사, 숭실대 법과대학 교수
서울대 대학원 법학박사, 숭실대 법과대학 교수

대통령제 폐해 권한 축소 불가피

개헌안에 담긴 내용 너무 미흡해

여야 합의안 도출 물 건너갈 수도

31년 만의 골든타임 적극 살려야

국가의 기본법이자 최고법인 대한민국 헌법은 개정의 정족수가 가중된 경성(硬性)헌법인 관계로 1987년 개정된 후 31년이 지나도록 개정되지 아니하였다. 대한민국은 새로운 시대 상황과 정신(헌법 현실)을 반영하기 위하여 헌법개정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지난 19대 대통령선거에서 모든 대통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올해 6월 13일 지방선거와 동시에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막기 위한 헌법개정안을 마련하여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는 취지의 공약을 발표했었는데 현재까지도 그 공약을 지키려고 하는 측은 대통령을 배출한 더불어민주당이다.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야당은 지방선거에서 개헌투표를 병행하면 자기들에게 불리하다고 판단하여 개헌에 관한 국민투표를 지방선거와 연계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다. 여당인 민주당은 개헌 카드가 자기들에게 불리하지 않다는 계산하에 개헌을 공약대로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셈법 아래 국회에서 1987년 개헌 이래 31년 만에 국회헌법개정·정치개혁특별위원회를 발족하여 제10차 헌법개정안을 준비하고 있으나 여야끼리, 더 나아가 야야끼리 동상이몽이므로 개헌 작업에 진척이 거의 없었다.

이러한 와중에 2018년 2월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국민헌법특별자문위원회를 구성하여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가 마련한 헌법개정안을 문재인 대통령이 26일 발의하기에 이르렀다. 문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은 그동안 지지부진하던 국회헌법개정'정치개혁특별위원회의 헌법개정 작업에 강력한 압박 수단으로 작용할 것이다.

대통령 발의 개헌안(이하 '안')은 천부인권적 성격을 가진 기본권의 주체를 '국민'에서 '사람'으로 확대하고(안 제2장), 산업혁명 4.0에 대처하기 위해 자기정보통제권을 신설하고(안 제22조 제2항) 선거권 연령을 18세로 인하하는(안 제25조) 등 기본권을 대폭적으로 신장하고, 지방분권국가 지향성을 명시하여 지방분권에 대한 의지를 천명한 것(안 제1조 제3항),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소환제(안 제45조 제2항),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제 도입(안 제71조), 감사원의 독립기관화(안 제114조) 등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런데 헌법개정의 근본적 원인인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줄이기 위하여 대통령의 권한 축소가 필수적인데 이에 대하여 감사원의 독립기관화나 대통령의 국가원수 지위라는 표현의 삭제(안 제70조 제1항) 정도로는 매우 미흡하여 대통령의 진정성을 느끼기에는 다소 부족하다. 따라서 대통령안에 대한 야당의 강력한 반대가 예견되므로 야당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고 그 결과 여야 합의의 개헌안 도출이 물 건너가게 된다.

헌법의 존재론적 분류에 의하여 이승만 대통령 당시의 헌법을 불명예스럽게 신대통령제로 분류했던 칼 뢰벤슈타인(K. Loewenstein)이 "미국 외의 국가에서 대통령제를 도입하면 '죽음의 키스'로 변한다"고 역설했듯이 대한민국에서 '죽음의 키스'를 더 이상 보지 않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축소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하겠다. 필자가 회장으로 있는 한국헌법학회 산하 헌법개정연구위원회에서 마련한 헌법개정안을 지난 22일 국회 정론관에서 발표하여 주목을 받고 있다. 위 헌법개정안에 의하면 정부 형태는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를 얻어 국무총리를 임명하되 대통령은 외교·국방·통일에 관한 권한, 국무총리는 그 밖의 국정에 관한 권한을 각각 행사하도록 하여 이른바 분권형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다.

헌법학회의 헌법개정안과 유사한 수준의 대통령 권한 축소가 있어야 대통령의 헌법개정에의 진정성이 느껴지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야당도 더 이상 각 당의 헌법개정안을 제시하지 아니한 채 개헌 반대만을 위한 반대를 외치게 되면 국민들로부터 외면을 받게 될 것이다. 만약 여야가 정부 형태와 같이 첨예한 이해관계가 대립되어 결정하기 힘든 사항에 대하여는 가칭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하여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기로 결정하는 것도 이 난국을 헤쳐나가는 하나의 지혜일 수 있다. 31년 만에 모처럼 찾아온 개헌의 골든타임을 더 이상 허비하면 역사의 죄인이 된다는 것을 명심하고 미래 세대에 부끄럽지 않은 현 세대가 되도록 더욱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서울대 대학원 법학박사, 숭실대 법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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