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해현장에는 항상 천황 모습
이재민들과 눈 맞추고 다독여
상징적 존재 국민 존경 한몸에
김수환 추기경·법정 스님 생각
성균관대와 한국안전경제교육원 주최 '안전보건경제포럼'의 강사로 초빙되었다. 뭘 보고 나한테 '안전'과 관련된 강의를 하라는 걸까. 노란불은 빨리 가라는 신호고, 운전은 흐름이 중요한 고로 안전거리 유지를 고집하는 운전자를 보면 주변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바로 나다.
이런 나를 보고 '일본에서 교육받았다는 사실이 의심된다'고 하는 친구가 있는데, 그래서 나는 지금 일본에서 살고 있지 않다. 이것도 안 된다, 저것도 안 된다. '안 된다'고만 말하는 나라 일본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안 된다'는 이유는 위험을 미리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는데, 세상에 뭐 그리 위험한 일만 있는 건 아니다. 융통성을 가지고 소통하면 좋은 일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서울대 박훈 교수는 경향신문에 '지정학적 지옥 한국, 지질학적 지옥 일본'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올렸다. 한반도는 역사상 1천 번에 가까운 외침을 받았는데 지척 거리에 있는 일본은 딱 두 번이다. 반면 일본은 대규모의 지진과 화산, 해일, 태풍, 집중호우 등 지질학적 조건으로 인한 자연재해가 끊임없이 발생하는 나라다. 그들의 속담처럼, 예로부터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지진, 번개, 불, 아버지'다. 동일본대지진으로도 알 수 있듯이 지금도 달라진 건 없다. 지진이 가장 무섭다. 여하튼 일본은 자연재해가 많은 나라다. 그러니 그들은 분노하기보다는 참고 견디면서 받아들이는 것에 익숙하다. '익숙하다?' 잘못 말했다. 이런 일에 익숙할 수는 없다. 개인보다는 전체를 우선하는 '화'(和)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라인지라 마냥 슬픔을 삼킨다고 하는 것이 옳은 말이겠다. 인재가 아닌 천재인지라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그래도 그들의 마음이 어떻게 헤아려지고 있는지, 이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싶다.
1995년 고베 지진 때,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는 발생 이틀 후 현장을 방문해서 이들을 위로했다. 이에 대해서 국민은 너무 늦게 왔다고 비난했다. 이것을 의식한 것일까. 2011년 동일본대지진 당시 간 나오토 총리는 사고 다음 날 바로 현장을 찾았다. 그러자 '총리가 재난 현장에서 할 일도 없는데 너무 빨리 와서 구조에 방해만 주었다'는 말을 했다. 2016년 구마모토 지진 때 아베 신조 총리는 9일이나 지난 후에야 현장을 방문했다. 이에 여론은 '심히 적절한 시기에 왔다'는 평가를 했다. 무슨 잣대가 이럴까. 답은 하나다. 당시 내각 지지율이 그것을 말한다. 2016년 내각 지지율이 60%에 육박한 시점이니 아베 총리가 뭘 한들 예뻐 보이기만 했다. 1995년 36%, 2011년 22%의 지지율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 말은 총리의 방문이 그들의 마음을 감싸 안는 일에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천황을 들먹이고 싶다. 재해 현장에는 항상 천황의 모습이 보인다. 잠바 차림의 천황이 피해자들 앞에 나타나서 그들과 눈을 맞추고 다독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1946년 11월 3일에 제정된 일본헌법의 제1장 제1조 천황은 일본국 및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 그 지위는 주권을 가진 일본 국민 총의에 기초한다, 제4조 천황은 국정에 관한 권능을 갖지 않는다. 이른바 천황은 국가 원수의 역할에 해당하는 국사를 담당하지만 정치적 실권이 없다. 이것이 '상징 천황제'이다. 1946년 1월 1일 천황은 '인간선언'을 하면서 더 이상 신이 아닌 인간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그래도 일본인들의 마음에는 태양신의 자손 천황에 대한 사랑과 존경심이 있다.
동일본대지진 시에도 황실은, 황실 목장에서 생산된 달걀 1천 개, 돼지고기 등의 통조림 280개, 고구마 100㎏ 등을 지원했다. 그리고 도치기(栃木)현 소재의 나스 별장(那須御用邸)의 목욕탕을 인근 피해지의 사람들에게 개방했다. 나스 별장은 황족의 요양을 위한 곳으로 통상 절대로 출입할 수 없는 곳이다. 사람들은 감동했다. 천황의 손길은 사람의 마음을 다독이는 큰 역할을 한다. 일본 사람들의 마음은 이렇게 위안을 받는다. 우리도 우리의 마음을 다독일 수 있는 나라의 큰 어른이 있다. 고 김수환 추기경, 고 법정 스님과 같은 분이 이런 역할을 담당했었다고 감히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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