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과 전망] 대구은행 사태를 둘러싼 진실

입력 2017-11-15 00:05:00

대구은행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현 행장의 비자금 조성 의혹이 불거지고, 경찰 수사로 은행 이미지가 크게 추락했다. 급기야 비자금 수사 건을 두고 행장을 조기 퇴진시키려는 세력의 '내부기획설'과 은행 수장을 외부에서 끌어들이려는 세력의 '외부개입설' 등이 등장, 은행 분위기를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 은행은 지금 행장 친위대, 부행장 옹호파 등으로 직원들이 갈렸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은행 직원들은 가는 자리마다 내부 분위기를 물어보는 통에 외부 활동하기가 겁난다고 하소연이다.

지방은행인 대구은행이 오늘날 시중은행 부럽지 않은 '전국 최고 은행'으로 자리매김한 이면에는 역대 은행장들의 '자리 내려놓기'가 있었다. 임기 3년을 채운 뒤 다시 새 임기를 시작하면 1년 또는 2년 만에 후계자에게 바통을 넘기는 것이다. 은행 구성원들이나 외부의 묵시적 평가에 의해 후계자감으로 지목된 사람이면 은행장 마음에 들든 아니든, 은행의 백년대계를 위해 그렇게 했다. 6대 홍희흠 행장부터 현 행장 전임인 10대 하춘수 행장까지 모두 이 길을 택했다. 심지어 어떤 행장은 차기가 예상되는 인물에게 자리를 주지 않으려고 했지만 결국은 그 사람을 선택했다. 개인이 아니라 조직의 미래를 염려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잡음이 생기고 외부에서 개입할 여지가 생기기 때문에 택한 행장들의 고육지책이었다. 새 임기를 온전히 채우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은행을 위해 후임자에게 물려주는 것이다. 욕심을 버리는 행장. 이게 대구은행을 강하게 만든 큰 요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 박인규 행장 역시 이 길을 걸을 것으로 예상했다. 은행을 퇴직했다가 극적으로 컴백한 박 행장은 대인배다운 기질로 은행을 이끌어왔다. '미스터 점프'를 자처하며 지역 경제계의 활력소 역할을 해왔고 분위기 메이커였다. 이런 그의 스타일상 올해 초 다시 3년 임기를 시작했을 때 관례를 깨고 임기를 다 채울 것이라고 보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게 내년이 될지, 아니면 후년이 될지의 문제였을 뿐. 이런 속에 새로운 정부가 출범했기 때문에 박 행장이 내년 주총 때 퇴임할 것이란 예측이 우세했다.

그런 와중에 행장 비자금 사건이 불거졌다. 과연 이 일이 누구에 의해 기획됐을까. 기획했다면 누구일까. 대구은행 규정엔 '임원 후보군 선정 대상'이 금융지주 및 은행의 사내이사로 한정돼 있다. 행장(금융지주 회장 겸임)을 제외한 사내이사는 금융지주 노성석 부사장, 은행의 임환오'성무용 부행장 등 3명이다. 외견상 이들은 행장 후보 1순위이다.

그런데 일부에서 내부기획설의 배후자로 이들 중 2명을 의심한다. 현 행장을 빨리 퇴진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은행을 살리기 위한 전통을 수용, 박 행장이 용퇴하면 차기에 가장 유리한 부행장이 몇 달 앞서 행장 자리를 차지하려고 뻔히 의심받을 일을 꾸밀 수 있을까.

외부개입설은 이렇다. 대구은행 사상 초유의 현직 행장에 대한 경찰 수사가 시작된 건 금융지주 회장과 대구은행장을 분리하려는 작전이란 것. 회장은 정권과 연결될 수 있는 외부 인사를 영입하고 행장은 내부 인사를 발탁한다는 전략. 이 경우 서울의 지원을 등에 업을 수 있다. 이게 가능하려면 특정 세력과 손을 잡고 가장 유리한 고지에 있는 사내이사 3명을 날려버려야 한다. 행장과 1순위 후보군을 동시에 날릴 수 있는 카드인 셈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행장 비자금 마련 행위가 관례였던 점을 감안하면 퇴직 임직원의 제보에 의해 경찰 수사가 시작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부행장을 끝으로 은행을 떠났다가 화려하게 컴백한 박 행장처럼 권토중래할 여지를 마련하는 것이다. 임원들의 권력 투쟁으로 몰아서, 내부자들로서는 안 되겠다는 여론이 형성되면 퇴직 임원의 컴백이 가능하다. 노조를 비롯한 구성원들의 저항이 약화되기 때문이다. 은행 임직원들과 독자 여러분의 판단은 어떨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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