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대통령 비서실장

입력 2017-11-13 00:05:06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일본과 친한 인물로 알려져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1973년 '김대중 납치 사건'이 발생하면서 일본과의 관계는 파탄 직전이었다. 일본 정부는 사과를 요구하며 '○일 ○○시까지 답변하라'는 최후통첩까지 보내왔다. 강퍅한 성격에 자존심 강한 박 전 대통령이 순순히 수긍할 리 없었다. 오히려 내각에 이런 지시를 내렸다. "한일 국교를 단절한다."

청와대 참모들과 외무장관은 발을 동동 굴렀다. 누가 간언하려 해도, 대통령의 강한 성격에 미뤄 얻어터지거나 쫓겨날 것이 뻔했다. 모두 비서실장 방에서 한숨 쉬며 담배만 피워댔다. 최후통첩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데, 누군가 침묵을 깼다. "내가 들어가 보지." 김정렴 비서실장이었다. 김 비서실장의 간청을 들은 박 전 대통령은 일본 측 요구를 들어주기로 마음을 바꿨다. 김정렴을 두고 '명비서실장'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박 전 대통령은 1978년 총선에서 부진하자, 분위기 쇄신 명목으로 10년 가까이 일한 김정렴 비서실장을 김계원 대만 대사로 교체했다. 국내 정세에 어두웠던 김계원은 차지철 경호실장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갈등을 제어할 능력도, 의지도 없었다. 김계원이 임명된 지 1년이 채 못 돼 박 전 대통령은 김재규에 의해 살해됐다. 비서실장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싶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박근혜 전 대통령 때의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사례도 있다. 대통령의 생각이 잘못됐으면 간언하고 말려야 할 터인데, 오히려 자신이 앞장섰다가 정권의 비극, 본인의 비극을 초래하고 말았다.

청와대 비서실장은 대통령 바로 다음의 막강한 권력자다. 대통령과 가까이 얼굴을 마주하기에 '권력은 거리에 비례한다'는 말이 가장 어울리는 자리다. 미국에서도 비서실장을 대통령에게 여론을 전달하는 마지막 통로라는 의미로 '권력의 그림자'로 부른다.

얼마 전 임종석 비서실장이 국감장에서 전희경 자유한국당 의원과 설전을 벌여 화제가 됐다. 전 의원이 '청와대는 주사파가 장악했다'고 하자, 임 실장은 "모욕적이다. (전 의원이) 5'6공 때 어떻게 사셨는지 살펴보지 않았지만…"이라고 받아쳤다. 분기탱천한 모습이었다. 전 의원의 말이 아무리 얼토당토않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흥분하는 모습은 아직도 학생운동 때의 치기를 내려놓지 못한 것인지 모른다. 시중에 '임종석이 최고 실세'라는 말이 나도는 만큼 언행을 삼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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