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철의 새論새評] 트럼프의 아시아 순방

입력 2017-11-09 00:05:00

서울대 법대, 동 대학원(헌법 전공). 영국 브리스틀대 대학원 법학과 (환경법, 독점방지법 연구). 아리랑TV미디어 상임고문. 공주대학교 미디어 영상학부 객원교수. 전 KBS 국제부장, 전 TV조선 부국장
서울대 법대, 동 대학원(헌법 전공). 영국 브리스틀대 대학원 법학과 (환경법, 독점방지법 연구). 아리랑TV미디어 상임고문. 공주대학교 미디어 영상학부 객원교수. 전 KBS 국제부장, 전 TV조선 부국장

'장사꾼' 트럼프에게 北核 단기 호재

안보 비용 명분으로 미국 무기 팔고

FTA 재협상 을러대며 이익 추구해

한미 관계 일방 희생 아닌 상생 돼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본과 한국을 거쳐 중국으로 건너갔다. 그러고는 필리핀 아세안 정상회의와 베트남 APEC 정상회의까지, 11박 12일의 숨 가쁜 일정이다. 북한 핵 문제가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상황에서, 미국 대통령이 한반도를 비롯한 인접 국가를 순방하고 정상들과 회담하는 것은 지역 안정과 세계 평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문자 그대로 미국이 세계 경찰로서 우범지대 순찰을 강화한다고 할 만하다. 여기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대목이 있다.

현재의 세계 질서는 'Pax Americana' 즉 미국에 의한 평화다. 미국은,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세계 경찰로서 비교적 유능하고 때로는 선한 경찰이다. 트럼프는 아니다. 강력범에 약하고 선량한 시민에게는 뻣뻣한 나쁜 경찰이다. 언제 뇌물 받고 범죄를 눈감아 줄지, 심지어 범죄자 편에 설지 알 수 없는 부패한 경찰이다.

정치인은 이익을 따지지만 명분이 우선이다. 기업인은 이익을 먼저 생각하되 명분을 완전히 외면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장사꾼은 명분은 간데없고, 이익 그것도 눈앞의 이익만 따진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영락없는 장사꾼이다. 여전히 뼛속 깊숙이 장사꾼이다. 취임 이후 기업인이라고 부르기도 아까운 처신을 보여 왔다.

장사꾼 트럼프와의 협상에는 힘이 뒷받침돼야 한다. 장사꾼 트럼프에게 약자에 대한 배려가 있을 리 없다. 아니면 눈앞의 큰 이익을 안겨줘야 한다. 북한의 김정은은 힘을 내세웠고, 일본은 이익을 내세웠다. 한국은 뭐를 내세울 것인가?(도전할 만한 힘이 있음에도 조심하고 또 조심하는 중국은 논외로 하자)

장사꾼 트럼프는 한국과의 협상에서 이익을 챙겼다. FTA 재협상을 을러대며 한국 정부로부터 큼지막한 경제적 양보를 받아냈다. 북한 핵조차 트럼프는 협상 무기로 활용했다. 북한 핵을 방어할 수 있는 방어망을 구축해줄 테니 비용을 대라는 식으로 미국 무기를 팔아먹었다. 그러나 첨단 무기, 첨단 기술은 팔 수 없다. 세 가지 모두 자신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한 트럼프의 마지막 카드는 충분히 짐작된다. 북한 핵시설을 폭격하겠다!

폭격으로는, 예방적 타격으로는 북한 핵시설을 완전히 제거할 수도 없고 휴전선에 배치된 북한 장사정포를 깨끗이 청소할 수도 없다. 결국 잘돼야 한반도에는 재래식 전면전이요, 최악의 경우 북한 핵이 서울 도심에서 터지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한국 정부로서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옵션이다. 이런 옵션을 들이대고 트럼프는 한국 정부의 일방적 굴복을 받아냈을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북한에 대한 이른바 세컨더리 보이콧이다. 미국은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 방안으로 세컨더리 보이콧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한다. 북한 경제를 봉쇄하면서 북한과 거래하는 국가까지 제재를 받게 된다. 그런데 북한의 최대 교역국은 어디인가? 중국이다. 결국 세컨더리 보이콧의 최대 피해자는 중국이다.

명목상 북한을 제재하지만 실제로는 중국을 견제한다. 미국으로서는 최선의 시나리오다. 북한 핵을 빌미로 일본과 한국에는 미국 무기를 팔고, 교역 조건에서 양보를 받아낸다. 그리고 북한을 제재한다는 핑계로 가장 미국이 견제하고 싶은 중국을 견제한다. 중국 기업을 견제하고 중국 금융을 묶고, 중국 자산을 동결한다. 불량 경찰 트럼프로서는 이상적인 시나리오다. 비록 본인이 기획하지도 원하지도 않았지만, 북한 핵은 장사꾼 트럼프에게는 더없는 단기 호재다.

지난 6일부터 미국의 서머타임이 끝나 한국과 시차가 한 시간 더 늘어났다고 한다. 트럼프 방한이 시각차를 줄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우리는 기대해 왔다. 그러나 트럼프의 일련의 언행을 보면 시각차는 시차가 늘어난 이상으로 벌어진 것은 아닌가 걱정스럽다.

한미는 지구 반대편에 있다. 우리는 미국과 인도가 지구 반대편에 있다는 사실이 IT 산업, 특히 소프트웨어 산업에서 상호 보완적으로 작용한 사례를 잘 알고 있다. 과거와 같이 고상한 명분으로 미국 정부를 설득할 수 없게 됐다. 트럼프는 노골적인 이익으로, 그것도 쉬운 말로 설득해야 한다. 트럼프 시대의 한미 관계가 일방적인 희생이나 이익 없는 윈-윈 관계로 나아가기를 기대한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