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부러우면 지는 거다. 시즌 2

입력 2017-10-28 00:05:01

전 MBN 앵커
전 MBN 앵커

지난해 8월 필자는 '부러우면 지는 거다'라는 제목의 칼럼을 본지에 기고했다. 소통을 중시하고 친근한 스킨십을 즐기는 당시 오바마 대통령을 가진 미국에 샘이 나서, '사법제도 신뢰도' 조사에서 뭐든 지기 싫어하는 나라인 일본에 큰 차이로 패배한 것이 분해서, '언론자유지수' 조사에서 역대 최악의 기록을 남긴 한국이 부끄러워서, 좋은 평가를 받은 국가들이 부럽다는 내용의 시샘 가득한 글을 실었다. 근데 부러운 것이 또 생겼다. 알면 알수록 탐나서 배가 아플 지경이다. 급성 복통 증상마저 보인다. 그래서 1편보다 강렬한 시즌 2다! UN 세계행복보고서 1위, 국가청렴도 1위를 차지한 국가, 이번 시기의 대상은 덴마크다.

필자를 '덴마크앓이'하게 만든 장본은 '행복난민'이라는 다큐멘터리다. '행복난민'은 정치인과 전직 신문기자, 공공정책 전공자가 직접 덴마크를 방문해 복지정책, 정부 운영 시스템, 기업문화, 육아, 노동문제까지 낱낱이 파헤친다. 제작 프로그램의 특성상 기획된 부분, 가공된 부분이 있지 않을까 날카로운 시선으로 경계하며 지켜봤지만, 조사 결과로도 증명됐듯이 덴마크는 인정할 수밖에 없는 나라였다. 국민이 행복하다고 답할 수 있는 근거가 곳곳에서 분명했다.

강변에서 노닐고 있는 한 가족에게 "행복하세요?"라고 출연자가 질문한다. 아이의 아빠는 "어떻게 좋지 않을 수 있겠어요, 아이들과 함께하는 지금이 가장 귀중한 시간입니다"라고 답한다. 직장인 평균 퇴근시간 오후 4시, 법정 근로시간 37시간 보장. 실직자까지도 월급의 80%를 최장 2년간 지원해주는 나라. 덴마크에서는 이 장면이 드라마가 아닌 현실로 구현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요즘 말로 "이게 실화냐"가 입에서 연발 튀어나온다. "아빠는 주말에 오는 거지?"라고 물었던 아들의 얼굴이 겹쳐진다. 주말마저도 독박육아를 하게 된 엄마들이 모여 키즈 카페를 전전하는 내 모습이 떠오른다. '헬조선'의 실화에 살고 있는 내가 처량하다.

"세금이 많지만 기꺼이 낸다. 남는 돈은 온전한 내 돈이다. 미래를 걱정하며 돈을 모으지 않는다." 여기에 "저축은 여행을 위해서만 한다"고 덧붙인다. 덴마크에서 만난 제시 가족은 '고부담 고복지' 정책을 지지한다. 1902년부터 복지의 개념을 만들어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사회적 합의를 통해 다듬었다는 덴마크식 사회안전망 정책들. "개인이 어려움에 처하면 국가가 도와준다"고 당당히 말하는 국민. '저부담 저복지' 시대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고 있지 못한 대한민국과 괴리가 너무 크다. "노후대책을 위해 돈을 모으는 우리와 많이 다르다. 믿을 건 나밖에 없다"는 한국 출연진의 한마디가 씁쓸하다.

한 국가의 정당 대표라는 국회의원이 자전거를 타고 출근한다. 초라해 보이는 의원의 조그만 사무실에는 두 명의 보좌관이 전부다. 정부의 지원을 받아 다녀온 출장에서는 2천원까지도 영수증을 남겨둔다. 덴마크는 월급쟁이들만 유리지갑이 아니라 정부도 예산을 유리알같이 관리한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쓸 수 있다는 '특수활동비'가 이 나라에도 존재하느냐는 질문에 덴마크 의원은 "NO"라고 단호하게 답한다. "그런 돈이 있다면 자기가 알리겠다"고 한술 더 떠 말한다. 대한민국에는 국회에서만 1년에 90억원 가까이 된다는 눈먼 돈, '특수활동비'가 있다는 사실에 내 얼굴이 다 화끈거린다. 그들의 눈에 비친 우리 국민은 난민(難民)이었을까.

'왜 우리는 행복하지 않은가? 그들은 왜, 국민의 80%가 행복하다고 느끼는가?'라는 물음에서 시작된 덴마크 표류기의 답은 명확했다. 정직과 신뢰를 바탕으로 쌓은 투명함. 덴마크에도 명과 암이 존재했고 지상낙원은 아니라는 반대 의견도 방송에 포함됐지만 까면 깔수록 욕심이 났다. 다음 편은 '교육 천국 덴마크'라는데, '부러우면 지는 거다. 시즌 3'를 끄적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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