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야 중심으로 가야 역학관계 풀어내…『가야사 새로 읽기』

입력 2017-09-23 00:05:00

지난 7월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에 '가야문화권 조사'연구 및 정비사업'이 포함되면서 학계, 문화계의 관심을 모았다. 고령을 주요 기반으로 했던 대가야는 신라와는 적대관계, 백제와는 우호관계를 유지해왔다. 이런 외교 관계를 기반으로 대가야는 백제 영역인 섬진강, 하동, 남원까지 진출했고 이를 기반으로 중국에까지 교류를 확장할 수 있었다.

5, 6세기 '대가야(영남)와 백제의 역사적 밀월'은 새 정권이 출범하면서 영호남의 화합을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등장했다.

가야문화권 조사사업이 국가과제로까지 대두되면서 각 자치단체나 연구단체의 행보도 바빠졌다. 우선 지자체 간 역사'문화교류가 활성화되었고 연구기관들은 가야문화권 문화재 발굴조사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렇게 가야사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주보돈 경북대 사학과 교수가 펴낸 '가야사 새로 읽기'가 주목을 끌고 있다. 주 교수는 한반도 남부의 주요 정치세력으로 가야를 주목하고 가야사를 역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 책은 가야 연맹체 중 특히 대가야를 주목하고 있다. 광개토왕비, 송서(宋書), 일본서기 등 문헌과 사료가 대부분 대가야에 집중돼 있고 고고학적 사료들로 고령가야의 국력이 가장 컸던 정치세력으로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료를 근거로 저자는 '전기 가야는 금관가야 중심, 후기는 대가야 중심'이라는 통설을 부정하고 대가야를 중심으로 가야사의 역학관계를 이해하는 학설을 펼치고 있다.

주 교수는 가야사를 새로 정리하면서 새로 기본 방향을 설정했다. 첫째 금관국을 중심으로 한 전기 가야는 가야의 모태이기는 하지만 실상은 가야사라기보다는 직전 단계인 변한사(弁韓史)로 다루는 것이 적절하고, 둘째 낙랑군과 대방군이 망하고 그 유민들이 한반도 남부로 남하하면서 가야사회가 큰 변동을 겪었고 이런 혼란이 가야 사회 성립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으며, 셋째 5세기 광개토왕 병력의 낙동강 진출에 대한 새로운 이해 즉, 이 사건이 낙동강 유역권에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하지만 가야사를 전후기로 나눌 만큼 큰 비중은 아니라는 점, 넷째 가야는 외교에 있어 대부분 기간을 백제와는 우호적 관계로 신라와는 치열한 경쟁관계로 일관했다는 점, 다섯째 가야권의 영토, 공간적 영역이 고정적이지 않았으며 가야가 존속한 기간 내에 구성 세력 간에는 상당한 이합집산이 진행되었다는 점을 연구의 틀로 제시하고 있다.

이런 시각을 기본으로 저자는 한반도 남부에서 소국(小國)을 넘어 고대국가 수준으로 발전한 대가야 역사를 역동적으로 그리고 있다. 또 대가야가 가야연맹의 맹주로 부상하던 시기를 기존 '5세기 설'에서 1세기 이상 끌어올렸다. 즉 4세기 전반 이미 대가야를 중심으로 가야 연맹이 만들어졌다는 것.

새 정부에서 가야사가 국민통합의 화두로 떠오르며 복원 방향을 놓고 학계에 의견이 갈리고 영호남 관련 시군들도 협력과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주 교수의 이런 주장은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특히 금관가야를 중심으로 복원사업을 주도해온 김해시와 미묘한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다.

주 교수는 "문헌과 고고자료를 종합적으로 점검하며 가야사의 흐름을 추적했지만 대가야를 중심에 둔 서술이 불가피했다"며 "그 이유는 사료, 고고학적 발굴 성과가 모두 그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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