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로·인공 구조물에 신음하는 앞산

입력 2017-09-20 00:05:01

샛길 오고간 등산객 발길, 나무 뿌리 하얗게 드러내

19일 대구 앞산의 폐쇄된 마천각휴게소 매점 창고가 훼손된 채 흉물로 방치돼 등산객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성일권 기자 sungig@msnet.co.kr
19일 대구 앞산의 폐쇄된 마천각휴게소 매점 창고가 훼손된 채 흉물로 방치돼 등산객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성일권 기자 sungig@msnet.co.kr
앞산 샛길 등산로에 있는 나무가 사람의 발길 탓에 뿌리가 노출돼 있다.
앞산 샛길 등산로에 있는 나무가 사람의 발길 탓에 뿌리가 노출돼 있다.

앞산은 대구 도심에서 불과 5㎞ 거리에 있다. 뛰어난 접근성 덕분에 대구 시민들이 누구나 즐겨 찾는다. 하지만 앞산의 신음에 귀 기울이는 이는 많지 않다. 파악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등산로와 각종 인공시설물로 앞산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

◆무분별하게 만들어진 등산로

19일 앞산공원관리사무소에서 정상을 향해 올라가자 곳곳에 크고 작은 등산로가 나타났다. 관리사무소가 있는 큰골의 공식 등산로는 세 갈래이다. 하지만 1.5㎞ 지점인 만수정부터 '샛길 등산로'가 즐비했다. 정상에 오르자 나무계단'난간이 설치된 주 등산로 옆으로 오솔길이 수백m 이어지다 헬기장을 앞두고 다시 합류하는 등 도처에서 샛길 등산로를 만날 수 있었다. 이들 등산로 옆의 나무들은 사람의 발길 탓인지 한결같이 뿌리가 노출돼 있었다.

앞산 등산로 난개발은 10여 년 전부터 지적돼 왔다. 개선을 위한 움직임도 있었다. 대구시와 시민단체들은 '샛길 이용 안하기' 캠페인을 벌였고, 현수막을 거는 등 입산통제 표시를 해놨지만 여전히 발길이 끊기지 않고 있다.

샛길 등산로를 이용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앞산에 20년째 오르고 있다는 구모(62'대구 남구 대명동) 씨는 "늘 다니던 길로만 다니면 지루하기도 하고 어느 길이건 정상부로 이어져 있어 가끔 샛길을 이용한다"며 "샛길에서 산나물이나 도토리 같은 임산물을 채취하려는 사람들도 있다"고 전했다.

대구시는 앞산 등산로 보존 및 정비에 매년 2억원 안팎의 예산을 쓰고 있으나 근본적인 해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시 관계자는 "등산로별로 휴식년을 도입하자는 의견도 있지만 주거지 가까이 있는 지리적 특성상 효과가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정상부 곳곳에 설치된 인공구조물

앞산 곳곳에 자리 잡은 인공구조물들도 문제로 꼽힌다. 산성산(654m) 정상과 앞산(658m) 정상을 잇는 약 1㎞ 구간에는 헬기장만 두 곳이다. 산성산 정상에는 항공기들에 등대 역할을 하는 항공무선표지소가 있다. 앞산순환도로에서 산성산 정상까지는 약 3m 폭의 콘크리트 포장도로와 전봇대가 이어져 있다.

대부분의 인공구조물은 큰골 방향 정상부에서 앞산전망대까지 1.8㎞ 구간에 몰려 있다. 방송송신탑, 산림보호용 무선 중계기, 경찰통신대 등 방송통신시설이 들어섰다. 휴게소 및 대피소 건물 3개 동도 이 구간에 자리 잡았다. 케이블카 도착 지점에는 음료'음식을 판매하는 휴게소가 있다. 지척에는 간이휴게소 및 대피소로 쓰이는 능운정 쉼터가 있다. 200㎡ 남짓한 능운정은 원형 테이블 두 개와 벤치 예닐곱 개가 놓여 있지만 주말에도 이용객이 많지 않다. 5분 거리에 있는 마천각휴게소의 경우 잠긴 출입문 앞에 잡초가 무성하고 훼손된 타일 바닥에는 낙엽이 쌓여 있었다.

◆자락길 이용이 생태 보존에 도움

앞산 애호가들은 "인공구조물들이 동'식물의 서식환경을 파괴하고 이동 통로를 차단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휴게소나 음식점이 정상부에 너무 많다는 것이다. 김택수(55'대구 달서구 두류동) 씨는 "앞산이 갖가지 시설물로 자연 본연의 모습을 잃어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산을 찾는 사람들이라면 자연 속에 잠시 머물다 간다는 겸손함과 자연에 대한 두려움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수근 대구환경운동연합 생태보존국장은 "각종 인공구조물을 걷어내면 앞산의 자연성이 더욱 살아나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등산로와 시설물이 집중된 정상부 등산코스 대신 자락길 이용을 권했다. 자락길은 앞산에서 경사도가 낮은 지점을 이어 조성한 길로 고산골 입구에서 달서구 청소년수련관까지 15㎞가량 이어진다. 정상부로 가파르게 향하는 등산로와 달리 접근이 쉽고 대부분 흙길로 연결돼 있다.

등산객 김봉열(62'대구 남구 대명동) 씨는 "자락길이 기존 등산로보다 관리 상태도 좋고 쓰레기도 없어 깨끗하다. 경사가 완만해 관절에 부담도 덜하고 몸이 힘들면 언제든 내려갈 수 있어 좋다"고 했다. 전영권 대구가톨릭대 교수(지리교육학과)는 "자락길은 정상부 등산코스에 등산객이 집중되는 현상을 완화해 줄 수 있어 생태 보존 측면에서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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