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칼럼] 역사 논쟁할 때가 아니다

입력 2017-09-04 00:05:00

2017년은 국조 단군이 왕검성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연 지 4천349주년, 일제의 국권 침탈에 맞서 독립투쟁을 이끌어 나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98주년, 나라를 되찾은 광복 72주년, 그리고 세계 최빈국에서 10대 무역강국으로 발돋움한 대한민국 정부가 출범(수립)한 지 69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건국일에 대해서는 1919년과 1948년으로 갈려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설과 대한민국 정부설 두 가지다.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광복절 기념사에서 2019년이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해라고 했다. 그리고 2018년 광복절은 정부 수립 70주년이라고 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는 우리 헌법 전문의 정신에 입각한 해석이다. 현대사 해석에 있어서 '문재인 버전'으로 금을 확실하게 그은 것이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 동안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일이라고 주장해왔던 보수진영에서는 당연히 반발했다. 1919년은 임시정부가 수립된 해로 대한민국의 건국이 '시작'된 것으로 봐야 하며 1948년이 되어서야 영토와 주권과 국민이라는 국가의 구성요건을 모두 갖춘 건국이 '완성'된 것이라고 했다. 건국일은 1948년 8월 15일이 돼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건국절 논란의 종식을 내세웠으나 결과적으로 논란만 키웠다. 역사 해석에 전 정부처럼 대통령이 나섰다는 부담만 안게 됐다.

이 논란은 겉으로는 대한민국 건국 시점을 언제로 할 것이냐는 것이지만 그 배경에는 대한민국 건국의 주체에 대한 현격한 해석 차이가 존재한다. 인물에 대한 평가도 달라지고 역사 동력에 대한 해석도 달라진다. 독립운동과 친일문제 등에 대한 평가에까지도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논란이 없을 수 없다. 학술 논쟁을 넘어 피 터지는 노선 싸움, 패거리 진영 싸움마저 우려된다.

논란이 바람직한 측면도 있다. 다양한 연구와 해석의 결과물이라면 절대 나쁜 일이 아니다. 역사 해석의 문제는 주요한 학술 논쟁거리였고 학자들의 연구과제였다. 그 결과 역사연구가 몇 단계 업그레이드 됐고 역사 해석도 풍성해졌다.

단, 정치권의 입김이 역사 연구에 곧바로 영향을 미치는 것은 금물이다.

꼭 두 해 전이다. 박근혜 정부의 역사교과서 파동이 있었다. 우격다짐으로 시한을 정해놓고 역사교과서를 만들겠다고 했다. 결과는 정권교체 후 폐기였다. 그때 필자는 '역사교과서가 선거 승리 진영의 전리품이 될까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5년마다 대통령 이름을 달고 역사교과서의 판본이 달라질 수 있다고 걱정했다.

정말 그런 일이 벌어지려는 걸까. 집권 여당 대표가 대통령의 광복절 기념사를 두고 '우리 현대사를 명쾌하게 정리하는 역사적 정의(Historical Definition)'라고 했다. 우려가 현실이 될 수도 있겠구나 걱정이 앞섰다.

정치권력이 역사를 놓고 이리저리 금을 긋는 건 금물이다. 대통령 이름을 딴 'OOO판 역사교과서'가 나와서 안 되는 것처럼 '△△△ 버전' 역사 해석도 안 된다. 앞으로도 대통령과 집권 세력 앞에 역사를 주무르고 싶은 유혹의 순간이 많이 도사리고 있을 거다. 그래도 안 된다. 눈길도 주지 말아야 한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고 전철을 밟지 않으려 노력하는 건 정치인의 몫이다. 하지만, 역사 해석에까지 정치인이 개입하려 드는 건 '오버'다.

대신 학계가 나서라. 정치권 눈치 보지 말고 연구하고 논쟁을 벌여라. 과거 정치권력 입맛에 맞춘 역사 연구는 어용이라고 불렀다는 점을 명심하라.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사실도 함께.

그리고 무엇보다 불과 몇 백㎞ 밖에서 수소폭탄 실험이 이뤄지고 탄도미사일이 붕붕 날아다니고 전쟁 위험이 최고조라는데 한가하게 역사 논쟁이나 하고 있을 여유가 어디 있나. 한눈팔 때가 아니다.

역사 해석은 학자들에게 맡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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