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한류 유감

입력 2017-07-28 00:05:03

벌써 10년이 지난 일이다. 음악이 울리면 사람들이 양손으로 뒷짐을 졌다. 그리고 '텔미'를 췄다. 당시 원더걸스는 걸그룹 최초로 세대를 넘어 그들의 춤과 노래를 알렸다. 그리고 이듬해엔 노바디 열풍을 불러일으키며 팬층을 30'40대까지 확장시켰다. 2009년 1월엔 소녀시대가 'Gee'를 발표했다. 한마디로 초대박을 터뜨렸다. 걸그룹의 음악은 더는 특정 연령대나 마니아층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소녀시대에 이어 2NE1, 포미닛, 티아라 등, 바야흐로 대한민국엔 걸그룹 전성시대가 열렸고 이들은 우리 대중문화의 새로운 축으로 떠올랐다. 중국으로, 일본으로 자신들의 활동 무대를 넓혔고 가는 족족 성공을 거두었다. 타고난 재능과 엄청난 연습, 거기에 치열함까지 더한 이들은 실로 프로 중의 프로였고 이들에 비하면 일본의 아이돌은 유치해 보이고 미국의 뮤직비디오가 촌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뿐만 아니었다. 이들의 인기와 더불어 휴대폰, 화장품 등 한국 제품의 인기도 덩달아 급상승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한국 드라마가 중국 시장에서 인기를 끌자 중국의 언론이 그걸 '한류'(韓流)라 일컬었다. 얼핏 보면 '멋진 스타일 중 하나' 같지만 '류'(流)에서 보듯 일시적 흐름 또는 현상이라는 뜻과 '한'(韓)에서 보듯 드라마의 국적을 분명히 함으로써 자국 드라마 보호를 위해 문화적 할인율(Cultural discount rate)을 높이는 하나의 장치로 사용코자 하는 의도도 분명 엿보이는 말이었다.

2010년 1월 13일, 정부가 소녀시대에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표창을 수여했다. 그런데 그 이유가 가관이었다. 한류 확산의 공로를 인정했기 때문이란다. 짐짓 모른 체하고 넘어가도 시원찮을 판인데 정부가 앞장서서 한류, 한류 노래를 부르더니 급기야 멀쩡하게 활동 잘하는 소녀시대를 불러 그들의 음악에 커다랗게 국적 표시를 달아 준 것이다. 영국 정부가 에이미 와인하우스를 '영류'라는 이름의 유니언잭 풀 패키지에 넣어 판다면 팬들의 기분이 어떨까? 사드 문제가 불거지자 그게 드라마든 노래든 한국의 대중문화 콘텐츠는 한류라는 이름에 묶여 통으로 제재를 당했다.

새 정부가 한류 확산을 예순아홉 번째 국정과제로 두고 한류 팬을 1억 명까지 늘리겠다고 한다. 그건 트와이스, 레드벨벳, 블랙핑크가 알아서 할 일이다. 음악을 잘하면 음악으로 상을 주어야 한다. 그걸 국가 브랜드 전개 활동으로 포장하고 한류가 대륙을 정복했다거나 열도를 강타했다는 식으로 말하면 안 된다. 음악이 좋아 그 나라에 관심을 두게 되는 건 어디까지나 소비자의 몫이다. 국가가 앞에 서면 팬들은 어색하고 가수는 난처할 뿐이다. 우리 대중문화가 더 크게 더 멀리 가길 원한다면 '한류'라는 애국의 깃발은 이제 그만 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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