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칼럼] 지방분권개헌과 국회의원

입력 2017-06-12 00:05:01

"연방제에 버금가는 지방분권형 국가를 만들겠다"는 건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기간 중에 했던 약속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 10일 차인 지난달 19일 여야 대표들과 만나 개헌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저는 제 말에 대해 지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는 사람"이라면서 "국민에 대한 개헌 약속을 지키겠다"고 했다. 시한은 내년 6월 지방선거.

우리나라 헌법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만이 고칠 수 있다. 특히 대통령이 의지가 없으면 개헌은 사실상 어렵다. '개헌은 블랙홀'이라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한마디로 개헌 논의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음을 기억한다. 이번엔 다르다. 확고한 문 대통령의 의지가 담보된 만큼 뭔가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팍팍 온다.

지방자치를 시작한 지 26년, 지방분권을 외친 지 15년이다. 지방분권개헌을 위해서는 다시 올 수 없는 기회다. 이번 기회를 놓친다면 기약도 없다. 보수와 진보를 나눌 것도 없다. 지방분권 하는데 보수 진보 나눌 이유도 없다. 굳이 나눈다면 지방분권에 찬성하느냐 아니냐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 국회의원이 제일 문제다. 지난주 대구시청에서 열린 국회개헌특위 지방분권개헌안에 대한 공청회에서도 그런 걱정들이 쏟아졌다. 이구동성이었다. 물론 국회의원들도 개헌을 이야기한다. 300명 중 200명 이상이 개헌에 동조한다. 하지만 분권형 개헌이다. '지방'이라는 두 글자가 없는 분권 개헌이다. 지방분권개헌이 아니라는 말이다. 서울에 몰린 돈과 권력을 지방이 나눠 대한민국 성장의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지방분권개헌이 아니라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을 국회와 나누자는 분권만 이야기한다. 국회의원이 어떤 사람들인가. 대부분 국회에 들어가기 전 서울서 살다가 중앙집권주의에 잘 적응된 사람들이다. 국회의원을 마치고도 서울서 살며 중앙집권주의 속에 묻혀 살 사람들이다. 그들의 생각은 뻔하다.

지방분권개헌국민회의 등이 마련한 개헌안에 대한 국회개헌특위의 반응도 예상대로다. 특위는 '지방자치의 경험이 부족하여 지방분권은 시기상조'라고 한다. 중앙집권의 역사, 지리적 협소함, 문화적 동질성에 비추어 지방분권의 필요성이 크지 않고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지금처럼 서울의 식민지로 지방을 계속 홀대하자는 이야기에 다름 아니다. 특위는 그것도 모자라 '지방분권은 큰 나라의 정치제도'라는 황당무계한 이야기도 하고 있다. 지방분권 시스템을 적용해서도 잘 나가는 강소국들이 지구상에 얼마나 많은데 이런 무식한 이야기를 하는지 기가 막힌다. 특위는 또 '부익부 빈익빈을 초래하고 국가 균형 발전을 저해한다'는 주장도 한다. 이런 건 지방분권의 폐해가 아니다. 중앙집권, 서울 독점 체제의 폐해이지 않은가. 적반하장이다.

지방분권개헌을 국회의원에게 맡겨 놓을 일은 아닌 것 같다. 국민의 대표기관이라지만 국회에 맡겨 놓았다가는 죽도 밥도 안될 것 같아서다. 대통령도 그런 국회가 미덥지 않았던지 "여의도 정치권만의 개헌 논의가 아니라 국민 주권 시대의 본격적 개막을 맞이해서 국민들이 더 많이 개헌에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이 모색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 말이 정답이다. 국민들의 소리, 지방의 소리를 지방분권 개헌에 더 많이 담아야 한다. 그 통로를 국회가 아닌 대통령이 맡아주었으면 좋겠다. 지방분권에 관한 한 국회의원들보다는 대통령이 더 믿음직해서다.

마지막으로 국회 합의 불발 등을 이유로 개헌 그 자체를 뒤로 미루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대통령의 "내년 6월 지방선거 이전에 합의된 부분까지만이라도 개헌을 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말은 전적으로 국회에 맡겨놓지 않겠다는 의미로 들려 다행스럽다. 국회가 안 한다면 대통령이 앞서서 지방분권 개헌 드라이브를 걸겠다는 뜻이니 말이다.

이제 남은 일은 지방분권개헌의 걸림돌을 부수고 넘어서는 것뿐이다. 그게 누구든 무엇이든. 설령 국회의원이라도.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