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불평등/ 조지프 스티글리츠 지음/ 이순희 옮김/ 열린책들 펴냄
한국사회의 소득 불평등이 심화하고 있다. 6일 기획재정부의 집계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에 따른 중산층 비중은 전년(67.4%)보다 1.7%포인트(p) 하락한 65.7%를 나타냈다. 처분가능소득 지니계수는 2015년 0.295까지 내려갔었지만, 지난해 0.304로 상승했다. 지니계수는 1에 가까울수록 소득 불평등 정도가 높다는 뜻이다. 또 상위 20% 계층의 소득을 하위 20% 계층의 소득으로 나눈 소득 5분위 배율 역시 지난해 5.45배로 2015년(5.11배)보다 상승하는 등 2011년 이후 개선되는가 싶던 소득 분배 지표가 일제히 악화했다. 이 가운데 지난해 가구당 월평균 실질소득은 436만원으로 전년(437만원)보다 0.4% 줄어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명목소득은 늘었지만, 물가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했다는 뜻이다.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에 전년보다 1.5% 줄어든 이후 7년 만이다. 고착화한 저성장과 양극화는 우리 경제의 화두가 된 지 오래다.
같은 상황은 금융위기 전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시카고학파가 주도한 신고전주의 경제학파는 시장경제의 완전무결에 대한 절대적 믿음 속에 현실의 모순을 꿰뚫어보지 못했다. 불평등과 자본주의 시스템의 불안정성이 시장경제의 온전한 작동을 막는다고 주장한 이가 있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다. 2001년 '정보의 비대칭성' 이론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그가 '거대한 불평등'을 펴냈다. 그는 고전경제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시장경제의 위기 이면에 '불평등'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불평등이 정치 불평등을 낳고, 다시 경제 불평등을 심화시킨다고 설명한다. 이 책은 그가 10년간 '뉴욕타임스' '배니티 페어' '신디케이트 프로젝트' 등에 발표한 칼럼을 모은 것이다.
시장경제에서 '보이지 않는 손'은 완전한 정보와 완전한 경쟁, 완전한 시장이라는 비현실적 가정에 토대를 둔다. 현대 실물경제에서는 이런 극단적인 가정이 조금만 흔들려도 엉망이 된다. 정보는 불완전'비대칭이고 시스템은 비합리적이다. 신고전주의 경제 모델을 그대로 적용한 재정정책이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고 스티글리츠는 경고한다.
스티글리츠에 따르면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저금리와 규제 완화가 은행의 신용을 부풀렸고, 정부의 부자 감세 정책은 부동산 투기를 부채질했다. 정부의 긴급 구호자금으로 은행은 회생했지만 투입된 재원은 모든 사람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부유층의 부가 중산층과 저소득층으로 흘러갈 것이라고 기대했던 낙수 효과는 없었다. 여기에 리먼 브러더스 파산이 가져온 금융위기는 계층'소득 불평등을 현실화했다. 실질소득 감소에도 빚을 내 집을 샀던 미국인들은 담보주택 압류에 거리로 내몰렸고, 부실채권을 인수한 다른 국가의 금융시장까지 흔들었다. 교육'기간시설'과학기술에 투자했어야 할 돈은 전쟁을 치르고 무기를 만드는 데 필요한 국방비, 세계화에 역행하는 농업보조금에 투입됐다. 자원은 낭비됐고, 혁신은 멈췄다. 그는 '짝퉁 자본주의'가 상위 1%와 나머지 사이에 거대한 균열을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소득과 부의 불평등은 기회의 불평등, 정치적 불평등으로 나타났다. 불공정한 기업 복지정책, 부자를 위한 세금정책은 상위 1%의 배를 불렸다. '1인 1표' 선거는 '1달러 1표'로 전락했고, '만인을 위한 정의'는 '있는 사람을 위한 정의'로 변질했다. 이렇게 경제정책은 소득의 불평등을, 그리고 계층 간 교육 격차를 벌렸다. 교육의 불평등, 기회의 불평등은 '아메리칸 드림'을 신화에 머물게 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불평등의 원인과 결과를 차곡차곡 짚어가면서도 시장경제가 가장 뛰어난 제도라는 저자의 신념은 변하지 않는다. 그는 "불평등은 불가피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불변의 경제 법칙이 초래한 결과가 아니라, 정책과 정치가 초래한 결과다"라고 말한다. 그는 책을 통해 연준의 의장 지명 문제, 식량정책, 지식재산권 정책 등을 검토하고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 위기를 벗어날 방법을 찾아본다.
책 후반부에서 저자는 일본, 중국, 스페인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나타나는 불평등과 이를 완화하려는 노력을 알아본다. 불평등이 대침체의 원인이자 결과라고 밝힌 그는 불평등 완화를 위해 중간소득층과 저소득층의 소득이 증대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새 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인적 자원의 효율적 활용을 위해 수요 중심의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제언도 빼놓지 않는다. 이들이 불어넣는 활력이 경기 침체를 해결하고 경제성장을 이끌 것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산업구조 개혁과 함께 공공 부문에 대한 대규모 투자가 건강한 경제의 마중물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한다. 다만,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할 기술융합, 혁신 생태계에 대한 고찰이 부족한 점은 아쉽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올해 말 가계부채 규모가 약 1천50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가구당 7천800만원 빚을 지게 된다는 얘기다. OECD가 7일 발표한 '경제전망' 보고서는 올해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2.6%로 제시하며 가계부채가 올해 우리 경제의 회복세를 짓누를 것이라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주택담보대출 규제는 주택시장 연착륙과 가계부채 안정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도록 신중하게 설계돼야 한다"고 했다.
문재인정부는 가계부채의 해법 중 하나로 부동산 대책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을 환원하거나 강화해 가계부채와 집값,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실수요자의 반발에 선뜻 결론을 내리지는 못하는 모양새다.
스티글리츠의 논의는 미국에 국한한 이야기가 아니다. '1%를 위한, 1%에 의한, 1%의 정부'는 어디에서나 있을 수 있다. 치솟는 집값, 부의 편중이 가져온 절망과 빈곤이 경제정의의 실현을 가로막은 우리나라에서도 생각해봄 직하다.
576쪽, 2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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