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벼룩시장을 기웃거리며

입력 2017-05-22 00:05:01

얼마 전 꽃 중년들이 바지통이 좁은 골반 바지를 입기 시작한다는 뉴스를 접하고 나의 바지가 눈에 들어왔다. 모두 한결같이 통 넓은 바지였다. 펄럭펄럭하는 바지다. 유행에 뒤떨어진 옷이다. 아내가 다른 옷을 개비하란다. 나는 싫다. 이런 옷들이 좋다. 언젠가 유행이래서 통 좁은 바지를 입어 봤더니 영 불편하다. 편안함을 추구할 것인가 유행을 따를 것인가 목하 고민이다. 유행을 따르면 세련되게 보일 것은 분명하나 그 불편함은 어찌할까? 불편도 습관이 되면 괜찮다지만 시도 자체가 싫다.

5년 정도 외국에 살면서 가장 부러웠던 건 타인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행이라는 게 딱히 없어서 자신의 개성대로 옷을 입으면 된다. 배 바지면 어떻고 나팔바지면 어떠리. 유행보다는 실리를 더 중요시한다. 중고를 파는 벼룩시장은 늘 북적인다. 옛날 것을 더 선호하는 문화 때문이리라. 벼룩시장에서 보물을 캐내려고 그들은 늘 기웃거린다. 사람 빼놓고 다 판다는 벼룩시장은 눈요깃감으로도 좋다. 토요일 딱 하루만 열리는 벼룩시장에 오늘은 무슨 물건이 나왔을까 하는 기대감과 설렘으로 찾아가던 기억이 꿈틀거린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벼룩시장은 있다. 서울 청계천과 동대문 인근엔 그들보다 더 큰 벼룩시장이 있다. 대구는 글쎄다. 대구는 벼룩시장을 잘 못 본 것 같다. 잠깐씩 펼쳐지는 '아나바다' 같은 건 봤어도 상설 벼룩시장은 못 봤다. 벼룩시장도 도시민들의 성향에 따라 성행 여부가 결정될 거 같다. 타인의 눈을 의식하는 곳에선 벼룩시장이 성행하지 않을 거 같다. 벼룩시장이 크게 열리느냐 열리지 않느냐에 따라 그곳 도시 사람들의 성향을 엿본다면 난센스일까? 허나 분명 상관관계는 있을 듯하다. 벼룩시장을 통해 그곳 주민들이 실리적이냐, 의식적이냐 하는 면면은 엿볼 수 있다.

외국에선 벼룩시장을 풍물시장으로 크게 활성화한다. 일 년치 임대료를 받아 붙박이로 그들을 붙잡아 둔다. 할 일 없고 무료한 날은 벼룩시장을 어슬렁거리다 보면 옛 친구를 만나는 행운도 따르고, 만원만 주면 질 좋은 통가죽 신발도 얻어걸린다. 다리가 불편한 한국 손님을 모시고 오천원짜리 쌍목발을 사 준 기억도 좋다. 그분은 여행 내내 나에게 감사했다. 흥정하는 재미도 좋다. 2만원 부르던 중절모자를 만원 주고 사서는 온종일 기분이 좋다 못해 그 모자만 보면 아직도 기분이 좋은 것은 나의 속물근성 때문일까? 아무튼, 유행보다는 실리에 눈을 뜬 도시민들이 애용하는 그런 벼룩시장이 하나 생겼으면 좋겠다. 차 밀리는 도심보다는 한적한 곳이면 더욱 좋겠다. 언제라도 찾아가는 목로주점이 아닌 언제라도 기웃거릴 수 있는 벼룩시장 하나 만들어지면 좋겠다. 일방적으로 사고파는 곳이 아닌 내 물건도 내다 팔 수 있는 그런 쌍방향 벼룩시장이면 더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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