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 내 마음의 안식처] (8) 성석제 소설가-상주 개운못

입력 2017-05-19 00:05:01

물에 빠졌을 때

구해준 은인

소설에 등장

개운못에

붉게 퍼진 노을

그림이

따로 없죠

"생각하면 나는 언제나 길 위의 집에서 소설을 써왔다. 은혜로운 내 고향 상주는 길이었고, 집이었고, 문학 그 자체가 되어 주었다."

1960년생인 소설가 성석제가 상주에 산 시간은 1975년 3월까지 만 15년 정도. 그러나 그의 글 태반은 상주에서 시작한다. "당연히 상주다"라는 그의 마음속 안식처도 그 언저리였다.

특히 그의 문학적 탯줄과 같은 곳은 경북대 상주캠퍼스(옛 상주대)와 가까운 개운못이었다. 해방 후 축조됐을 거라는 '개운못'은 작가에겐 '영혼의 놀이터'였다.

"꽤 큰 저수지였어요. 못둑이 터지면 상주읍내가 물에 잠긴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나 개운못은 상주 사람들에게 복잡미묘한 느낌으로 각인돼 있었다. 넉넉한 물 보급지이면서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심지어 '물에 빠져 죽으러 가는 곳'이라는 섬뜩한 말도 나왔다. 집에서 낳은 아이의 태반을 못에 던져 아이의 무병장수를 비는 곳이기도 했다. '생과 사의 집합지'였던 셈이다.

작가가 기억하는 개운못은 그러나, 위험하지만 재미난 장난감이었다. 춘하추동 가릴 것 없었다. 겨울철에는 썰매를 탔고, 스케이트를 탔다. 여름철에는 물놀이장이었다. "두 번이나 개운못에 빠져 죽을 뻔했는데 구해준 이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요. 얼굴만 기억나네요. 배은망덕하게도."

물에 빠져 죽을 뻔한 기억은 그의 소설 '아름다운 날들'에 자세히 묘사돼 있다. 기억나지 않는다는 '생명의 은인'은 물에 빠진 '원두'(작가를 지칭)를 구해준 '복남이'로 명명돼 있긴 하다.

주변 산도 훌륭한 자연 학습장이었다. 진달래를 따 먹으며 허기를 달랬고, 산딸기와 토끼를 명목 삼아 온 산을 헤집고 다녔다. 어둑해지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못으로 흘러내리는 노을을 봤다.

해거름에 보는 개운못은 마음을 도닥였다. 잔잔한 물결의 은빛 찰랑거림, 노을은 못에 붉게 퍼졌다. 산 위로 별이 하나둘 떠오르면 그림이 따로 없노라고 했다.

지금의 개운못은 강태공들이 띄엄띄엄 앉아 월척을 노리는 곳이다. 작가가 뛰어놀던 곳은 예비군 훈련장이 됐다. 풍광이 좋아 자전거 탄 이들이 이따금 못 옆으로 난 도로를 달린다. 얼핏 대구 가창댐 주변과 비슷하다. 단, 식당이 거의 없다. 못둑 주변에는 올해 가을쯤 준공을 목표로 부교를 만들고 있었다. 못 주변을 감상하며 사진을 찍자 '웬 치가 와서 사진을 찍나' 싶어 공사 관계자가 얼른 오더니 한시름 놓고 설명을 한다.

개운못에서 1㎞ 정도 거리에 있는 외남면 소은리 '하늘 아래 첫 감나무'도 작가가 갈무리해 놓은 추억의 페이지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750년 된 감나무다. 아직도 매년 약 5천여 개의 감이 열린다고 한다. 어제도 들은 것 같은, '내 주변에도 그런 사람이 있었는데'라는 착각이 들게 하는 성석제의 작품 속 인물들이 화수분처럼 끝없이 나오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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