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이 걸어온 길] 유치장서 받은 사시 합격증…시위전력에 판검사 임용 못받아

입력 2017-05-10 00:37:48

경남고·경희대 법대 수석 입학, 폭파 특기병 특전사 훈련…안기부 요시찰 재야 인권변호사

문재인 대통령의 고향은 거제도다. 1953년 가난한 피란민의 아들로 태어났고, 머리가 좋아 부산의 명문으로 불리는 경남고를 수석 입학했다. '재수'와 '수석'은 그의 삶의 앞뒤를 장식했다.

대통령처럼, 경희대 법대도 72학번으로 재수 끝에 수석으로 입학했다. 입학과 동시에 그는 유신 반대 투쟁에 앞장섰다. 1974년 유신 반대를 주도하다가 구류에 처해졌고, 시위를 주도하다 구속되면서 학교에서도 제적당했다. 특전사 경력은 시위와 밀접한 영향이 있다. 데모하다 끌려온 사병을 혹독하게 훈련시켰던 군은 그를 특전사로 배치한 뒤 폭파 주특기 병으로 훈련시켰다.

사법시험 2차 합격증은 서울 청량리경찰서 유치장에서 받았다. 1차 시험에 합격한 뒤 시위로 구속됐기 때문이다. 유신에 저항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던 그는 양심을 팔면서 합격을 구걸하지 않았다. 3차 면접시험을 앞뒀을 때 안기부(현 국정원) 직원이 "데모할 때와 생각이 같으냐"고 묻자, 그는 "내 행동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법연수원 시험을 1등으로 통과했으나 어찌 된 일인지 수석이 아닌 차석이 됐다. 사법연수원 시험 점수가 자신보다 낮은 동기들은 판사와 검사로 임용됐지만, 그는 판사 임용에 실패했다. 시위 경력 때문이었다.

주변 상황에 떠밀려 변호사의 길로 들어섰고, 그곳에서 변호사 노무현과 인연을 맺었다. 자신의 운명을 바꾼 만남이었다. 그는 노 변호사와 함께 1980년대 후반 안기부 요시찰 대상 재야 인권변호사 명단에 올랐다. 법을 몰라 억울한 일을 당하는 노동자들을 상담료도 받지 않고 도왔다.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면서 그도 청와대에 입성했다.

민정수석으로 노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 내각 구성을 주도했다. 하지만 총선 출마 압력을 받고 1년 만에 청와대를 나왔고, 대통령 탄핵 소식을 접한 뒤 변호인단 간사로 노 전 대통령 옆에 다시 돌아왔다. 2007년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실장이 됐고, 2009년 5월에는 노무현 국민장(國民葬)의 상주가 돼 고인의 곁을 지켰다.

아내 김정숙 여사와는 경희대 법대 재학 시절 축제에서 만났다.

같은 학교 성악과 74학번인 김 여사를 그 축제에서 만나면서 인연이 시작됐고, 구치소 수감과 강제 징집 군 복무, 사시 준비 등 시대의 애환이 녹아 있는 연애를 7년간 하다가 1981년 결혼했다. 특전사에 복무할 때 김 여사가 '안개꽃'을 들고 왔었던 첫 면회 일화는 여기저기서 회자된다. 문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대한민국 군대에 이등병 면회가면서 음식 대신 꽃을 들고 간 사람은 아내밖에 없을 것"이라며 통닭 대신 꽃을 한아름 들고 온 아내를 귀엽게(?) 묘사했다. 김 여사는 이번 대선에서 호남 민심을 얻는데 톡톡한 역할을 했다. 광주의 목욕탕에 가서 지역 주민들과 함께 목욕하고, 설 이후 전남 섬 지역을 매주 1박 2일로 찾으며 문 후보 '호남 특보'라는 별명까지 얻었을 정도였다.

문 대통령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맞붙었던 지난 대선에서 얻었던 표는 1천469만 표다. 이는 '대선 패배 최다득표'로 약 100만 표 차이로 박 전 대통령에게 졌다. 그는 이제 대통령 재수 끝에 제19대 대한민국 대통령에 이름을 올렸다. "삼수는 없다"고 한 약속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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