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저녁 대구시 중구 약령길 25-1번지, 독립운동가 이상정 장군 고택에서는 조촐한 모임이 있었다. 100여 명의 대구시민이 모여 기초생활수급자로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 장군의 손자 이재윤 씨를 돕는 후원 행사였다. 행사는 고택에서 2013년부터 식당을 운영하는 한 협동조합이 마련한 것으로, 중국 상해 임시정부 수립 날에 맞췄다. 주최 측은 이날 모인 후원금 300여만원도 17일 후손에게 전달하기로 해 의미를 더하고 있다.
독립운동가 후손의 비참한 삶은 상식처럼 된 지 오래다.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親日)을 하면 3대가 잘 산다'는 속설이 새삼스럽다. 한국일보가 2015년 독립운동가와 후손 모임인 광복회 회원 6천831명 중 응답한 1천11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도 꼭 그랬다. 독립유공자 가족의 월 개별 소득은 75.2%가 200만원 미만이었다. 특히 200만원 미만 구간에 본인(38.4%)보다 자녀(72.2%)와 손자(79.2%), 증손자녀(62.2%)의 비율이 더 높았다.
조사 대상자의 학력도 고졸이 가장 많은 25.7%이고 스스로 '하층'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73.7%로 나타났다. 다른 조사 내용도 세상에 떠도는 이야기와 한 치 어긋남이 없다. 호국 보훈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과 정책적 뒷받침의 빈약함이 빚어낸 우리나라의 슬픈 자화상이 아닐 수 없다. 친일 후손들이 대를 이어 거듭된 부(富)와 명예를 누리며 편안하고 풍족한 삶을 보내는 현실과 사뭇 엇갈린 삶이 아닐 수 없다. 대구 독립운동가 이상정 손자의 힘겨운 기초생활수급자 생활 역시 같은 맥락이다.
대구경북은 일찍부터 호국 보훈의 고장이었다. 나라에서 인정한 독립유공자 수가 가장 많다. 호국 보훈 시설도 어느 곳보다 많고 다양하다. 하지만 이 같은 겉모양과 달리 독립유공자 후손의 비참한 삶과 하루하루 버겁게 버티는 모습은 가슴을 아리게 하고도 남는다. 다행히 나라도, 가장 가까운 이들도 제대로 살피지 못한 일에 시민이 나섰으니 돋보일 만하다. 평범한 시민의 대구를 빛낼 정신이 되기에 충분하다. 독립자금을 낸다는 마음으로 후원을 아끼지 않은 자랑스러운 뭇 시민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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