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때문에 소비를 줄여야 하는 가구가 급격히 늘고 있다. 가계 부채가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현실이 됐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실시한 가계 금융복지 조사 결과 원리금 상환에 부담을 느끼는 가구가 전체 가구의 70%에 달했다. 이 중 75%가량은 실제로 소비와 저축을 줄인 것으로 조사됐다. 전체 가구 중 절반 이상이 빚에 시달리고, 빚 때문에 씀씀이를 줄이고 있는 셈이다. 아시아개발은행은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지난해 2.7%보다 낮은 2.5%로 낮췄다. 가계 부채 급증과 소비 심리 악화에 따른 민간 소비 위축을 이유로 들었다. 부채 문제가 경제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취약 계층의 부채가 급격히 늘어나는 것은 더 큰 문제다. 한은조사 결과 주택'예금 등 실물'금융자산을 모두 처분해도 빚을 갚을 수 없는 고위험 가구의 부채가 크게 늘었다. 2015년 46조4천억원이던 이들의 부채는 지난해 62조원으로, 33.6%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체 가계 부채 증가율 11.7%에 비춰보면 3배에 가깝다. 고위험 가구란 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 비율이 40%를 넘고 자산보다 부채가 많은 가구다. 처분 가능 소득의 절반 가까이를 빚 갚는 데 쓰면서도 정작 부동산 등 모든 자산을 모두 팔아도 빚을 갚을 수 없는 딱한 처지에 놓인 가구가 그만큼 많다. 금리가 상승하면 이들부터 무너져 내릴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가계가 원리금 상환에 부담을 느끼는 것은 소득 증가보다 빚의 증가 속도가 더 빠르기 때문이다. 소득은 그대로거나 줄어드는데 금리가 오르면 부채는 치솟을 수밖에 없다. 사정이 이런데 정부는 그동안 가계 부채 문제를 소홀히 했다. 부동산 경기를 떠받친다며 오히려 빚을 부추긴 잘못도 없지 않다. 지난 2010~2015년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이 치솟은 것은 이를 입증한다. 이 기간 OECD 국가의 가계 부채 비율은 평균 0.5%포인트 떨어졌지만 우리나라는 21.4%포인트 수직 상승했다.
경제 성장 없이 소득 증가 없고, 소득 증가 없이 가계 부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정부가 할 일은 명확하다. 더 이상의 가계 부채 증가를 악착같이 막아야 하고, 한계 가구에 대해선 저금리로 전환 방법을 찾아 몰락하지 않도록 숨통을 틔워줘야 한다. 직장인들이 직장에서 내몰리지 않도록 해야 하고 자영업자들이 개업과 폐업을 되풀이하며 몰락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경제를 성장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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