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자가 범죄 부인한다고 구속
방어권 보장'불구속 원칙 어긋나
사법부, 대중 분노 편승해선 안돼
권력자 파멸에 희열 느낄 것인가
메리 스튜어트는 스코틀랜드의 여왕이자, 프랑스의 왕비였으며, 잉글랜드 왕위 계승권자였다. 태어난 지 6일 만에 아버지 제임스 5세가 죽자 아홉 달이 됐을 때 대관식을 치렀다. 그 뒤 프랑스 앙리 2세의 아들 프랑소와와 결혼해 열일곱 살에 프랑스 왕비가 됐다. 1년 뒤 프랑소와 2세가 죽자 그녀는 스코틀랜드로 돌아왔다. 그녀는 사촌인 헨리 스튜어트 단리와 두 번째 결혼을 해 아들 제임스를 낳았지만 불화가 계속되면서 애정이 식었다. 그때 만난 남자가 제임스 보스웰 백작이었는데 그는 단리가 유폐된 집에 불을 질러 단리를 죽였다. 그 석 달 뒤 여왕이 보스웰과 결혼하자 스코틀랜드 민심은 여왕에게서 떠났다. 불륜을 저지르고 남편을 죽인 여왕으로 내몰렸던 것이다. 그녀는 반란군과 싸웠지만 폐위됐다.
메리는 잉글랜드로 탈출한다. 그곳에서 19년 동안 유폐 생활을 보내다 반역죄의 함정에 빠졌다. 그건 엘리자베스 1세와 세실경이 놓은 덫이었다. 메리와 엘리자베스는 같은 혈통이었지만 법률적으로 서출(庶出)이었던 엘리자베스와 달리 메리는 적통(嫡統)인데다가, 국교를 믿는 잉글랜드 귀족들이 가톨릭 신자인 메리의 왕위 계승을 위험하게 생각한 것이 그녀를 궁지로 내몰았던 것이다. 그녀는 법정에서 보낸 질의서에 자신이 반역에 가담한 사실이 없다며 결백을 주장한다. 그런 항변이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하면서 그녀는 사형선고를 받고 처형됐다. 돌아선 민심이 가장 큰 이유가 됐다. 그녀는 살 수 있는 수많은 길을 외면한 채 스스로 파멸의 길로 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된 지 불과 20일 만에 구속됐다. 새벽 3시 구속영장이 발부됐다는 뉴스를 들으면서 나는 메리 스튜어트를 떠올렸다. 어린 나이에 청와대로 들어가 대통령의 딸로 자랐다. 그녀의 적들이 늘 공격 재료로 썼듯이 절대 권력자였던 아버지 덕에 아마도 '공주'로 살았을 것이다. 어머니 육영수 여사가 비운에 가고 그녀는 최태민이라는 사교(邪敎) 교주에 빠진다. 박 전 대통령의 비극은 이때 시작됐다. 아버지가 죽고 청와대를 떠난 뒤에도 그녀는 최태민과 그 일가의 덫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동생들마저 멀리 하면서도 최태민의 딸인 최순실에게 철저하게 놀아난 것을 그저 세상 물정 모르는 '여왕'의 작태로 볼 것인가. 작년 가을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후 지금까지 그녀 역시 수많은 길 중에 유독 파멸로 가는 길만 골라 걸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녀의 구속에 반대한다. 그저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절대 구속해선 안 된다고 믿는다. 신문과 방송에서 박근혜정부를 누구보다도 강하게 비판했고, 측근 실세들을 '십상시'(十常侍)라고 불렀던 처지에 박 전 대통령 편을 들어서가 아니다. 권력을 사유화하고 민주주의 질서를 파괴한 것만으로도 당연히 탄핵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입장에서 그녀를 새삼스레 변호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적어도 이 나라가 문명국이라면, 직전 대통령을 형벌이 확정되기 전에 '법과 원칙'이라는 미명 아래 수의(囚衣)를 입힐 수는 없다. 일국의 '통치자'였던 이에게 수의를 입힌다는 것은 그 자체로 처형(處刑)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제 일반인과 같다'면서 일개 판사의 심문만으로 나락으로 떨어뜨린다는 것이 과연 온당한 것인가?
박 전 대통령에게 영장을 발부한 이유는 범죄 혐의가 소명되었고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는 것이다. 구속 사유가 이처럼 둘이라면 그녀를 구속해선 안 되는 이유는 열도 넘는다. 무엇보다도 재단에 출연한 돈을 뇌물로 본다는 건 너무 감정적이다. 그 재단들을 최순실이 장악했고 이를 박 전 대통령이 알았다 하더라도 여전히 공익재단으로 남아 있다. 기가 막힌 건 그녀가 피의 사실을 모두 부인한다고 해서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라면 피의자가 억울하다며 범죄를 부인하면 구속이요, 죄송하다며 시인하면 불구속이라는 결론이 된다. 불구속수사 원칙을 세운 것은 피의자의 방어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그런데도 죄를 부인하고 방어하겠다고 나서면 구속시킨다는 것인가?
법 앞에 모두가 평등하다. 그건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대중의 분노에 사법부가 가담해선 안 된다. 권력자의 파멸에 대중이 희열을 느끼는 저급한 사회가 되어서는 더더욱 안 된다. 그래서 내리는 형벌은 곧 국격(國格)의 훼손이요, 치유할 수 없는 상처로 남는다. 로마 법언(法諺) 중엔 형법을 관통하는 경구가 있다. '의심스러운 것은 피고인의 이익으로'(In Dubio Pro Reo)라는 경구다. 이 원칙이 전직 대통령을 비켜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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