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每日 지상 갤러리] 석재 서병오전 (5) 국화와 파초

입력 2017-04-03 04:55:02

국화 활짝 필 무렵 시든 파초…추사 김정희 시 그대로 표현

아래쪽에 비쭉 솟아 있는 커다란 바위 주변에 국화꽃 세 송이가 활짝 피어 있고, 위에는 한여름 무성하던 파초가 찢어진 잎을 떨군 채 시들어 가는 가을 풍경이다. 바위와 국화, 파초라는 흔치 않은 조합의 화훼화를 그린 것은 시든 파초 잎을 가운데 두고 아래위로 써 내려간 시 때문이다.

位置敗蕉醜石前(위치패초추석전) 王官谷裏道心傳(왕관곡이도심전) 老人商略秋來事(노인상략추래사) 玉露金風日利年(옥로금풍일리년)

"시든 파초 곁 못생긴 돌무더기 앞에/ 왕관곡의 도심을 전하려 국화를 심네/ 노인은 가을 되니 추수할 일 생각하기를/ 서풍에 맑은 이슬 내려 풍년이 들었으면" -雨中移菊(빗속에 국화를 옮겨 심으며)

'완당전집' 제10권에 실려 있는 추사 김정희의 이 시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에 바위와 국화, 파초가 모두 나오는 그림을 그린 것이다. 이어서 玩堂詩意 爲贈水仙香玩 石翁剪燭作(완당의 시의에 따라 그려 주니 수선이 향기롭게 감상하기를. 석옹이 촛불 심지 자르며 그리다)라고 썼다. 밤중에 그린 그림이며 수선(水仙)이라는 기생에게 그려준 것이다. 기생에게 선물한 것이라 법정(法正), 아정(雅正) 등을 대신해 향완(香玩)이라고 했다.

서병오의 시서화 작품 중에는 동석했던 기생에게 선물한 것이 다수 있다. 시를 지어 주기도 했고, 명시나 기생의 이름을 넣은 당호 등을 서예 작품으로 써 주기도 했으며, 사군자나 기명절지 등 그림을 그려 주기도 했다.

근대기 기생은 상류층 남성들의 교유나 회합의 자리에 참석하여 여흥을 돕고 지필묵 시중을 들었으나 시서화 작품에서 그 존재가 드러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데 서병오는 기생의 이름을 작품 속에서 직접 거명한 쌍관(雙關) 작품을 많이 남겼다.

왜 김정희의 시를 화제로 한 그림을 그려 수선에게 선물했을까? 김정희가 제주 유배 시절부터 유난히 수선화를 좋아했기 때문이 아닐까? 서병오는 흥선대원군인 석파 이하응의 제자로서 스승의 스승인 김정희를 존경하여 '완당전집'의 시나 서화론을 화제로 인용하였고, 추사체를 열심히 공부하였다.

이번 대구미술관 전시에 출품된 '대호쾌활'(大好快活), '영이위호'(永以爲好)는 서병오가 김정희 풍 고예(古隸)를 자신의 필묵적 개성으로 소화한 대표작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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