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나무를 생각하다 – 백석의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중략)/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백석, 부분)
문학이라는 놈이 좋아서 문학과 함께 뒹굴며 평생을 함께 살아왔는데도 이렇게 쓸쓸한 적은 없었다. 역시 문학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누군가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그 때문에 문학은 위대한 것이라고 하지만, 그 아무것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하지만 혹시나 그럼으로 문학이 자꾸만 무능해지는 것 같아, 잠수함 속의 토끼 역할을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어차피 문학도 사람이 하는 것이고, 사람이 살아가는 삶에 대한 이야기라면 최소한 사람과 삶에 대한 언어는 자유로워야 한다. 이것은 말해도 되고, 저것은 말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 그건 이미 문학이 아니다. 사람의 삶이 발현되는 현장이 정치라면 문학도 결국은 정치다. 지난 몇 달, 세상이 하 수상하니 만나는 사람마다 '이게 나라냐'고 울분을 쏟아내었다. 부정부패니, 정경유착이니, 권언유착이니 하는 것들은 이미 뉴스거리도 아니다. 그런 것들이야 이미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고, 혹시 사람이 바뀌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 벌어진 일은 자존심 때문에 견딜 수가 없었다. 꼬집어 표현할 수 없는 안에서의 분노가 우리들의 가슴을 답답하게 했다.
드라마보다 더 흥미로운 뉴스 프로그램, 막장보다 더 막장인 시사 프로그램을 보다가 수없이 '내 가슴이 꽉 메어'왔고,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었고,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웠고,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었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그저 공부나 했으면 좋겠습니다만 도저히 말하지 않고서는 책장을 넘길 수가 없다'던 어느 지식인의 글도 떠올랐다. 세상은 제법 변했다. 세월호도 세월과 함께 돌아왔다. 이제 그 지식인도 공부만 할 수 있을까? 좋은 사회란 그런 것이다. 타인의 시선과는 관계없이 자신이 무슨 일을 하든 그것에 집중할 수 있고, 그것으로 인해 자부심을 느끼고, 그것을 통해 위로받는 사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우리는 행복하다. 최소한 내 행복이 타인의 불행을 담보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제 우리도 그런 사회로 갈 수 있을까? 정치인들이 그런 일들을 할 것이라는 기대는 접어두고 우리가 먼저 그 길을 걸어가야 하지 않을까?
문학이 사회현상에 대해 말하고 안 하고는 문학을 하는 사람들의 자유다. 반드시 어떻게 해야 한다는 당위성은 없다. 하지만 말해야 한다고, 또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문학을 하는 사람들을 강제해서는 안 된다. 좋은 사회의 시작은 어쩌면 그 작은 부분에서 출발할지도 모른다. 문학은 쓸모없는 그것으로 쓸모를 찾는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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