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바스크지역의 중심 도시 빌바오는 인구 40만 명이 채 되지 않는 작은 도시로 '도시 변신'의 극적인 성공 사례로 잘 알려졌다. 빌바오는 오랫동안 철강산업으로 번영하다가 1980년대 이후 사양길로 접어들자 미국의 구겐하임 미술관 외국 분관을 유치, 문화 도시로 탈바꿈하는 데 성공했다. 바스크 정부는 1억달러를 투자해 1997년 구겐하임 미술관을 개관했고 이후 연간 100만 명이 찾아오는 관광객들로 도시의 경제적 활기를 되살렸다. 한 도시의 랜드마크 건축물이 그 지역에 미치는 영향이나 현상을 이르는 '빌바오 효과'란 용어도 이때 생겨났다.
미국의 피츠버그도 대표적인 철강 도시였으나 한국의 포항제철 등에 밀리게 되자 새로운 활로를 찾아 나서야 했다. 피츠버그시는 1980년대부터 신산업을 위한 창업 보육과 연구개발(R&D) 지원에 나섰고 성과를 거둔 것이 로봇 산업이었다. 피츠버그에는 크고 작은 로봇 제작 업체들이 둥지를 틀었고 투자 회사들도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로봇 산업을 중심으로 산업구조가 재편되면서 14만 개 이상의 일자리가 새로 생겨났다. 피츠버그는 철강 도시의 DNA를 여전히 지니고 있으나 지금은 로봇산업의 중심지라 해서 '로보버그'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빌바오와 피츠버그가 처했던 상황을 이제는 포항이 맞닥뜨리고 있다. 포항은 '철의 도시'이지만 중국 철강 업체의 공세에 시달리고 있다. 질과 양에서 세계를 평정했지만, 그러한 호시절은 사라졌고 다시 돌아오기도 어렵다. 양적인 면에서 점차 중국 업체에 시장을 내주고 있고 아직 경쟁력 있는 질적인 면에 주로 집중하고 있다. 포스코가 지난해 경기 침체에서 회복해 고품질 제품 위주의 생산 전략으로 활로를 찾고 있으나 포스코 외주사들과 연관 중소기업들은 어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예전에는 포스코가 호황이면 외주사와 연관 기업들 모두 그 과실을 함께 따먹으며 생기를 띠었으나 그 공식이 깨지고 말았다.
이 와중에 포항의 변신은 서서히 진행 중이다. 포항은 '해양 관광 도시'를 지향하고 있다. 많은 외부인은 포항을 아직 삭막한 철강산업 도시의 이미지로 기억하겠지만, 바닷가 도시의 매력을 십분 살려나가고 있다. 과거의 북부 해수욕장은 해변로를 정비해 영일대 해수욕장으로 거듭났다. 영일대 해변은 규모는 작지만, 카페와 식당 등이 어우러져 부산 해운대 못지않게 끌리는 곳이 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어업 수탈을 일삼았던 구룡포의 일본인 가옥거리는 색다른 명소로 떠올랐고 포항 운하 개통에 이어 최근에는 영일만 관광 유람선도 취항했다. 이처럼 새로운 관광 인프라가 아니더라도 포항 바닷가는 산책하거나 드라이브를 할 때 깊고 푸른 바다가 빚어내는 황홀한 경치를 선사한다.
포항시는 산업구조 재편을 위한 혁신에도 나서고 있다. 경북도와 함께 제4세대 방사광 가속기를 기반으로 한 신약 개발,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과 포스코 전문 인력을 기반으로 한 신소재 개발, 포항의 지질 특성을 살리는 지열 발전 등 미래 먹거리를 마련하려고 움직이고 있다. 포항의 인프라와 인재 풀을 고려했을 때 충분히 가능성 있지만, 수도권 대기업 등과는 격차가 있다. 포항시와 경북도의 노력과 함께 중앙정부의 지원이 이뤄져야 결실을 볼 수 있다. 장차 펼쳐질 헌법 개정과 관련, 지방분권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래 혁신을 위해 좀 더 적극적인 노력도 필요하다. 이강덕 포항시장이 기회 있을 때마다 여러 자리에서 포항의 변신과 혁신을 설명하고 강조하지만, 포항의 여론 주도층들이 미래 비전에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도록 소통과 통합을 더 강화해 나가야 한다. 대외적으로도 중앙정부와 정치권을 향해 분기점에 서 있는 포항의 상황을 이해시키고 지방 경제 거점 도시로서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포항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도록 온 힘을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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